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1. 마녀가 본 공연

이미지

지난 금요일, 샤를르 뒤투아(Charles Dutoit) 지휘와 샹탈 쥬이에(Chantal Juillet) 바이올린 연주의 서울 시향과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고령의 샤를르 뒤투아는 오래 전에 한국을 방문한 바 있고, 이번이 세 번째인가의 방문이라고 한다.  그는 무척이나 세련되고 여유로웠으며 무대 매너까지 깔끔했다.  그와 협연을 한 샹탈은 오랜 시간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린니스트로서 활동해서인지, 역시 몬트리올 심포니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던 뒤투아와는 자신감 넘치는 완벽한 하모니를 선보였다.


 


샤를르 뒤투아 만큼이나 건장한 체구(키가 크고 근육질이란 의미임)인 그녀는, 거친 음색을 요구하는 난해한 스트라빈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아무 멋지게 선보였다.


 


어떤 이들한테 그녀의 음색이 남자들만큼 쭉쭉 뻣어나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녀는 무척이나 다이나믹하고, 에너제틱한 건전지를 달고 있는 사람처럼, 후반부 악장으로 갈수록 넘치는 정열을 퍼부어댔다.


 


그녀가 입고 나온 옷의 스타일과 색체 감각을 여기에 옮기지 못해 무척 유감스러운데, 그녀는 바로, 미래주의의 보초니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빛의 확산이 느껴지는 현란한 선이 일정치 못한 각도로 뻗어나가는 옷감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나왔는데, 주황과 오렌지 톤이 주조색이 된 그녀의 옷 아래로는 역시 주황색의 스타킹까지 매치해 신어, 그녀의 세련된 의상 감각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드레스는 스트라빈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청각적 느낌을 시각적으로 옮겨놓은 것 같은 색체와 선의 방향성, 그리고, 아랫단으로 갈수록 올이 뜯겨있어 삐쭉삐죽 벌어질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정전기가 발생할 때의 머리카락을 연상시켜준다.


 


누가 의상디자이너인지는 모르지만, 스트라빈스키를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임에 분명할 듯 싶다. 또 얼마전 우연한 계기로 본 우디 앨런의 영화 '맬린다 앤 맬린다'에서도 바로 이 스트라빈스키의 바협 이야기가 나왔었다.


 


움베르토 보초니(Umberto Boccioni)


 


그는 스트라빈스키와 거의 비슷한 시기의 사람이다. 1882년에 태어났지만, 스트라빈스키처럼 장수하지 못하고 1916년에 죽었으니, 요절한 천재이다. F.T. 마리네티가 프랑스 신문 <피가로>에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하며 "기계의 윙력에 의하여 출현한 새로운 세계를 환연하고, 과거에 대한 모든 집착을 거부"할 것을 주창하므로서, 미래 주의 미술이 탄생하게 되었다.


 


기관총의 탄환처럼 질주하는 자동차는 사모트라키의 니케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마라네티의 말마따나, 이들은 속도를 중시한다. 따라서 미래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역동적'이다. 이들은 일상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움직임에 관심을 두고, 극적인 세계의 감각을 탐구한다.


 


한편, 브라크나 피카소의 해체적 입체주의를 접하게 되면서, 특히 보초니의 작품에는 기하학적 형태의 파편에 다양한 색체를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진다.. 이들은 기계 미학과 속도미의 표혀을 위해, 역선(foce-line),을 추구하고, 대상의 공간으로서의 역동적 침투, 또한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과 후감의 감각까지 포함시키는 노력 등을 통해 가히 충격적인 시도를 과감히 많이 해냈다.


 


움베르토 보초니는 특히 빛에 주목하였는데, 후기 작품을 보면 특히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


대상의 구조 속에 내재한 에너지를 끄집어 내고, 대상을 주변 공간 속으로 빨아 내어 그 형태를 열어 속을 드려내 보이려는 시도, 대단히 해부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는 그의 미학, 철학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보초니 스트라빈스키의 시각적 느낌이 청각적 느낌과 서로 상통하게 되었는지는 다분히 주관적 체험에 해당된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 역시, 음악에 있어서의 새로운 시도를 주도한 장본인 것처럼, 보초니 역시 미술에 있어서의 새로운 시도를 주도한 장본인이기에 서로의 출발점이 비슷하다고 본다.


 


게다가, 스트라빈스키가 '페트라슈카'처럼 역동적인 발레 음악을 작곡해서, 그 누구보다도 육체(움직임)의 원리를 음악적으로 해석하려고 했다면, 보초와 역시 대상 내부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덩어리로 파악해서 조형 작품으로 구현해 내지 않았던가?  그 뿐이 아니다. 스트라빈스키의 곡 중에서 '봄의 제전'처럼 강력한 빛을 느끼게 해주는 조금은 선병질적인 음악이 있다며, 보초니의 작품 역시 노골적으로 빛을 쫓고 있다.


 


두 사람의 작품이 비록 영역은 다르다고 하지만, 에너지, 분산, 확장, 중첩, 겹겹이 쌓아올림, 해체, 붉은 빛 색체감이란 점들을 공통점으로 모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은 내 생각이므로, 어디에다 옮겨서 숙제 같은 것으로 내지 말았으면 한다. 다 근거 부족으로 따끔한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하여튼, 니스에서 작곡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나, 지중해성 기후인 이태리에서 탄생된 미래파의 회화 작품에서 어떻게 '빛'과 '광선'을 무시할 수 있으랴?  그럼 점에서 연주회 당일, 샹탈 주이에의 의상은 빠르게 분산하는 빛과 붉은 광선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할 수 있겠고, 거의 정확하게 스트라빈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주는 청각적 느낌을 시각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미래파 화가들의 운동을 바탕으로 <색체음악>,<소음예술>이라는 일대 혁명이 일어났으니, 과연...... 스트라빈스키와 미래파의 화가들은 한 시대의 사상과 예술혼을 마치 지중해를 공유하듯이 나누고 있다해도 무리가 아니겠다.(지?)


