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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2.1.18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 글쓴이
- 이경희 저
다산책방
예전에는 SF 소설이나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하면 의례 외국 소설을 생각했던 것 같다. 추리소설하면 셜록 홈스 시리즈나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를 보는 게 정석이었고, SF 소설이라고 하면 당연히 외국 소설이 먼저 떠올랐다. 솔직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 SF 소설이라는 것은 잘 상상도 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근래에는 한국형 장르물의 전성기를 보는 것 같다. 익숙한 정서의 한국형 미스터리 소설이나 SF 소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전부 너무 재미있다!!
한국형 SF 소설
이 책도 한국형 SF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경희 작가님의 SF 단편 6편이 실려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한국 이름이고 배경도 한국인 경우가 많아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완전히 새롭고 기발한 컨셉이다. 그 6편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사실 책의 제목인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라는 제목의 단편은 들어 있지 않다.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
우리가 멈추면
다층 구도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바벨의 도서관
신체 강탈자의 침과 입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일으키는 SF 단편들이다. 분리된 각각의 단편에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는 등장인물들이 중복되어 나오기도 해서 읽다 보면 묘한 연결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의 컨셉을 다른 단편에 사용하기도 해서 독립적인 6개의 SF 단편이지만 묘하게 연결된 세계관이 있는 듯하다. 마블의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처럼 LU(Leekyunghee Universe)라고 해야 하나 ㅎㅎ
이 SF 단편들은 기발하고 독창적인 컨셉이나 세계관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토리가 스포 되면 읽는 재미가 툭 떨어진다. 스토리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우리 회사 사장님이 외계인이라거나, 다시 돌아올 수는 없고 계속해서 미래로만 점프할 수 있는 타임 게이트 같은 다양한 SF 적 요소들이 이야기는 흥미롭고 몰입하게 만들어 준다.
감정 절제 장치
어느 편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인상적이었던 컨셉 중에 '감정 절제 스위치'가 있다. 이 스위치를 켜면 죄책감이나 분노 등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다. 죄책감이 들만한 일을 할 때 이 스위치를 켜고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와서 혼자가 된 후에 스위치를 끄고 나면 몰려오는 죄책감에 엉엉 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텅 빈 캡슐에 앉자마자 감정 절제 스위치를 해제했다. 억눌려 있던 죄책감이 한 번에 가슴으로 쏟아졌다. 캡슐이 궤도 엘리베이터를 오르는 긴 시간 내내 제이는 큰 소리로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아무리 흘려도 속이 깨끗해지지 않았다.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중에서
실제로 이런 장치가 있다면 감정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그냥 억눌렀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오는 것이라면 후폭풍이 너무 지독할 것 같아서 그냥 그때그때 조금씩 푸는 게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를테면 '가면성 우울증 증폭장치' 정도 밖에는 안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는 여러 편의 SF 단편이 들어 있지만 왠지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가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되어도 결국 인간은 외로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 먼 미래가 되어도 인간은 여전히 외로울 것이고 그건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SF 소설이지만 왠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다. 공기업의 민영화라든지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실제 세상의 모습을 SF의 옷을 입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배경은 SF 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기와 외로움이라는 주제가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관계 맺기가 서툴러지는 사회이고 관계 맺을 기회가 금지되는 사회이다. 코로나 시대가 벌써 3년차를 맞이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여전히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직접 부딪히며 배워가야 하기에 책에서 배우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힌트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기에 책만큼 좋은 매체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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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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