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읽고 있나요?

씨엔
- 작성일
- 2012.7.6
오레오레
- 글쓴이
- 호시노 도모유키 저
은행나무
보이스 피싱 중에 "나야 나('오레 오레' 혹은 '오레다요 오레')" 사기가 있다. 보통 시골의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야 나~"라고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한다. 뭐 빚을 졌다던가 사고를 쳤다든가. 전화를 건 상대를 자식 혹은 친척으로 생각한 사람이 돈을 보내는 보이스 피싱이다.
주인공은 우연히 손에 넣은 다른 사람의 핸드폰으로 장난으로 "나야 나"사기를 친다. 그리고 돈을 받는다. 그런데 돈을 부친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라며 찾아온다. 어느새 주인공은 핸드폰을 잃어버린 그 남자가 되어 있고(실은 그 남자도 내가 된 것이었지만), 진짜 집에 가 보니 다른 사람이 내가 되어 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점차 내가 된다. 여기도 저기도 온통 나 뿐이다. 처음에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수고를 던다거나 내가 어떻게 해도 상대도 나 자신이므로 이해해줄 것이라거나 같은 습관과 좋아하는 것이 같아 마음이 편하고 신뢰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것도 잠깐. 자신보다 안좋은 처지의 나를 만난다거나 나쁜 짓을 한 나를 만난다거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어느새 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소름끼치는 상태에 이른다. 상대를 죽여도(살인은 어느새 타사-삭제-그것의 표현으로 바뀌면서 순화되었다는 이미지를 줌과 동시네 살인이라는 죄의 무게도 덜어버린다)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존재하고 어느새 나는 몇번이나 죽고 되살아났는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른다. 나의 존재 증명이라고 생각한 가족관계라든가 추억도 어느새 뒤죽박죽 되어버려 옛일을 생각하는 것은 점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된다.
처음 보이스 피싱이라는 소재로 시작해 타인의 행세를 하는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나와 타인의 경계를 순식간에 허물어뜨려 '내가 나라는 사실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등등의 철학적 물음을 던져준 책이었다. 주제가 심오한 것에 비해 전반적인 내용은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도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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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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