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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종이
  1. 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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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란 사람은 강원도 탄광촌에서 났다. 1960년생이니 나와는 세 살 차이로 동년배라 해도 무방하다. 고려대를 나와서 고문(古文)연구하고 간간이 책을 낸다. 해년 출간하는 것이 돈이 되는지는 몰라도 아주 망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올해 “열하일기”평역본이 나왔다기에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고 “이영화를 보라”라는 다소 도발적인 영화평집이 있기에 같이 샀다.

이 사람의 책이 여러 권 째다. 필이 꽂히면 파고드는 것이 버릇된 까닭도 있지만 나는 이 고미숙이란 사람이 부럽다. 나보다 나을게 없는 환경에서 나서 더구나 성적 마이너인 여자로써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당당히 하고 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지만 만약 이 사람이 하는 일을 한다면 참 재미있게 할 것 같다.

괴물, 황산벌, 음란서생, 서편제, 밀양, 라디오스타 총 다섯 편의 영화평이 올라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2개인 것을 보니 나와 취향이 비슷하긴 비슷한 모양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이준익 감독으로 하여금 빚에서 헤어나게 만든 그 “왕의 남자”가 빠진 것도 매우 바람직하다.

나는 “왕의 남자”가 왜 그리 잘 팔렸는지 아리송하다. 나도 보긴 했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고 왜들 좋다고 난리들인지 영화의 내용전개만큼이나 황당할 뿐이다. 그에 비해 “황산벌”은 수작이다. 박중훈의 캐릭터가 너무 강해 영화가 손해 본 것 같다. “왕의 남자”처럼 감우성 정도의 인물을 내세웠으면 더욱 빛이 났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고 다시 영화 황산벌을 봤다. 처음 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내가 놓친 부분을 재구성해 봤을 때 은유, 재미, 풍자, 혁신이었다. 혹 못 본 사람은 지금이라도 황산벌을 보라. 비디오라든가 아니면 자녀들에게 부탁해 인터넷으로 불법 다운해서 보면 된다. 작가도 이 황산벌을 극찬을 했다. 사투리를 주모티브로 한 까닭에 외국인에게는 그 의미전달이 어려워 수출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아쉬워했다. 음란서생이라면서 황산벌을 길게 이야기 하는 것은 그 기저가 닮은 점이 많아서다. 같은 감독인가 헷갈린다.

“음란서생”은 왠지 어색했다. 음란(淫亂)하다는 말은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게 죽을죄인가 하니 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대놓고 음란하다 하면 듣고 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석규가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석규 씩이나 돼가지고 뭐 이런 영화에 나오나’는 생각과 ‘몇 편 죽을 쑤더니 막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것은 단지 음란(淫亂)이란 말만으로 느낀 감상이다. 그 뒤에 TV로 끝 부분을 조금 보고서는 전후 사정도 생각지 않고 수준 이하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런데 이 영화를 제목도 당돌한 이 책에 올렸다. 의외다 싶어 더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내 애초의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그것은 정말 유쾌한 상(常)스러움이었다.-흔히 쌍놈 할 때 이 한자를 쓴다.

책을 읽고 다시 영화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봤다. 보석이다. 오리가 백조로 변한 것처럼 내 의식 속에서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했다. 이런 훌륭한 영화를 나는 “음란”이라는 문자에 갇혀 보지 못했다.

제목이 제대로 된 건지 잘못된 것지 아리쏭하다. 나 같이 고차원의 사람도 사시인데 하물며 중생들이야 어떠라고……. 제목이 음란하다 하여 행여 섹시한 비주얼만 기대했다간 헛물켠다. 다분히 철학적이고 진취적인 내용이다.

때는 바야흐로 유교의 엄숙주의로 세계최고수준의 백성통제가 자행되던 조선나라에 세책가를 중심으로 음란소설이 크게 유행했다. 조선후기에 통속소설이 유행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문제는 당대의 주류인 김윤서란 인물이 추월색이란 필명으로 그 음란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이 인물은 사헌부의 장령으로 명문가의 장남이며 조선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이 높다. 동생이 반대파의 무고로 잔혹하게 고문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지배층의 문장과 붓이란 사무라이의 검법과 칼과도 같은 것, 문중에서는 최고의 문장가인 김윤서에게 복수의 상소를 올리라고 닦달을 한다. 없는 것도 있게 하고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이 복수 글이 그는 땡기지 않는다. 거부라도 화끈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우물쭈물한다. 급기야는 마누라에게까지 한소리를 듣는다. 동류와 반대파 모두에게 조롱받는 처지다. 참담하기로 가랑이를 기어간 회음후 한신의 레벨이다.

같은 파 동료인듯한 선비가 같이 대업을 이루자고 한다. 그 대업이 뭐냐고 묻는다. 그러자 “반대파를 싹쓸이 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민초들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죠.”한다. 하지만 그 선비는 김윤서가 시중드는 하인에게 음식을 나눠주려하자 “아랫것들 버릇 나빠진다”며 제지를 한다. 민초는 커녕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무시한다.

구국의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고 지금도 인천에서 쌍안경 들고 서있는 맥아더는 한국과 한국민을 장기판의 졸 정도로 봤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전쟁에 임했다. 그의 못난이 졸개인 윌러비와 쌍으로 개판을 쳤다. 평양 원산쯤으로 국경이 확정되고 희생도 훨씬 줄었을 전쟁을 오만과 무지와 탐욕으로 망친, 그냥 놈이라 해야 마땅하다. 이놈이 가학적인 성적 취향을 가졌다고한다. 이혼한 처는 명색이 장군이지만 침대에선 이등병보다 못하다고 외고 다녔다.

