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박이
  1.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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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거북이 달린다
감독
이연우
제작 / 장르
한국
개봉일
2009년 6월 11일
평균
별점8.2 (0)
햇살박이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에서 지독한 '아귀'를 인상깊게 연기해 주목받기 시작했던 배우 김윤석은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를 통해 명실공히 그해 최고의 배우로 거듭나며 그해 영화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화제의 중심에 섰던 그가 차기작으로 이연우 감독의 『거북이 달린다』를 선택했다. 그렇게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의 김윤석이 선택한 다음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나 역시 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다.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지만, 아직은 그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영화를 볼 만큼 신뢰가 쌓이지는 않았기에 우선 영화의 시놉시스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곧 궁금증이 일었다. 『추격자』에서 전직 형사 출신의 보도방 주인으로 열연했던 김윤석은 차기작 『거북이 달린다』에서도 또 형사 역을 맡았다. 물론 도시의 전직 형사가 아닌 시골의 현직 형사지만 형사라는 직업이 주는 제한적 이미지에서 그리 자유롭진 못하다.

게다가 또 누군가를 뒤쫓는다. 이번에는 범죄 증거를 찾아야 하는 얼굴 모르는 연쇄 살인범이 아니라 거액의 현상금과 걸린 지명수배 포스터가 길거리 곳곳에 붙어있는 유명한 탈주범이다. 이렇게 '누군가(범죄자)를 뒤쫓는 형사'라는 것만으로도 『거북이 달린다』의 캐릭터는 자연스레 김윤석의 전작이자 출세작인 『추격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왜 연이어 비슷해 보이는 캐릭터를 선택한 걸까. 그러나 영화를 보면 그런 걱정은 기우였음을 알게 된다. 






김윤석이 연기하는 조필성은 농땡이도 피우고 틈틈이 뒷돈도 챙기는 등 적당히 세상의 때가 묻은 형사다.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을 지킬 줄은 안다. 거기에 충청도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시골 사람 특유의 느릿하고 약간은 어수룩한 사람 냄새가 더해진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무능한 가장이라 구박하지만 속으론 걱정해주는 아내가 있고, 아빠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믿어주는 딸도 있다. 가족은 그에게 살아갈 이유고 힘이다. 결정적으로 그에게는 생활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점이 조필성과 『추격자』의 악질적인 전직 형사가 다른 점이다.  

『거북이 달린다』에서도 누군가를 뒤쫓는다. 이번에는 자신의 돈가방을 가로챈 탈주범이다. 아내의 적금을 몰래 가져와 소싸움 경기에서 친구 이름으로 판돈을 건 조필성은 큰돈을 번다. 무능하고 못난 남편에서 벗어나 간만에 가족들에게 큰소리를 치며 가장의 체면을 세울 생각에 입을 다물지 못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탈주범이 그의 돈가방을 낚아채면서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적금을 몰래 훔친 죄로 집에서도 쫓겨날 판이다.

잃어버린 돈가방을 찾기 위해 탈주범의 행방을 쫓던 조필성은 피같은 돈을 되찾을 기회를 놓치자 그것을 만회할 거액의 현상금으로 눈을 돌린다. 빼앗긴 돈가방에서 시작된 탈주범과의 대결은 가장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책임감과 형사의 명예, 그리고 한 남자로서의 자존심까지 더해지며 급기야 동료 형사들을 피해 다니고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도 멈출 수가 없다. 그가 탈주범에게 빼앗긴 돈가방은 단순히 돈 그 자체가 아니라 가족에게 잃어버린 신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을 번번이 작은 실수로 놓쳐버린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끈질긴 그의 추적은 계속된다. 






