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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 작성일
- 2022.1.8
두 번째 용사는 복수의 길을 웃으며 걷는다 8
- 글쓴이
- 키즈카 네로 저
디앤씨미디어(D&C미디어)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꿈에도 그러던 지구로의 귀환, 비록 이세계에 있었던 기억은 지워졌어도 가족과의 해우를 그렸던 주인공에게 닥친 시련은 이세계에 있었던 일보다 더한 것이었으니. 궁극의 꿈도 희망도 없는 다크 판타지를 그렸던 이 작품도 결국 완결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 한 명과 여동생을 대동하고 다시 이세계로 돌아온 주인공은 복수 대상자 중 하나였던 성녀를 급습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죽어 있고, 철천지원수였던 왕녀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인공을 맞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소환되었을 때 만나자마자 바로 죽였다면 못 볼 꼴 안 봐도 되었을 텐데, 그러면 기껏 이세계로 데려온 친구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방구석 폐인질을 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암에 걸리지 않게 해주었을 텐데 하는 많이 아쉬움이 남는 8권인데요.
이번 8권에서 왕녀는 신(神)의 힘을 흡수하자마자 그토록 바랐던 죽은 언니를 부활 시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런 왕녀를 저지해야 될 주인공은, 왕녀가 너무나 강해져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게 되죠. 결국 최종 보스는 왕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뜬금없이 마왕(메인 히로인) 앓이를 해대는 모습들을 보이길래 최종 보스는 마왕이 될까 했습니다만(악당이 되어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히로인을 구출하는 건 주인공). 이번 8권을 보니 마왕 앓이는 거대한 떡밥이었지 뭡니까(자세한 건 생략). 아무튼 왕녀를 피해 선대 용사들이 만든 아공간으로 피신은 했는데 왕녀에 대항할 수단이 전혀 없어요. 이쯤 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용사의 전매특허인 '용기'를 내어 열혈물처럼 근성과 끈기로 왕녀를 처단한다는 스펙터클한 카타르시스를 보여주는 게 보통이잖아요?
근데 작가는 복수를 꿈꿨던 너의 기억이 가짜였다면?라는 화두를 던지며 스펙터클한 카타르시스보다 마음의 완성이라는 에반게리온 신지 증후군을 택합니다. 이 말을 이 작품에 빗대자면 마음이 망가져 골방에 틀어박힌 주인공을 외부의 자극으로 깨워 전장에 세운다는 의미를 가지죠. 사실 이런 전개는 90년대 감성물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긴 합니다만. 자신이 해왔던 일들(복수)이 주입된 것이라면 과연 어떤 마음이 들까요. 주입한 원흉을 찾아 없애야겠지만 그것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게다가 복수에 휘말려 애꿎은 친구가 죽어 버렸죠. 왕녀를 피해 도망간 아공간에서 주인공은 태초에 신(神)이 있고 어쩌구 이세계 창세 신화를 듣게 됩니다. 그 신화에서 선대 용사들은 신(神)들의 아귀다툼에 이용당하다 죽어갔고, 그 원한을 고스란히 주인공이 물려받게 되었죠.
작가는 평범한 사람이 이런 상황(주입된 복수)과 마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실험적인 장면들을 넣습니다. 작가가 선택한 건 결국 주인공도 평범한 사람이었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버티지 못해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결과를 보여주려 하죠. 그야 복수의 마음은 주입된 것이고, 거기에 휘둘려 놀아난 데다 친구도 휘말려 죽어 버렸으니. 그런데 이쯤 왕녀는 무슨 역할일까 의문이 들 텐데요. 왕녀도 결국은 신(神)들의 주사위 판위에 놓인 말처럼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저질렀던 복수라는 의의가 더더욱 모르게 되어 버리죠. 그런 주인공을 깨우기 위해 히로인들은 그의 정신세계에 들어가 일어서도록 호소한다는 다소 90년대식 클리셰가 이어집니다. 뻔한 전개, 뻔한 결말이라도, "다녀왔어요. 어서 와!" 클리셰라도 좀 더 극적인 장면은 연출하기 힘들었던 것일까요.
대뜸 맺으며: 2~3권은 더 쓸 분량을 8권 하나에 다 집어넣어놔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 버렸군요. 7권까지 시리어스와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할 듯이 해놓고 이제 와 너의 기억은 주입된 거라고 하니 뜬금없게 되죠. 그리고 일본 작가들이 좋아하는 신(神) 타령은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 히로인들이 주인공의 정신세계에 들어가 깨우는 장면들은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장면들이고요. 주인공도 의욕이 없어, 이대로 죽을래 자포자기하는 모습들은 한마디로 비호감이었습니다. 죽으려면 어디 딴 데 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던가, 마치 나 좀 구해줘라는 듯 히로인들 앞에서 알짱거리며 어리광 부리는 듯한 장면 장면에서 남자 욕은 주인공이 다 먹이고 있네 하는 느낌이었군요. 왕녀와 신들과 보다 진지한 싸움을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이리 급하게 완결 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일반인이 용사가 되어 싸우란다고 싸워지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메시지 하나는 건질 수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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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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