김윤서가 음란소설을 접하면서 내면에서 잠자던 폭풍이 깨어난다. 아내에게 조차 무시당하던 겁쟁이가 아니다. 조선최고의 문장가는 음란소설의 진맛을 추구하고 동생을 고문했던 의금부 관리 이광헌에게 삽화로 쓸 춘화를 부탁한다. “성품이 온순하고 시류의 흐름에 거슬리지 않던” 그는 이 세계에서 만은 강단지게 걸어간다.

그 바닥의 거장인 인봉거사를 누르고 싶은 마음에 넘지 말아야 금단의 선을 넘는다. 애초에 금단이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설화든 신화든 깨어지지 않는 금기는 없다. 현실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상상력이 부족한 이광헌이 눈으로 봐야만 그릴 수 있다고 하자 정빈과 창고에서 “신묘막측한 성행위”를 구사하고 이광헌으로 하여금 관전케 했다. 형제의 환난도, 여인과의 사랑에도 미적거리며 풀잎처럼 눕던 사람이 음란소설을 위해 기꺼이 일을 저지른다.

이렇게 하여 전무후무한 섹시한 삽화가 게재된 음란소설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너무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면 그 또한 탈나기 십상이다. “동백아가씨”는 금지곡이 되었고 “돌아와요 부산항”은 조용필에게 가수 짓을 못하게 했다. 너무나 실감 있게 그린관계로 삽화의 주인이 정빈임이 책을 본 북촌의 아녀자들 사이에 추문이 되어 정빈이 알게 된다. 그리고 김윤서를 잡아들여 그린 자를 추달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김윤서는 그린이가 이광헌임을 말하지 않는다. “대업”도 아우의 재난도 아랑곳 않던 그는 동업자이자 소울메이트를 위해 모진 고문을 감내한다. 왕의 친국이 잠시 멈춘 사이에 탈출하다 잡혀 이광헌이 위기에 처하자 “만약 그 사람이 죽으면 나도 낙담하여 이말 저말 하게 될지도 모르오” 란 말로 이광헌의 목숨을 살린다.

소설이든 영화든 협박치고 이렇게 유려한 언사는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이광헌과 내시부 감찰단사이의 혈투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칼부림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용뿐만 아니라 볼 것 도 많은 영화다. 정빈과 만나 벌(蜂) 때문에 생긴 일이라든가. 찻물을 끓이는 장면, 그리고 김윤서가 잡혀가는 장면에서 까마귀소리 등등. 전문가 들은 이런 걸 두고 미장센이 좋다고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음란한 이 영화는 얄궂게도 도덕 교과서 마냥 내 심장을 파고든다. 마땅히 해야 하고 바람직한 것들만큼이나 바람직하지 않는 것들도 존재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 통념상 바람직하지 않다하여 강압적으로 못하게 할 때 미치게 된다. 감옥이 고통스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세상과 불화했던 내가 딱 한번 그러지 않은 적이 있다. 노무현이 당선 됐을 때다. 다음날 그동안 내지 않았던 교통범칙금을 모두 냈다. 앞으로 착하게 살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이후 이제까지 누가 뭐라해도 노무현에 대해 한마디 원망도 비판도 하지 않았다. 적극 옹호하지도 않았지만 욕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심 무시를 했다. 태어나서 직접 본 적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신뢰하고 사랑한 적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은 나의 우상이요. 나의 대리인이다. 그는 상(常)스럽기 때문이다. 태생이 상스럽고, 대통령이란 지존의 자리에서도 상스러웠다. 그리고 퇴임 후에도 상스럽고자 했다.

기득권층은 전임자처럼 태생이 그래도 주류에 진입한 이상 상스러움을 버리고 변태를 원했으나 여전한 상스러움에 히스테리를 보이고 물어뜯었다. 그리고 국민의 대중을 차지하는 상인(常人)들은 제 주제 파악도 못하고 주류들이 끄는 대로 무뇌아처럼 같이 물어뜯었다.

한동안 신문도 TV도 외면하며 살았다. 그러다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후로 가끔씩만 본다. 앞으로도 노무현을 지지 할 것이며 그 같은 정치인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은 常人의 입장에서 단군이래로 가장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김윤서는 이마빡에다 “淫亂”이라고 새기고 바닷가에서 유배생활을 한다. 그럼에도 구김 없이 상쾌하다. 찾아간 이광헌 등에게 새로운 음란소설의 소재를 이야기 하며 변함없는 창작욕을 보인다.

그 아버지와 일족은 김윤서를 족보에서 파냈을까......? “분하지도 않느냐”던 아내는 목이라도 매달았을까......? 모를 일이다. 영화에서는 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왕의 여자와 통하고 그걸 음란소설로 써먹은 사람치고는 일말의 건더기조차 없다. 한마디로 통쾌하다.

우리 인근에 아픈 시아버지의 똥을 맛보며 병수발을 한 며느리의 효행비가 있다고 한다. 이런 건 당장 때려 부숴야 한다. 자발적이 아니라 제도가 강요한 거다. 열녀비 효행비 등은 한마디로 일방을 위해 일방이 죽도록, 뼈 빠지게 고생했다는 말이다. 전에 일하다가 실수로 열녀비를 부순 일이 있다. 촌로들에게 무지 욕을 들어먹고 적잖이 변상을 했지만 속으로는 고소했다.

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甲子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詩의 이슬에는
맻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徐 廷柱-

이런 시를 쓴 미당(未堂)을 아무리 말당(末堂)짓을 좀했기로서니 미워할 수 있겠는가.

황산벌과 음란서생은 좋은 영화다. 혹 못 봤으면 한 번 보기를 권한다. 대충 본 사람은 작심하고 한 번 더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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