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작은 틈으로 하늘을 보는 사람인가보다.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던 기황후의 무덤이 경기도 연천에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최영 장군의 고향이 근처 철원이라는 것에 힌트를 얻어 조정우 작가는 기황후와 최영의 사랑을 엮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고려 말의 상황은 충이란 글자를 앞에 달고 허수아비 임금 노릇을 하던 몇 명의 왕들과 고려의 자주를 외쳤던 공민왕, 그리고 최영 장군과 이성계의 활약이 두드러지던 시절이었다. 세 번에 걸친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려를 식민지 쯤으로 치부했던 원나라는 고려에 무리한 공물과 더불어 공녀를 요구했다. 권력을 따르던 이들은 공녀선발에 열을 올렸으며 공녀로 원에 간 처녀들은 궁인이 되거나 원나라 관리의 처첩이 되거나 이보다 못한 노비의 삶을 살기도 했다. 책의 내용은 후에 원나라 순제의 황후가 되는 기완자가 어린 시절 격구장에서 처음 본 최영과 마음을 나눈 이야기를 씨줄로 삼았다. 최영과의 혼담이 성사되지 못하고 공녀로 끌려가는 것과 궁에서 차 심부름을 하다가 순제의 사랑을 얻어 황후에 오르는 내용이 별다른 각색 없이 시간 순서로 나열되었다.

기완자는 미모가 빼어난데다 남자처럼 말을 타며 격구를 즐기는 활달한 성격을 가졌다. 이런 기완자를 평생 사모해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몇 명 나타난다. 처음 볼 때부터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최영은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을 할 수 없었던 기완자를 위해 원나라까지 간다. 오라비의 친구 박불화는 스스로 환관이 되어 원나라 궁에 남아서 기황후를 돌보다 목숨을 잃었다. 원나라 순제 역시 자신 대신 아들을 황위에 올리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황후에 대한 마음을 거두지 않았다.

공녀 출신으로 원의 황후가 되어 권력의 중심에 섰던 기황후의 생애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기황후의 무덤이 왜 경기도 연천에 있는가에 집중했다. 그 결과 어린 시절 떠났던 고려의 산천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순정을 나눈 인물이 있지 않았나하는 상상력이 날개를 달았다.

되도록 역사적인 큰 줄거리는 손상하지 않은 채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진 이야기는 나름대로 재미있다. 하지만 요즘 보기 드문 전지적 작가시점과 고전 소설에서 많이 봐온 문장들은 소설의 몰입을 방해했다. 거대한 원나라의 실세로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해온 기황후의 지략과 용기, 대담한 선택에 대한 내용이 좀더 있었더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최영과의 인연에 집중해져서인지 기황후는 한 번 마음을 준 사내를 일생 그리워하는 순정한 여인의 이미지가 먼저 부각되었다. 기황후의 일생을 한 권의 책에 다 담으려고 하다 보니 표면적인 이야기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에 아쉬움이 든다.

그럼에도 복잡한 고려 말의 국제, 국내적인 상황에 대해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예전에는 티비 사극이 역사를 이해하는 창의 구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사극은 사극이라기보다는 창작물에 가까운 편이다. 이런 추세에 되도록 역사적인 사실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 점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