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크리스마스
- 작성일
- 2022.10.25
류
- 글쓴이
- 히가시야마 아키라 저
해피북스투유
우리는 끝내 마음을 따르거나 아니면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은지는 죽을 때까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단호하게 마음을 거절하다 보면 우리는 더는 우리가 아니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되어 간다. p.406~407
1975년 대만.
장제스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예치우성의 할아버지 예준린이 살해당했다. 치우성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포목점에 갔다가 욕조에 죽어 있는 걸 발견한다.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리가 없다고 여긴 치우성은 단번에 살해됐다는 걸 예감하는데, 마침 가게로 전화가 걸려온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대가 범인임을 확신하지만, 잡을 길이 없었다.
그때부터 치우성의 삶은 할아버지의 죽음과 뗄 수 없게 된다.
명문고에 다니던 치우성이 친한 친구 샤오잔이 제안한 대리 시험을 치르게 된 건 할아버지의 가게 빚으로 인한 어려움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고, 이후 걸려서 퇴학당해 평판이 좋지 않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싸움질을 하는 양아치들과 한판 벌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군대에 억지로 끌려가게 되는 등 그의 삶이 요란하게 펼쳐진다.
작가의 이력이 평범하지 않은 덕분에 소설의 배경 역시 조금은 남달랐던 것 같다. 히가시야마 아키라는 대만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까지 살다가 일본으로 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이름은 일본인이지만 소설의 배경은 대만이었다. 그것도 전쟁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중국의 공산당과 국민당의 대립과 그로 인한 대만으로의 이주를 소재로 한 가족의 막내 예치우성을 중심으로 흘렀다. 거기에 할아버지가 살해된 사건 역시 소설과 뗄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남의 나라 역사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소설에서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던 덕분에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전쟁 당시 공산당을 죽이고 일본인에게 붙어먹은 중국인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는 대만으로 건너와 가족들을 건실하게 보살폈다. 그러면서 죽은 의형제가 남긴 유일한 아들인 위우원을 양자로 들여 친자식들보다 살뜰하게 대했다. 또한 유일한 손자인 치우성에게는 더없이 좋은 할아버지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살해된 걸 목격한 손자였으니 살아가는 내내 잊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치우성의 학창 시절, 반항기, 첫 연애까지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인생이 흐르는 동안 그 사건을 언급하며 살해범을 찾아야 한다고 상기했다.
그것은 면면히 이어진 증오의 연쇄를 가장 아름답게 끝내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피를 흘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피를 흘리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p.462
사실 그렇게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보통의 사람인 치우성이 할아버지를 죽인 자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찰도 찾지 못하는 범인을 10대 소년에서 20대 청년이 된 그가 찾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소설 중간중간 할아버지가 세운 도깨비불 사당이 등장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진실로 이끌긴 했으나 정답을 보여준 건 아니라서 찾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밀은 생각보다 가까운 데에 있었고, 복수의 염원이 인간의 정이라는 것에 다소 굴복했다는 결말이 드러났다. 그래서 좀 놀라웠다. 밝혀진 비밀도 그렇고 이후 펼쳐진 이야기도 그렇고 말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따뜻한 것에 참 약하기 마련인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게 된 건 만장일치로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것과 유명한 일본 작가들의 어마어마한 극찬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대했는데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고 나서 그 정도까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대감이 너무 컸나 보다.
그래도 물 흐르듯 흘러가던 예치우성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나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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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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