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스크랩)

책을든남자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8.1.23

- 작가 소개
박 태 원
필명 몽보(夢甫)·구보(丘甫)·구보(仇甫)·구보(九甫)·박태원(泊太苑)이다. 서울 출생이며 경성제일고보, 도쿄[東京] 호세이[法政] 대학 예과를 중퇴하였다. 1926년 《조선문단(朝鮮文壇)》에 시 《누님》이 당선되었으나, 소설로서의 등단은 1930년 《신생(新生)》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이루어졌다.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한 이후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1일》 《천변풍경(川邊風景)》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그의 소설에 있어 특기할 사항은,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적 측면과, 또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하는 소위 풍속소설의 측면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예술파 작가임을 말해주는 중요한 요건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발표한 《우맹(愚氓)》 《골목 안》 《성탄제》 등에도 비슷한 경향을 잘 드러내었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함으로써 작가의식의 전환을 꾀한 바 있고, 6·25전쟁 중 서울에 온 이태준(李泰俊)·안회남(安懷南) 등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술된 작품 외에 단편소설 《사흘 굶은 보름달》 《애욕》 《5월의 훈풍》, 장편소설 《태평성대》 《군상(群像)》 《갑오농민전쟁》등이 있다.
출처 : 두산백과사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仇甫氏.一日)>
【해설】
박태원의 중편소설.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
소설가 박태원의 실제 생활이 반영된 자전적인 소설이다.(박태원의 호가 '구보'이기도 하다.) 목적 없이 집을 나간 구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도중에 목격한 단편적 사실들에 의해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작품으로 1930년대 지식인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구보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배회하면서 거리의 여러 풍경이나 군중과 마주칠 때마다 상념에 빠진다. 경성역 대합실에서 군상들을 보며 환멸을 느끼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목적 없는 만남 뒤에 술집에 들러 모든 이를 정신병자로 관찰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하고, 밤이 되자 종로로 나가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하며 늦은 귀가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귀가하는데 그 때 벗에게 좋은 소설을 쓰리라 다짐한다.
이 작품은 민족 항일기(民族抗日期)에 문학을 하는 지식인의 무기력한 자의식을 형상화한 작품인데, 이상(李箱)이 '하융'이란 필명으로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개관】
▶작가 : 박태원
▶갈래 : 중편소설, 심리소설, 세태 소설.
▶배경 : 시간-1930년대 어느 하루 / 공간-서울 거리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단순 구성, 1일 동안의 여로(旅路) 형식
▶제재: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생활
▶주제 :
- 1930년대 무기력한 문학인의 눈에 비친 일상사
- 이상과 현실에 대한 갈등.
▶출전: [조선중앙일보](1934)
▶의의 : 박태원의 실제 생활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 박태원이 자신의 창작 방법론을 고현학(modemologe: 현대적 일상생활의 풍속을 면밀히 조사 탐구하는 행위)이라 했는데, 이를 적용시킨 작품이 바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등장인물】
▶구보 : 26세 미혼, 무직의 소설가(세태 관찰의 주체).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시력에도 문제가 있어 신체의 불안감을 느낌
▶어머니 : 아들의 늦은 귀가와 결혼을 걱정함
【공간의 의미】
- 현실적 공간(서울에서의 하루)
- 의식의 공간(첫사랑을 시작한 어린 소년기-동경 유학시절)
【특징】
▶작가의 실제 생활을 반영한 자전적인 소설로 발표 직후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목적 없이 집을 나선 '구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도중에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인 여러 사실들, 그리고 그에 의해 촉발되는 두서없는 생각들의 연속인 이 소설에서 1930년대 나약한 지식인의 일상사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작품 전체의 처음 부분으로 주인공이 놓인 처지가 잘 나타나 있고, 앞으로의 내용 전개에 대한 은밀한 암시가 주어져 있다. 먼저 주인공은 26세의 장가를 못 간, 그리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한마디로 그는 현실적으로 무능한 룸펜 인텔리에 해당한다. 이러한 그를 기다리면서 안타깝게 지켜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이 장면에서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어머니의 바램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무료한 일상은 이 작품의 중요한 내용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면을 볼 때, 이 장면은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해 그 나름의 암시를 보여주는 셈이다.
