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가 빚어내는 빛의 가능성
그림 속(책 표지 참조, <벨사살 왕의 연회>) 인물을 보라. 무엇엔가 흠씬 놀란 듯한 표정이다. 황금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금빛으로 둘러싸인 그는 눈부시며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놀란 시선을 좇다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벽에서 솟아나온 손과 그 손이 만들어내는 알 수 없는 글자들. 그는 필시 그것들로 인해서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저 손의 주인공은 도대체 누구이며, 글씨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림 속 주인공은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벨사살 왕이다. 그는, 아버지 느부갓네살 왕에 비해 나라를 다스릴 줄 모르는 위인이었다. 온갖 횡포만 부리며 놀기만 하는 그가 아주 성대한 연회를 열기로 한다. 초대 손님이 천 명이나 되는 잔치의 주인공인 벨사살 왕은 흥에 겨워 술만 마셔댄다. 결국, 흠뻑 취한 그는 선왕이 예루살렘 성소에서 약탈해온 황금성배를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그 잔을 잘못 사용했다간 신성모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잔에 술을 부어 마시기 시작한다.
분위기는 고조되어 가고 연회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불현듯 벽에서 손이 하나 나타나 알 수 없는 문자를 쓴다.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지만 그 글씨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나타나서 문자를 해독한 사람이 선왕 때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문자의 뜻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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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네 므네 드켈 브라신> '하느님께서 왕의 나라 햇수를 세어보시고 마감하셨다. 그리고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무게가 모자랐다. 그리하여 왕의 나라를 이웃나라에 갈라주신다'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이제 왕이 아닙니다. 그날 밤 벨사살 왕은 참혹하게 살해 당한다. | |
렘브란트는 성서를 읽고 나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벨사살 왕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이 인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그 사건은 너무나 먼 옛날 이야기인데 어떻게 이처럼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까. 렘브란트가 그림 그리기 편하게 연회장의 분위기를 묘사해 놓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나 그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상상력만은 자신 있었기 때문.
빛의 화가,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 알려진 렘브란트는 역사화도 많이 그렸다. 이 책을 통해 보게 된 <벨사살 왕의 연회>가 그 중 하나. 하지만 렘브란트가 단지 상상력이 뛰어났던 것만은 아니다. 똑같은 그림이라도 렘브란트가 모사(模寫)를 하면, 원작보다 사실감 있게 그릴 만큼 그는 실력도 있는 화가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연극배우들을 초청해서 상황을 재연한 것이나, 등장인물이 많아도 하나하나 섬세한 표정을 넣는 노력만 봐도 그의 역량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그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차고 넘쳤기에 빛의 화가로 불릴 수 있었고 그의 빛을 모두가 사랑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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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을 통해 렘브란트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고 한다면 조금은 실망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렘브란트의 그림 세계와 그의 삶도 녹아 있지만, 시대적인 여담도 많아서 적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벨사살 왕의 연회>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듯, 책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렘브란트를 만날 수 있는 흐름을 유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미술에 대해 난해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렘브란트를 통해서 17세기의 네덜란드를 잠시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흥미로운 의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픈 충동이 일기도 한다. 그가 빛의 화가라고 알려진 데에는 밝음과 어둠을 잘 대비시켰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인간적인 면 또한 잘 승화시켰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
그러나 <벨사살 왕의 연회>를 통해 엿볼 수 있듯이, 그의 '빛'은 따스하면서도 탐욕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도 드러내고 있다. 그 이면을 상상하면서 렘브란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이어질 때,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다 더 심미안을 갖고 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