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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6.5
극야일기
- 글쓴이
- 김민향 저
캣패밀리
?해가 뜨지 않는 65일간의 극야 속에서 해를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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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극야 일기>는 저자가 60일 이상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계속되는 미국 알래스카 최북단 마을 '배로우'에서의 기록을 사진과 글로 남긴 사진 일기다. 저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1년여의 간격으로 저 세상에 보내드리고 극심한 슬픔에 빠진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깊은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슬프고 외로웠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여전히 활기찬 불야성의 도시가 낯설게 느껴졌고, 자신의 슬픔과는 무관하게 빨리 흘러가는 세상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매일 뜨는 해와 매일 시작되는 하루하루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일상이 무의미해졌다. 그저 버티기 위한 삶이 이었다.
그렇게 저자는 부모님을 보내드린 슬픔을 안고 깊은 어둠의 마을 '배로우'로 떠난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 혼자 남아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배로우의 깊은 어둠 속에서 저자는 자연이 함께 슬퍼하고 애도함을 느꼈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더라도 누군가 함께 그 어두움과 슬픔을 나눈다고 느낄 때 우리는 큰 위로를 받는다. 오후가 되어도 밝아지지 않는 하늘이 마치 저자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자연의 위로 같다고 느껴진다.
쓰러지시는 아버지를 안아드리지 못한 것이, 혼자 쓰러지시게 한 것이 너무 죄송해서 나는 수십 번씩 CCTV를 돌려보며 흠칫 쓰러지시는 아버지의 몸짓에서 뇌출혈의 징후를 찾아보려 했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서서히 돌아가시고 계셨다.
......< 중간 생략>......
그리고 그로부터 1년 3개월 후, 갑자기 심장이 멈추던 순간의 어머니를 나는 기억한다. 엄마, 아무 걱정 하지 마. 내가 계속 같이 있을게. 엄마는 혼자가 아니야. 엄마, 사랑해. 엄마, 고마워. 엄마, 우리 꼭 다시 만나. 우리 꼭 다시 만나.
나 혼자 있었으므로 누구도 모르는 시간.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시간.
<극야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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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극야 일기>는 이렇게 배로우로 떠난 저자가 남긴 일상의 기록이자, 생각과 감정, 슬픔을 정리해 나가는 기록이다. 이 책을 릴케의 소설 <말테의 수기>에 비유한 평을 보았는데, 마침 얼마 전 <말테의 수기>를 읽은 터라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말테의 수기보다 이 책 <극야 일기>가 훨씬 공감 가고 읽기에도 좋았다. <말테의 수기>가 갑자기 대도시 파리로 넘어와 느낀 공포와 혼돈의 기록이라면, 이 책 <극야 일기>는 반대로 대도시를 떠나 자연의 위로를 받는 기록이다. 극야의 어두움이 함께 하는 애도, 그리고 자연이 주는 위로, 글이 주는 새 힘으로 저자는 다시 일어선다.
또한 이 책 <극야 일기>는 사진이 너무 멋있는 책이다. 책 내용의 반 가까이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일기의 형식인데, 기록을 위한 다큐멘터리 사진도 아니고, 심미적인 목적을 위한 예술사진도 아닌 일상의 기록이자 삶의 기록과 같은 사진들이다. 북극이나 알래스카를 찍은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그런 사진들과는 차별화가 되는 색다른 느낌이라 좋다. 저자의 심리 상태와 감정이 함께 담겨 있는 것 같아 더욱 가슴에 닿는 사진들이다. 사진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분명히 북극성 근처를 지나고 있는데 잘 보이지 않아 막샷을 날렸더니 사진이 참 옹색하지만···
5만 년 전 빙하기에 지나가고 지금 다시 지구 근처를 지나가는데 5만 년 후에나 다시 온다는 혜성을 보러 칼바람 부는 캄캄한 벌판에 여러 번 갔었다.
시간 개념을 바꾸는 존재의 현전을 느끼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혼이 더 가까이 느껴졌다.
또 오로라가 장난 춤을 추고 돌아와 마을까지 내려온 오로라를 배경으로 바닥에 누워 찌부를 하늘 배경으로 오로라 사진 찍고··· 또 아침까지 일하고···
<극야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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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극야 일기>는 이런 애도와 위로의 이야기다. 개인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위로, 깨달음이 있는 이야기다.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밤이 길고 어두워도 언젠가는 해가 다시 뜨듯이 우리 삶의 슬픔이 아무리 무겁고 가혹해도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둠과 슬픔의 시간이 아무리 길고 무거워도 충분히 긴 어둠 뒤에는 미세한 빛이 다시 우리 인생을 밝혀 간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Show must go on.
우리 삶에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일어난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깊은 슬픔도 맞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슬픔을 딛고 다시 삶은 계속된다. 그렇게 계속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요소로 위로를 받게 된다. 그 위로는 사람에게서 오기도 하고, 음악이나 미술에서 받기도 한다.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위로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저자처럼 대자연으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한다. 대자연과 함께 애도하고 위로를 얻고 다시 힘을 내는 저자의 기록이 우리의 삶에도 위안이 된다.
오후 6시 47분
오로라가 내 마음을, 나를 알았다. 알게 되었다.
엄청나게 상냥하고 거대한 빛이 넌 누구지? 하고 고개를 쓱 숙여 기다랗게 나부끼는 속눈썹 너머로 사슴 같은 눈을 깜빡이며 나를 처음 바라본 것 같다.
......< 중간 생략>......
웃으며 온몸의 모양을 순식간에 바꾸며 이 지평선에서 저 지평선까지 휘리릭 넘나들며 새로운 언어를 보여주었다.
아가야 슬퍼하지 마라
우리는 모두 빛이란다.
너의 무게는 너의 것이 아니란다
공중에 가볍게 떠 있는 하얀 너를 보렴
너도, 네 부모님의 영혼도 모두 빛이란다.
<극야 일기> 중에서
?<극야 일기>는 이런 책이다. 유한한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슬픔을 거대한 자연과 시간을 통해 위로받는 기록의 이야기다. 개인사의 기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함께 하다 보면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위로와 응원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접할 수 없는 극야와 백야, 얼어붙은 북극해의 모습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사진은 덤이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혜와 위로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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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