▶이 작품의 '산책'이라는 배회의 형식은 '관찰'과 '의식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관찰되고 있는 것은 당시 경성의 여러 풍물, 경성역을 중심으로 한 지게꾼, 유랑민, 시골 노파, 바세도우씨병에 걸린 노동자 등 암울한 풍경과, 다른 한편으로 종로통의 카페를 중심으로 한 휘황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근대화의 양면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 의식의 흐름이다. 그것은 여러 풍경에서 발견되고 있는, 그러나 자신에게는 결여된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고독'이 두 축을 이루고 있다.
【구성】
이 작품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다만, 외출해서 '전차 안→다방→거리→경성역 대합실→다방→거리→술집' 그리고 귀가까지의 작중화자의 관찰과 심리가 서술되고 있을 뿐이다.
【줄거리】
『구보는 갑자기 걸음을 걷기로 한다. 그렇게 우두머리 다리 곁에 가서 있는 것이 무의미함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까닭이다. 그는 종로 네거리를 바라보고 걷는다.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도 가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어놓았던 바른 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질러 지난다. 구보는 그 사나이와 마주칠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 위태로웁게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구보는 그렇게 대낮에도 조금의 자신을 가질 수 없는 자기의 시력을 저주한다. 그의 토 위에 걸려 있는 24도의 안경은 그의 근시를 도와주었으나, 그의 망막에 나타나 있는 무수한 맹점을 제거하는 재주는 없었다. 총독부 병원 시대의 구보의 시력 검사표는 그저 우울한 안과 책상 서랍 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R, 4, L, 3
구보는 2주일간 열병을 앓은 끝에 갑자기 쇠약해진 시력을 호소하려 처음으로 안과의와 대하였을 때의 그 조그만 테이불 위에 놓여 있던 시야 측정기를 지금 기억하고 있다. 저 자신 강도의 안경을 쓰고 있던 의사는 백묵을 가져 그 위에 용서없이 무수한 맹점을 찾아내었었다. 그래도 구보는 약간 자신이 있는 듯 싶은 걸음걸이로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 상회 앞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저도 모를 사이에 그의 발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기조차 하였다.
젊은 내외가 너덧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가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식당으로 가서 그들의 오찬을 즐길 것이다. 흘깃 구보를 본 그들 내외의 눈에는 자기네들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엿보였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그들을 업신여겨 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 그들을 축복하여 주려 하였다. 사실 4, 5년 이상을 같이 살아왔으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기쁨을 가져 이렇게 거리로 나온 젊은 부부는 구보에게 좀 다른 의미로서의 부러움을 느끼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분명 가정을 가졌고,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서 당연히 그들의 행복을 찾을 게다.
승강기가 내려와 서고, 문이 열려지고, 닫혀지고, 그리고 젊은 내외는 수남(壽男)이나 복동(福童)이와 더불어 구보의 시야를 벗어났다.
구보는 다시 밖으로 나오며, 자기는 어디 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발 가는 대로, 그는 어느 틈엔가 안전지대에 서서,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 손의 단장과 또 한 손의 공책과 물론 구보는 거기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안전 지대 위에 사람들은 서서 전차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행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갈 곳만은 가지고 있었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여섯 살의 '구보'는 정오에 집을 나와 광교, 종로를 걸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시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신체적 불안감을 느낀다. 무작정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는 전차 안에서 전에 선을 본 여자를 발견한다. 일부러 모른 체하고 있다가 그녀가 전차에서 내리고 난 후 후회한다.
혼자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자기에게 여행비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독을 피하려고 경성역 삼등 대합실로 가지만, 오히려 온정을 찾을 수 없는 냉정한 눈길들에 슬픔을 느끼며, 거기서 만난 중학 시절 열들생이 예쁜 여자와 동행인 것을 보고 물질에 약한 여자의 허영심을 생각한다.
다시 다방에서 만난,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친구가 돈 때문에 매일 살인 강도와 방화 범인의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애달파하고, 즐겁게 차를 마시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질투와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다방을 나온 '구보'는 동경에서 있었던 옛사랑을 추억하며 자신의 용기 없는 약한 기질로 인해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또 전보를 배달하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오랜 벗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그리고 여급이 있는 종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며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정신병자로 간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낙이 카페 창 옆에 붙은 '여급 대모집'에 대하여 물어 오던 일을 생각하고 가난에서 오는 불행에 대하여 생각한다.
