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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
글쓴이
김진영 저
한겨레출판
평균
별점9.2 (31)
파란자전거

이별과 부재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엮은 책이다. 저자에겐 어떤 못 잊을 이별이 있어 이토록 헤어짐에 대해 천착했을까. 읽다가보니 이별과 부재가 저자만의 특별한 추억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리 삶의 과정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밝은 쪽보다 그늘진 쪽에 마음이 더 가는 사람들이 분명 있는 것이고, 저자도 그쪽에 속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만남의 설렘보다는 이별 후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그 마음을 나누려는 사람. 아픈 사람을 위로 할 수 있는 것은 가벼운 즐거움일 수도 있지만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와 서로 나누는 다독임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이별과 부재 때문에  아픈 사람들에게 분명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지금 즐거운 사람들에겐 이별과 부재의 기억을 한번 떠올려보고 화해하는 것이 애써 지우려는 노력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86편의 단상들을 읽으며 저자의 머리와 가슴에 깃들어 살았던 것은 이별과 부재가 아니라 책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만큼 독서와 일상이, 일상과 독서의 오고감이 자연스러웠다.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자 할 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대상을 늘 갖고 있었다. 아래의 문장들처럼.

 

나는 기다리는 걸까. 재가 된 질마재의 신부처럼. 돌이 된 율포 바닷가의 박제상 부인처럼. 앉고 선 그 자리를 꼼짝도 않고 지킨다면.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걸까:

 

나는 미워하는 걸까. 프로이트의 멜랑콜리커처럼. 왜 나를 떠났느냐고. 왜 나를 아프게 하느냐고, 무정한 그 사람을 고발하는 걸까.

 

나는 두려워하는 걸까. 프루스트의 어머니처럼. 저승으로 가지 않으려고 몸속에서 자기를 붙들고 있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지키려고 석고상이 되어버린 마담 프루스트처럼: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따라가 보니 저자가 마음에서 내려놓지 않았던 이별과 부재의 상황이 자꾸만 내게로 전이되는 것 같아서 읽던 페이지를 접어놓고 잠시 나의 이별과 부재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이별이 두려운 사람이다. 이별을 늦추고 싶어서 그보다 더 구질구질해질 수 없을 때까지 매달리다가 결국 이별을 맞이하는 쪽이다. 그리고 잠시 이별이 내게 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척 하다가 금세 다른 길로 달려가는 사람이 나였다. 수많은 이별이 있었지만 어느 이별도 이만큼 애틋하거나 깊이 몰두하지는 않았다. 지나가는 바람을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불어오는 새 바람에  마음을 뺏기는 그런 시간을 살았던 것 같다. 이렇게 진실하게 답을 찾는 과정이 생략되어서인지 늘 흔들리고 비틀거리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처럼 내게 찾아왔던 질문에 대해 오래 곱씹을 줄 알았다면 나는 벌써 달라졌을 것이다. 아래처럼.

 

오랜 시간 뒤 초췌한 얼굴로 돌아와서 p는 말한다:" 난 이제 그 사람의 차가움을 이해하게 됐어.그 사람은 나를 미워했던 게 아니야. 헤어진 뒤에 내가 너무 아파할까 봐 그 사람은 자기를 차가운 사람으로 잔인한 냉동 인간으로 만들었던 거야. 난 이제 그 사람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어. 그런데 너무 마음이 아파.그 사람은 냉동 인간이 되어서 얼마나 추웠을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별과 부재가 상처와 고통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에 조금 마음이 기운다. 매 순간마다 기쁘고 행복하다면 언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늘진 당신의 아픔을 위로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나의 행복이 아니라 당신의 상처를 덜어주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이 책을 자주 들여다봐야겠다. 그리고 어느 날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폈을 때 나온 두 문장의 의미를.

 

부재의 힘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것 때문에 오로지 그것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리라.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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