 


자, 그럼 악장(편의상)별로, 보초니의 그림을 스트라빈스키의 바협과 비교해 가면서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아니 공감각적으로 감상해보자. 잠깐, 둘다 감상하다보면, 신경질이 나서 미쳐버릴 수도 있다. 헤르츠를 낮추든가, 그림에서 눈을 너무 오래 두지 마시길.


 


Stravinsky(1882`1971), <Violin Concerto in D Major, 1931)


 


스트라빈스키는 이 곡을 작곡하기 이전에 바이올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쇼트(Schott) 출판사 사장인 빌리 슈트레커에게서 뜻밖의 제의를 받아 이 곡을 작곡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그의 동료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는 바이올린에 대한 특성을 가르쳐주며, 기존 스타일의 서법을 따르지 말고, 새롭고 독특한 서법을 창조해 낼 것을 독려한다. 결국 스트라빈스키는 1931년 니스에서 작곡에 착수해 또 다른 친구 더쉬킨의 자문을 구해가며 그 해 가을 4악장으로 되 이 곡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 곡의 각 악장은, 1,2,3,4 악장의 서수적 명칭 대신에 '토카타' '아리아 I', '아리아 II', '카프리치오' 라는 다분히 바로크적 명칭이 붙어 있다.  넓게 펼쳐진 음이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인가, 이 것이 듣는 이에게 하나의 미지수였다. 중음 연주로 시작된 '토카타'에서는 비교적 온건한 느낌이었지만, '아리아 II'에 이르러 현란함음 팽팽 도는 천체에 더더욱 가속이 붙은 것처럼 빛의 쏜살같은 흐름이 느껴져서, 과연 프랑스적 미학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압권은 절대적 파워가 필요한 '카프리치오'가 아닐까?


 


바이올린 수석 데이비드 김과 주고 받는 스탑핑 주법의 바이올린과 현악군들과의 반복해서 같은 음을 핑거링하게 되는 요란함 속에서도 내적 질서가 잡혀가지만, 현악기 군들에서 목관, 금관 악기가 가세할 때 마다 확장되는 범주는 프랙털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또 다시 새로운 질서로 편입되는, 카오스적 발전이 느껴진다.


 


만일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이 곡을 들었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그 또한 궁금하다.  자, 그럼 내 식대로 나는 어떻게 들었는지 '미래파'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보초니의 이야기로 풀어낼까 한다.


 


 





1) 1악장 - Aria 1


 


조금 어둡다. 칙칙하다. 어딘가로 향하는 것 같은데,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약간은 하품도 나올 듯 하다. 조금 젊잖다. 아니다, 젊잖은 신사의 속마음을 보는 것처럼, 뭔 일을 남몰래 모의하고 돌아온 사람의 음융함이 느껴진다. 그런 악장이다.


 


States of Mind: Those who go
1911
Oil on canvas
70.8 x 95.9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 Elasticity
1912
Oil on canvas
39 3/8 x 39 3/8 in.
Collection Dr. Riccardo Jucker, Milan


 


 2악장 - Aria I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만은 들어줄 수 없다. 조금은 위의 그림처럼 약간은 두루뭉실한 느낌도 들지만, 가끔씩 히스테릭하게 성질을 내어, 바짝 사람을 긴장하도록 마든다. 바로 그 신경질을 탄성으로 표현하면 위 그림 같을지 모르겠다.


 


 


 





 


3) Dynamism of a Woman's Head
1914
Pasted papers, watercolor, gouache, ink, and oil on canvas
Civico Museo d'Arte Contemporanea, Palazzo Reale, Milan


 


 3악장 - Aria II


본격적인 히스테리의 시작이다. 편두통이 있는 여인이 발작적으로 고함을 지르는 듯, 그 고함 소리가 간절적으로 이어지며, 비명처럼 들리듯하다. 편두통이 적당한 표현같다. 머리가 쪼개지는 느낌, 바로 그런 느낌으로 음이 가닥가닥 찢어진다. 어렸을 때 먹은 불량식품 쫄쫄이처럼, 음이 가닥가닥 뜯어지며 길게 늘어나는데, 갈수록 그 속도가 빨라진다. 쫄쫄이를 많이 먹은 아이가 쨉싸게 쫄쫄이를 뜨는 속도로.....


 


 


 





4) Charge of the Lancers
1915
Tempera and collage on pasteboard
32 x 50 cm
Ricardo and Magda Jucker Collection, Milan



 

'Capriccio'


 


변화무쌍하고, 강력한 빛줄기가 밤하늘에서 레이져 쇼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력한 핑거링으로 가끔 바이올린 현을 뜯는다. 악장과 듀엣으로 음을 주고 받기도 하고, 튜티와 맞물려 힘 자랑을 하기도 한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마녀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08.5.4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08.5.4
  2. 작성일
    2008.2.1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08.2.1
  3. 작성일
    2008.2.1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08.2.1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6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66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26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