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리뷰 ♥

lecteur1
- 작성일
- 2020.5.25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글쓴이
- 악셀 하케 저
쌤앤파커스

지난 달,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 앞에 앉아 기다리시는 할머니와 간격을 두고 서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할아버지와 아주머니가 그 할머니 앞에 서는 것이 아닌가? 아니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도 줄을 서서 기다리시는데 그 앞을 새치기 하다니.. 그 상황이 매우 언짢았다. 아주머니 한 분은 눈치가 보였는지 바로 뒤쪽으로 가셨지만 할아버지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어짜피 다 들어가겠구만’ 하며 계속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연세도 많으시고 그냥 그러려니 하긴 했지만,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내 눈은 불쾌함을 마구 쏘아됐다. 그 눈빛을 느꼈는지, 그 할아버지는 본인이 마스크를 타고 난 뒤 밖에서 기다리는 나를 보며 ‘자, 얼른 들어가요’ 라며 마치 자비를 베푸는 듯 말을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인간은 덜 좋은 인간과 더 좋은 인간과 나뉜다는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에 따라 무례한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지만, 아직 나는 내공이 부족한 지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상황이 닥치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원하지 않게 무례한 사람들을 만난다. 좋은 사람들만 골라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런 무례한 사람들, 무례한 상황은 왜 일어나는 것이며,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책은 이런 무례한 시대를 어떻게 품위 있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자주 친구와의 대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그런 그의 글을 읽으니 마치 내가 그 두 사람 옆에서 대화를 엿듣는 느낌이었다. 조금 지루할 수도,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대화로 풀어내어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게 해준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페이스북, 트럼프 등의 예시를 가지고 무례한 시대, 무례한 인물에 대한 적절한 사례를 들어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점이 좋았다.
자국 내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트럼프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는 뉴스로 많이 접하였지만, 내가 모르는 사건들도 언급되어 있어 역시 ‘무례함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책의 주제에 아주 정확히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그의 저급한 행동은 그의 품위 수준을 완벽하게 드러내주었다.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쭉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언급한 무례한 일을 겪었던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읽었던 책의 내용이 인용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읽고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로 만난 작가라 그가 언급되었을 때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이렇게 저자 본인의 생각뿐만 아니라 철학자, 작가 등 많은 이들이 언급한 이야기들을 적절히 섞어 무례함과 품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가 언급한 품위의 정의 중 하나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까지 세심하게 숙고하는 태도이다. 생산자에게 공정한 수익이 돌아가는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품위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예의 바르며 품위 있는 삶을 꾸리기 위해 지극히 사소한 부분부터 신경 쓰려는 일말의 시도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으로 그 작은 시도라도 해서 어제보다 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또한 그는 “품위는 어떤 이름이 붙여지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확실히 품위는 모호하고 흐릿하며 불분명한 경향이 있다. 어떤 행동을 두고 품위라고 명명하면 그 행동은 이내 품위에 속하게 된다.”라고도 언급했다.
그 예로, 한 때 모자 없이 거리를 다니면 품위 없다고 취급되던 시대가 있었고, 자녀에게 규칙적으로 매를 들며 훈육하는 방식이 품위라고 여겨지던 시대도 있었다고 했다.
모자 없이 거리를 다니면 품위가 없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고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품위도 시대의 영향, 트렌드를 따라 그 모양이 변모되는 것 같다.
마크 트웨인은 “어리석은 사람들과 토론하지 마라. 그들은 당신을 자신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린 뒤, 숙련된 기술로 당신을 두들겨 팰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어쩌면 무례한 이들을 만난다면 무시하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눈을 감는다면, 내가 그 무례함을 묵인한다면 그 무례함이 다른 무례함을 낳으며 멀리 멀리 퍼져나가진 않을까? 무례함은 무례함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이 쓰인다. 자주 보고 싶지 않지만, 학교 폭력에 관한 뉴스는 쉼없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학교 폭력 근절’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약국에서 만난 그 무례한 사람에게 ‘여기 다들 줄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뒤로 가세요.’라고 한마디 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렇게 했다면 그 사람은 그 무례한 행동에 대한 창피함을 느끼고 다른 곳에선, 다른 사람들에겐 그 무례함을 범하지 않았을까? (눈으로 불쾌함의 불을 쏘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한 내가 조금 비겁하게 느껴졌다. 무례하지 않게 잘 이야기 하는 하는 법을 배워야 할까?!
내가 생각하기엔 이 책에 제시된 품위를 킬 수 있는 방법 중 타인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사는 것이 품위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이 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사는 것이라는 명확한 답을 주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무례함과 품위에 대해 저자와 같이 생각해나가고 이 후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답을 주는 것보다 이 점이 중요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은 무한하고 상황과 사람에 따라 적용되는 것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