새벽 두 시의 종로 네거리, '구보'는 제 자시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행복을 생각하고 이제는 어머니가 권하는 대로 결혼을 하여 생활도 갖고 창작도 하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감상】
이 작품은 박태원의 소설 기법과 그 문학적 성과를 보여주는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주인공의 내면 의식의 추이와 소설적 공간의 이동을 결합시킨 새로운 소설 세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설에서의 사건의 극적 전개, 인물의 대립과 갈등, 집단적인 이념의 구현 등에 익숙해 있던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은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파격적 형태를 이룬다. 이 소설 속에는 발단과 갈등과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소설 구성의 개념이 나타나 있지 않다. 주인공이 아침에 집을 나와 도시의 구석구석을 배회하다가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동안의 일상적인 생활공간이 소설의 내용을 이룬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주인공에게 이 하루 동안의 배회에는 아무런 외견상의 목적이 나타나 있지 않다. 주인공은 무력하게 집을 나와 정처도 없이 사방을 기웃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 하루의 시간 속에서 주인공의 의식도 방황을 거듭한다. 잃어버린 옛날의 애인을 떠올리고 추억에 잠기기도 하며, 사소한 일상의 일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삶과 현실에 대한 철저한 방관을 통해 주인공이 도달하는 것은 생활을 지배하는 의식의 일상성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일상성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경우, 그 주제의 무게나 소재의 문제성에서 우선적으로 가치 판단의 기준을 찾고자 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일상적 생활공간의 소설적 수용은 문학의 대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작가 박태원은 일상성 그 자체에 만족하지 않는다. 일상성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의식의 추이에 오히려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일상성의 의미를 개별화된 인간과 연관시켜 볼 필요가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계급적인 이념이나 사회적 의식을 집단적으로 대변하는 사회화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주변의 생활이나 다른 인물들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도시 공간을 방황한다. 그는 혼자 생각하며, 혼자 걷고, 혼자서 이야기를 할 뿐이다. 개별화된 인간의 모습을 우리는 바로 이 작품에서 확인하게 된다. 사회적인 현실과 단절된 상태로 개체화되어 버린 인간에게서 그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인공의 의식뿐이다.
이 소설은 도회의 공간을 떠도는 인물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그 도회의 공간적인 속성보다 주인공의 내면화된 의식의 공간을 더욱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현대적인 심리 소설의 수법의 단면이 바로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태원의 소설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소설적 주제화의 작업에서 철저하게 이념성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그가 문단에 등단하면서부터 계급 문학 운동과 거리를 두고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고 있었던 점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이나 초기 작품들은 모두 일상적인 현실 속에서 개인 의식의 추이를 다양한 서술 기법을 통해 포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은 집단적인 계급의식에 얽매이기보다는 개별화된 상태로 나타난다. 당시 계급 문단의 소설들이 대개 집단의식의 소설적 구현을 위해 소영웅적인 인물로 치장되고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박태원의 소설적 주인공들이 왜소한 이상인의 모습으로 현실의 공간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그의 소설이 당시 계급 문단 소설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박태원의 소설에 등장하고 있는 개별화된 인간들은 대개가 도시적 공간을 삶의 무대로 삼고 있다. 소설적 배경 자체가 도회적인 것이 바로 이러한 특징을 말해 준다. 어떤 연구가는 박태원에 이르러서야 우리 소설이 도시적 풍물을 소설적 무대로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도시적 공간이라는 소설적 장치는 박태원의 소설에서 단순한 배경 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도시의 확대와 각종 새로운 직업의 등장, 도시 가정과 인간들의 행태, 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팽배 현상, 환락과 고통의 변주 - 이런 모든 것들이 1930년대 도시 생활의 면모와 함께 그 다양한 분화를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박태원의 소설은 자칫 평범한 일상 이야기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개체화된 인간들의 삶을 통해 도시의 속성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인간관계의 상실, 개인주의적 태도 등을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있다.
