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도둑

#마이클핀클

#생각의힘

“그가 생각하기에 예술품 절도는 누구에게도 두려움을 주지 않아야 하며 낮에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_34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는 루벤스의 집 박물관에서 맵시있게 차려입은 브라이트비저와 세련된 옷차림의 앤 캐서린은 환상적인 호흡으로 벌건 대낮에 <아담과 이브> 조각상을 훔치는데 성공한다. 이건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이들은 실존 인물이다. 무려 300여 점이 넘는 미술품을 훔친 이 커플의 이야기가 실화라니 놀라움과 호기심이 솟구쳤다. 빨리 읽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그 많은 미술품을 훔쳤으니 누구나 그가 ‘억’ 소리 나게 부유한 삶을 살았을 거라 예상할 테다. 예상은 빗나가야 제맛 아니겠는가? 그들은 절도 후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는 길로 돌아갈 정도로 가난했단다. 도대체 왜?

“브라이트비저는 단 한 가지 이유때문에 예술품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_35

그러면 아름다움에 둘러싸이고 싶다고 해서, 그 방법이 비폭력적이고 신사적이라고 해서, 그 미술품들을 팔아서 사적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 행위가 정당하다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닐 텐데, 그는 스스로 죄책감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 어째서 그게 가능한지 책을 조금 더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외조부는 신기한(?) 지팡이로 값이 나가는 유물이 묻힌 곳을 귀신같이 찾아냈고(보물을 보는 눈이 있었다고 함) 브라이트비저는 손으로 그곳을 파서 옛 유물을 가져오곤 했단다. 어른이 유물 도굴을 묵인했던 거다. 그뿐 아니라 할아버지는 하나뿐인 손주에게 골동품, 옛날 엽서, 오래된 동전과 우표 등 갖고 싶은 건 모두 사 모을 수 있게 늘 하얀 봉투를 줬다. 그러니 브라이트비저에게 갖고 싶은 건 늘 가지는 게 당연했을 거다. 또, 감정 기복이 심하고 차가운 어머니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성적을 위조하는 걸 묵인했다. 박물관에 가면 아들이 변덕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걸 안 브라이트비저의 부모는 자주 박물관에 데려갔고 어린 브라이트비저는 금지된 걸 알면서도 경비원의 시선을 피해 그림이나 작품을 만져보았다.

나는 성장 과정에 브라이트비저가 받은 잘못된 피드백들이 그의 범죄에 정당성을 주고 죄책감을 앗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는 비록 도둑이었지만, 귀하고 가치 있는 예술품을 알아보는 심미안과 예술품에 대한 지식과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 능력을 감정사라거나 미술관 큐레이터나 발굴가 등의 분야에서 발휘했다면 300여 점이 도난당한 뒤 200여 점이 실종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브라이트비저의 인상에도 영원한 건 없다. 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의 불타는 사랑도 허무하고 무참하게 끝났다. 브라이트비저의 예술품을 향한 순수한 욕망도 왜곡되고 비틀려버렸다. 절대 꼬리가 밟히지 않을 것 같은 도둑질도 꼬리뿐만 아니라 목덜미까지 덥석 잡혀버렸다. 겨우 맺은 하나의 우정도 깨졌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죽기 전까지 영원한 한 가지가 있다면 ‘도벽’이 아닐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과연 그를 무어라 결론지을지 궁금했었다. 나는 그를 칭송하거나 칭찬하고 싶지 않다. 그는 그저 미성숙하고 자기 욕구 충족에만 눈이 먼 무책임한 도둑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난 놈’이지만 ‘되먹지 못한 놈’이다.

심리학자들이 풀어놓는 주인공들에 대한 심리분석도 재밌고 실제 있었던 다른 예술품 절도 사건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흥미롭다. 유럽에 있는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브라이트비저는 비호감이지만, 『예술 도둑』은 호감이다.

#도서협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