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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린이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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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글쓴이
J.M. 바스콘셀로스 저
동녘
평균
별점9.2 (247)
파란자전거

 




1




 “마음속에 비밀하나 가지지 못한 사람이 가장 가난한 자다.” 라는 말은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천재라고 불리던 이상이 했다고 한다.




  어릴 때는 남달리 조숙해서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기를 즐겼던 나를 또래의 아이들은 희한하게 보거나 못 본 척 외면하기도 했다. 간혹 나를 이해해주기 위해 다가오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내 속에 나를 가둔 채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망설였으며, 그 누구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이런 내가 눈물을 보일 때는 대개 두 가지 경우인데 첫 번째는 음악이나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내 안에 꼭꼭 감춰두었던 속마음이 건드려졌을 때다. 이때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눈물이 줄줄 흘러 나왔고, 시간과 장소가 허락되는 때에는 눈물이 통곡으로 변하면서 내 속에 갇혀있던 답답함이 조금은 풀려나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내 뜻이 다른 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꺾였을 때 분에 겨워 어쩌지 못해 눈물이 흘러나오는 때였다. 이럴 때도 눈물은 마음속의 분노를 밖으로 내보내는 정화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이 두 경우를 제외하고는 눈물은 우물에 갇힌 듯 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찰랑거리다가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안에 고여 있는 눈물이 흐르지 못해 답답해질 때면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쪽에 앉아서 이 책을 읽는다. 생각해보니 그럴 때의 계절은 일조량의 부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슬픔이 목안에 차게 되는 지금 같은 가을이거나 겨울쯤이었다.




2




  다섯 살짜리 소년 제제가 세상의 답답함을 풀어주고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눈물을 내게  줄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제제의 조숙함이 어린 시절 이해받지 못했던 나의 조숙함을 껴안아주고 있어서라고 대답해본다. 제제는 실직한 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하기위해 구두통을 메고 거리를 헤맬 줄 아는 아이다. 실망해 있는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멜로디의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제제에게 돌아온 건 가혹한 매질. 아버지의 자격지심으로 인해 그 작은 몸 위로 끊임없이 매질이 이어질 때 나는 그 아픔이 내 몸에 고스란히 느껴져서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조차 아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제제 대신 우는 것이다.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이해를 받지 못했던 제제를 위로해 준 것은 볼품없는 작은 라임오렌지 나무 한 그루였다. 제제는 이 작은 나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창문을 조금이나마 열어놓을 수 있었다.


  동네에서도 소문난 말썽꾸러기 제제를 확연히 달라지게 만든 것은 작은 오렌지 나무가 아니라 포르투갈 사람인 마누엘 발라다리스였다. 부자인 그와 가장 가난한 아이인 제제가 만나 친구가 되었다. 제제는 뽀르뚜가(마누엘 발라다리스의 애칭)의 요청을 받아들여 심한 욕도 하지 않았고, 이웃을 괴롭히는 일도 그만 두었다.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있다는 사실이 제제를 달라지게 만든 것이다. 이제 제제는 모두가 꺼려하던 작은 악마가 아닌 노랑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귀여운 어린아이가 되었다.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그리고 내 가슴 속에 행복의 태양이 빛나는 것 같아요.”




 이 말은 제제가 뽀르뚜가에게 한 애정 고백이다. 이 둘의 만남은 비밀이었다. 이 만남을 하느님 말고는 모르게 하고 싶었던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나는 이런 마음을 알 듯도 했다. 이들처럼 세상에 내보이기 아까운 극진한 애정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의 가슴은 행복으로 가득 찰 것이다. 둘을 태운 자동차가 달릴 때 자동차마저도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고 생각하는 제제의 마음은 저절로 비단처럼 부드러워졌는데 나는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뽀르뚜가는 제제의 꿈속에서도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자신이 준 사랑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믿게 된 제제에게 세상은 온통 사랑으로 채워진 꽃밭이었다.


  마음속에 태양을 품은 것처럼 세상이 밝게 보이던 제제였는데, 거짓말처럼 뽀르뚜가가 기차에 치여 죽어버린다. 다섯 살짜리 제제는 이제야 아픔이 뭔지 확실하게 느낀다. 그 아픔은 죽을 만큼의 매섭던 매질도 아니고, 유리조각이 찢어놓은 발을 바늘로 꿰맬 때의 느낌도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을 간직한 채 죽어야 해서 가슴전체가 아려오는 그런 것이었다. 이것이 다섯 살짜리가 느끼는 아픔이었다.


  이렇게 제제가 세상의 비밀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을 때, 그리고 그에게 찾아온 이별이 죽음이라서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제제의 슬픔이 독자인 내게로 고스란히 전해질 때 내 눈에서는 거침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만다. 제제!




3




  나는 제제를 통해 천재 시인 이상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구름에게 말을 걸고 나무를 껴안으며 위로 받았던 소년이 간신히 맺은 사람과의 관계가 죽음으로 끝나버렸을 때, 그리고 그 사람과의 모든 것이 세상 안에서는 비밀이어야 했을 때 그 감당하지 못할 슬픔이 제제를 철들게 하고 성장시킨다는 걸,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른이 된 제제가 자신이 받은 뽀르뚜가의 사랑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마지막 장면을 읽을 때가 되면 나는 그제야 흐르는 눈물을 조금씩 닦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장맛비가 내린 뒤의 동네풍경처럼 말끔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한동안 별 탈 없이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내 안에는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제제가 있으므로.  나와 제제의 만남도 지금까지는 하느님만 아셨던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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