도시적 시정(市井)의 삶에서 박태원이 발견해 내고 있는 것은, 세태와 풍물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질문법도 포함되어 있다. 경향파 소설 이후, 개인과 사회 현실의 총체적인 관계의 파악을 위해 주력해 온 소설적인 특성을 생각할 때, 박태원은 개별적인 국면의 제시를 통해 개체화된 인간의 모습을 투영해 봄으로써 삶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특성은 리얼리즘의 문학을 문제삼는 비평가들에게 성격과 환경, 즉 개인과 사회의 분열로 치닫는 소설의 위기로 인식되기도 하였지만, 삶에 대한 인식의 방법과 태도가 새로운 전환을 드러내는 징후로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태원의 소설을 모더니즘의 미학적 수준과 그 원리에 의해 설명해 보고자 하는 시도가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박태원 소설의 특성을 소설사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분화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김수복 : <한국 현대소설의 이해와 감상> -
이 소설은 박태원의 생활을 반영한 그의 자전적(自傳的) 소설로, 발표된 직후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주인공인 '구보'가 집을 나서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집→천변길→종로 네거리→화신상회→전차 안→조선은행 앞→다방→거리→경성역→조선은행 앞→다방→거리→다방→거리→식당→거리→다방→거리→술집→카페→종로 네거리→집) 하루 동안, 길거리에서 만나게 된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반응하고 있는 '구보'의 의식 세계가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그것은 일정한 의식의 기준에 의해 통일된 입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도중에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단편적인 사실들에 의해 촉발되는 두서없는 생각들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특별한 목적 없이 외출하여 걷고, 다방에 들어가고, 벗을 만나고 하는 '구보'의 행동이 아니라, 일상성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주인공 '구보'의 의식의 추이와 그것을 서술하고 있는 서술 양식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는 전통적인 소설 장르에서 중시하는 사건이나 행위, 갈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것은 '구보'의 지각과 의식의 유동(流動)뿐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공간은 스물 여섯 살 '구보'의 서울에서의 하루이지만, 의식의 공간은 첫사랑을 시작한 어린 소년기에서 동경 유학 시절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 있다. 따라서, 플롯(plot)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 구조가 약화되어 있는 반면,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의식의 추이에 대한 서술이 강화되어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0년대 문학인의 일상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문학인의 의식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지표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탄제>, <비량> 등의 단편들에서 인물의 심리를 면밀하게 탐구하던 것과 장편 <천변 풍경>에 나타나는 철저한 관찰적 방법과의 혼재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중편 소설이란 점에서, 박태원의 작품 변모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작품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표제가 시사하는 바처럼, 실직한 인텔리 소설가가 도시에서의 무료한 일상을 보내며 그것들을 '고현학(考現學)'의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식민지 지식인 사회의 말기적 현상의 하나로 취급되는 원인은 바로 이 고현학의 방식에서 연유한다. 어떠한 현실에 대해서도 장담하거나 단정짓지 않으며 결론은 항상 유보된다. 이미 모든 현실 속의 문제에 대하여 신념을 잃어버린 사회의 허무적 냄새가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도시의 일상적 현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는 그의 정신적 배경에는 현대의 일상사에 대한 낯설음이 담겨 있다. 현대의 일상사가 그에게 기록될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다면 그는 '노트 한 권과 단장(短長)'을 들고 서을 거리를 활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상적 현실에 대한 낮설음은 소설 창작의 과정이 허구가 아니라 현실로 도입되는 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소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소설 창작의 과정을 다시 소설 속에 도입다는 "소설 속의 소설 쓰는 행위"를 독자에게 보여 준다. 독자는 허구를 창작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작가와 그 작품의 관계 그리고 사회 현실의 의미를 글을 쓰는 당사자와 함께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박태원의 창작방법은 이러한 당대의 현실 속에서의 소재 취하기를 통해 일상과의 좀더 면밀한 길트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의 작가의식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一日>이라는 작품이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소설가로서의 그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반대로 박태원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맨얼굴을 독자에게 노출함으로서 소설 속의 '구보라는 소설가' 뒤편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어 버린다.
얼굴을 노출함으로서 "작가 자신이 직접 소설 속에 뛰어들어 거리를 활보한다"는 적극적인 작업은 현실 속의 박태원을 소설가로서의 '구보'로 한정짓는 행위에 해당한다. 살아있는 자연인으로서의 박태원이 아닌 소설가 '구보'의 등장은 작가의 직업적 의식이 소설 속에 그대로 담겨지는 효과를 자아낸다. 지식인으로서의 작가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의 기초작업으로서 이 소설의 의미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소설사에서 지식인 소설가의 창작행위에 대한 새로운 검토 작업을 그대로 글로 옮긴 작품인 만큼 '소설의 소설 그 자체 양식'에 대한 문제 제기로서 이 소설은 실험적이라고 하겠다. 박태원의 또 다른 문제작인 장편 <천변풍경>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면밀한 관찰력의 힘 때문이다. 이 작품은 <천변풍경>의 탄생을 예고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재봉틀의 국어방'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