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크리스마스
- 작성일
- 2022.11.4
악의 심장
- 글쓴이
- 크리스 카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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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넌 흥미를 느끼지 않아? 그렇게 열성적이었던 학생이, 살인자의 머릿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싶지 않았다고?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진짜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던 거야? 우리가 배웠던 이론들이 진실인지, 아니면 멍청한 심리학자들의 허튼 추측에 불과할 뿐인지 정말로 알고 싶지 않았어?" p.228
와이오밍주에 있는 어느 휴게소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려던 보안관과 보안관보는 그곳으로 돌진해오는 픽업트럭을 발견하고 가게 안 사람들에게 피하라고 소리친다. 큰 사고가 일어날 거라 예상했지만, 다행히 트럭은 식당을 살짝 빗겨가 바로 옆에 있는 창고와 화장실 건물에 처박혔다. 보안관이 밖으로 나가 확인한 결과 운전자가 깨진 유리에 찔려 즉사했다는 걸 알았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보안관보를 불렀으나 그는 픽업트럭이 치고 가는 바람에 열린 차의 트렁크를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트렁크 속에 있던 열린 아이스박스 안에는 여자의 잘린 머리 두 개가 들어있었다. 그 즉시 식당에 있던 차의 운전자가 체포되어 FBI로 넘겨졌다.
LAPD의 로버트 헌터는 파트너와 오랫동안 매달린 살인사건을 끝내고 휴가를 앞두고 있었다. 하와이로 2주간 여행을 떠나기 위해 몇 시간 후 비행기를 타려는 그는 사무실로 급히 오라는 반장의 연락을 받는다. 사무실에 도착한 헌터는 FBI 강력범죄분석센터의 센터장 에이드리언 케네디와 특수요원 코트니 테일러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헌터에게 와이오밍주 휴게소에서 일어난 추돌사고로 발견하게 된 두 여자의 머리를 이야기하며 붙잡은 용의자의 신상에 대해서도 말한다. 용의자의 면허증을 통해 알게 된 신상과 차량 소유주의 존재에 대해 말해도 헌터는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그러다 FBI 측이 3일 동안 그가 유일하게 내뱉은 '로버트 헌터에게만 말하겠다'는 말을 들려주며 용의자의 사진을 보여주자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휴가를 포기하고 FBI 아카데미가 있는 콴티코로 향한다.
우연한 추돌사고로 발견하게 된 몸통 없는 머리로 인해 살인 용의자가 체포되었다. 시신은 단순히 목이 잘린 게 아니라 살아있을 때 심하게 고문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입술에는 자물쇠가 세 개 채워져 있었고, 자물쇠를 제거하자 치아 전부와 혀가 없었다. 심지어 안구까지 적출돼 있었다.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라 용의자는 당연히 FBI에 넘겨졌다. 하지만 용의자는 3일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로버트 헌터의 이름이 언급되자 FBI는 반드시 그를 데리고 와야만 했다.
LA의 특수강력범죄수사대 팀장 로버트 헌터는 23살 때 FBI의 스카우트를 받았을 만큼 출중한 능력이 있었고, 그가 쓴 범죄 심리학 박사 논문은 FBI 요원들의 필독서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프로파일러 중에 최고라고 칭하는 그를 용의자가 찾고 있으니 당연히 모셔가야 했다.
그러나 헌터는 사건에 대해 듣고 있어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온전히 FBI의 소관일 뿐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FBI 요원들을 따라 콴티코로 향하게 된 건 용의자가 스탠퍼드 대학 시절 룸메이트로 친하게 지냈던 루시엔 폴터였기 때문이다.
헌터는 콴티코에서 오랜만에 루시엔과 재회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헌터가 졸업을 하고 떠난 뒤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하던 루시엔은 마약 중독으로 인해 나쁜 이들에게 손을 벌리게 되어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했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고, 누가 그랬는지 안다고 하며 혹시 몰라 그들에게 의뢰를 받았을 때마다 기록해둔 공책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FBI 요원 코트니와 함께 루시엔이 알려준 은신처로 가게 된 헌터는 대학 시절 루시엔과 함께 셋이서 어울렸던 수전의 문신 피부가 걸린 액자를 발견한다. 이후 콴티코로 돌아온 헌터는 결백을 주장했던 루시엔의 완전히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자,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알려주지. 나한테 질문 몇 개를 하게 해줄게. 나는 그 질문들에 진실하게 대답할 거야. 진심이야. 거짓말은 하지 않아. 그 후엔 내가 질문할 차례야. 내게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싶으면, 심문은 24시간 동안 종료야. 다음 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나는 너희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너희는 내게 진실을 말하고. 이 정도면 공평하지 않아?" p.167
그때부터 소설은 루시엔이 설계한 게임을 따르는 헌터의 두뇌 싸움으로 진행됐다.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며 어릴 때부터 월반을 거듭해 16살에 특별히 대학에 입학을 허가받은 헌터와 살인에 대한 욕구와 오랫동안 싸워가다 결국 굴복해 이 모든 걸 설계한 루시엔의 싸움이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었다. 헌터는 루시엔과 오랜만에 만나긴 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말려들지 않으려 감정을 통제했다. 반면에 동석한 FBI 요원 코트니는 헌터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게임에 때때로 말려들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그런 코트니를 보며 루시엔은 즐거워했고, 그녀를 가지고 놀았다.
루시엔과 게임을 진행하면 할수록 그의 살인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첫 살인은 같이 어울렸던 수전이었고, 이후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해왔다는 게 밝혀졌다. 심지어 그의 살인은 연쇄 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법이 있는 게 아니라 여자와 남자를 가리지 않으며 여러 나이대의 사람들을 살해했고, 지역 역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25년 동안 루시엔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심지어 루시엔은 심리학을 전공한, 빌어먹게 똑똑한 인간이었다. 그가 했을 살인을 밝혀내고 피해자의 유골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에게 협조해야만 했다. 그게 피해자의 가족을 위한 길이라는 걸 헌터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루시엔은 경험이 많습니다. 이 게임을 아주 오랫동안 해오고 있어요. 비록 우연히 붙잡혔다 해도, 모든 수를 아주 세밀하게 계산해놓았죠. 노련한 선수는 비장의 카드를 사용할 줄 압니다."
"절대 빨리 내놓지 말 것." 테일러가 말했다. "가장 좋은 순간이 올 때까지 쥐고 있을 것." p.383
하지만 루시엔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가 놀라운 진실을 말하자, 헌터는 그동안 견고하게 쌓아올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허물어진다. 그 부분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대체 이 악마는 뭘까 하는 생각을 거듭했다. 냉정을 유지했던 헌터가 당장 루시엔을 죽인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루시엔은 또 다른 진실을 밝히며 자신의 게임을 이어갔다. 헌터와 코트니는 끝까지 그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루시엔이 설계해 둔 게임이 대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어 무서웠고 긴장됐다. 과연 헌터가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헌터 역시 만만치 않은 천재적 두뇌를 가지고 있었기에 결말은 다행스러웠다고 할 수 있었다. 헌터의 개인적인 사정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기도 하지만, 루시엔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로버트 헌터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국내에는 이 작품만 출판되었다. 단독 작품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을 내용이라 읽는 데에 큰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이 시리즈를 전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하루 만에 다 읽었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로버트 헌터는 물론이고 루시엔까지 캐릭터의 매력이 도드라져서 푹 빠졌었다.
작가의 필력이 굉장했다. 부디 '로버트 헌터 시리즈'가 계속 나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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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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