영화가 개봉하면서 들려온 입소문에 약간의 기대감은 있었지만 그외에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김윤석이 시골 형사로 출연해 탈주범을 뒤쫓는다는 것 정도가 아는 것의 전부였고, 포스터를 보면서도 탈주범이 정경호인지를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앞서 말했듯 탈주범을 뒤쫓는 시골 형사라길래 전작 『추격자』나 아니면 『살인의 추억』처럼 긴장감 가득한 살떨리는 스릴러는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액션을 가장한 유쾌한 코미디 영화였다. 덕분에 보는 내내 박장대소하며 유쾌한 기분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거북이 달린다』는 배우 김윤석의 차기작이라는 후광 덕을 톡톡히 봤지만, 영화 자체로도 충분히 잘 만든 매력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논과 밭이 펼쳐지고 소싸움 축제를 벌이는 한가롭고 단조로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만 펼치는 추격전이 오히려 독특한 재미를 준다. 또한 장진식 유머가 떠오르는 엇박자 유모들이 적제적소에서 빛을 발하며 빵빵~ 터져주며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가 하면, 스토리의 흐름이나 연기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시나리오에 이연우 감독 자신의 고향에서의 경험들이 많이 투영되었단다. 그래서인지 『거북이 달린다』의 시나리오는 충남 예산이라는 지역적 색깔이 더해져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 






무엇보다 『거북이 달린다』를 이야기하면서 배우 김윤석을 빼놓을 수 없다. 오히려 그를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김윤석이 선택한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홍보 효과를 누렸기도 하고, 또한 그가 연기한 조필성은 『거북이 달린다』의 거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작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충분히 과시했던 그는 이번에도 물오른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예전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걷어내고 대신 순박한 인간미 듬뿍 담아낸다.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와 걸을 때마다 출렁이는 뱃살이 어우러져 허점 투성이의 어수룩한 시골 형사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조필성은 형사이지만 탈주범에게 완벽하게 K.O패를 당하고 아내 몰래 적금으로 투기에 거는 찌질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질긴 면모와 가족을 사랑하는 인간미를 보이는 나름 매럭적인 인물이다. 범인을 잡겠다는 집념이 너무 앞선 나머지 계획은 허술하기 일쑤여서 번번히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곤 하는데, 그런 모습을 한심해 하면서도 어느새 그를 응원하게 된다. 아귀나 엄중호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발산하지 않으면서도 스크린을 압도하는 김윤석의 능청스런 연기는 『거북이 달린다』의 보는 커다란 재미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탈주범에게 가스총을 쏘지만 자신이 먼저 가스를 들이키자 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는 장면, 너무 웃겼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많은 조연들이 김윤석 못지 않은 재미를 주는데, 특히 바가지 머리를 한 필성의 어린 딸과 필성을 도와 탈주범을 함께 뒤쫓는 친구 용배 패거리들이 백미였다. 그들의 천연덕스런 연기는 영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웃음의 대부분을 책임진다. 특히 하는 행동마다 어수룩한 용배 패거리들은 연극 무대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내공있는 배우들이라 더욱 실감난다. 영화 중반에 관객들을 뒤집어지게 한 '누가 5여?'는 그들에 의해 영화 속 명대사로 각인된다. 

탈주범 송기태로 악역으로 나선 정경호의 연기 또한 괜찮았다. 절제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의 연기와 착실하고 다양하게 쌓아가는 필모그래피는 정경호라는 젊은 배우의 가능성을 가늠해보게 한다. 김윤석의 상대역이라는 것만으로 조필성의 아내 역 출연을 결정했다는 견미리의 또한 오랜 연기 내공이 무색하지 않은 좋은 연기를 선보인다. 앞으로 스크린에서도 그녀를 좀 더 자주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참!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영화 『타짜』에서 라이벌이었던 '아귀'와 '짝귀'의 만남을 볼 수 있다. 짝귀 역을 연기했던 주진모가 아귀 역을 맡았던 김윤석의 상사인 반장으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이름만 보고 착각하시던데, 여기서 말하는 주진모는 『쌍화점』의 그 주진모가 아니라는. ;)





『거북이 달린다』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거북이처럼 흥행도 느리면 어쩌려고 저런 제목을 지었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트랜스 포머 : 패자의 역습』이 스크린의 절반을 넘게 삼켰던 여름 극장가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걸 보며 느리지만 끝까지 끈질기게 나아가던 이솝 우화의 거북이가 생각나 제목 잘 지었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물론 잘 만든 영화의 만듦새가 관객들의 지지와 입소문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도 영화를 만나보지 못했다면 슬며시 추천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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