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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혼
  1. 취중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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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도종환


정신없이 살다보면 문득 길 한가운데 혼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거지. 힘들다. 이런 저런 생각들 속에 파묻혀 주저 앉고 만다. 그리곤 내가 걸어왔던 길을 죽 둘러본다. 결코 쉽지 않은 길들이다. 비교적 잘 정돈된 길을 따라 왔지만, 때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울창한 숲을 지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 저기로 오지 말고 좀 더 좋은 길 편안한 길 똑바른 길을 따라왔다면. 후회해봐야 이미 내가 지나온 길은 바뀌지 않는다. 그 길을 건너 왔기에 이 자리에 주저 앉아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사실 투정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가야할 길을 본다. 안개가 자욱하고, 얼마나 더 험난한 길이 될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겁이 난다.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지친다. 하지만 길 한가운데서 주저 앉아 살 수도 없다. 일어나서 걸어갈 수 밖에 없다. 가야겠지. 그래도 오늘은 좀 쉬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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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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