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그렇게혜윰
- 작성일
- 2010.10.6
봉주르, 뚜르
- 글쓴이
- 한윤섭 글/김진화 그림
문학동네
1.
안녕하세요 '봉주르, 뚜르'
가장 프랑스적이기도 또한 가장 한국적이기도 한 이름의 아이 봉주. 그나마 익숙한 파리를 떠나 뚜르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며 만난 낙서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살아야 한다.’는 타국에서 만난 지극히도 조국적인 메시지. 이것을 시작으로 남과 북의 지극히 자기본위적인 생각들을 되짚어보도록 전개되는 이야기.
미처 하지 못했던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느낌은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아니면 북한 사람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 왠지 모르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생각하게 해 줄 것만 같은 기대감과 추리 소설을 방불케하는 흥미진진함이 무척 반가운 동화 ‘봉주르, 뚜르’.
2.
고맙습니다 '봉주르, 뚜르'
그 동안 분단 국가의 현실을 다룬 동화책들을 여럿 읽어보았다. 그 중에서는 문선이 작가의 '딱친구 강만기'라는 이야기가 가장 좋았지만 이번 '봉주르, 뚜르'를 읽으면서 바뀌게 되었다. '딱친구 강만기'를 비롯하여 분단 현실을 다룬 지금까지의 동화들은 대부분 꽃제비의 생활이라던가 귀순 후 한국에서 겪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일종의 교훈을 느끼도록 강요한 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봉주르, 뚜르'가 가장 월등한 점은 '분단 국가의 현실'을 통해 '교훈'을 주려기 보다는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동화들은 '토시'가 지적한 것처럼 '북한은 모두 가난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그리하여 '귀순하는 북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던가 '북한이 싫어 귀순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오만한 인과관계를 무의식 중에 갖게 한다. 하지만 '봉주르, 뚜르'는 북한은 남한 사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자기 식대로 부르는 별칭이며,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더욱이 '두려운하는 것은 어른들이지, 아이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토시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
" 날 위해 말한 거야. 어른들은 두려워할지 몰라도 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 나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가 숨어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고 싶지 않아."
P189
사실, 지금의 어린 아이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수십 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산 가족 상봉','국토 자원의 효율성', '군사 비용의 절약' 등과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가슴으로 생각하는 아이는 단호하게 말하지만 없다. 지금 아이들의 할머니들도 이산 가족인 경우가 드물고 국토 자원이나 군사 비용을 생각하기엔 아이들은 너무 어리다. 시대는 변해가고 남북 관계도 달라지고 아이들의 의식도 예전같지 않지만 통일에 관한 일종의 교육은 언제나 예전 그대로이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통일도, 책에서 읽는 통일도, 미디어로 보는 통일도 겉모습만 세련되어졌을 뿐 속알맹이는 언제나 구식이다.
그러하기에 이런 시점에서 '봉주르, 뚜르'와 같이 분단 국가의 현실을 조금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니 지금 젊은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동화는 우리들의 갈증을 조금은 해소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에서 남과 북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선택은 무척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어느 곳에서 우리가 남과 북을 이렇게 치우친 감정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한국 사람 열만 모이면 북한은 어느 새 '악의 축'이 되어버리거나 '지지리 못사는 나라'가 되어 버린다. 그 곳에 사는 사람도 봉주나 토시와 같은 아이일 수 있으며, 우리가 대한민국에 대하여 가지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듯이 그들도 그들 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어른들의 생각은 아이들에게 말이나 글 또는 영상으로 흡수되어가고 아이들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북한에 대한 왜곡된 시선만을 간직하게 되는 봉주의 모습이 되어 버린다. 생각없이 이루어지는 무조건적인 나쁜 감정은 매우 위험한 것이라 객관성을 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 동화의 의미가 커진다.
"구분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거야. 독재자가 전쟁 준비만 하고 자기만 잘살려고 하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가난하고 불쌍한 거야. 그러니까 '대통령'이 아나리 '독재자'란 단어를 쓰는 거야. 난 이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넌 네가 북한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p80
3.
다음에 만나요 '봉주르, 뚜르'
토시는 또 어디론가 떠나고 그곳에서 또 일본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봉주와 같은 친구를 만난다면 자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민임을 말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일본인으로 살아가야할 지도 모른다. 봉주는 토시를 보내고 북한을 더이상 북한이라고 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그 나라의 이름이 '북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북한 친구와 만나는 것이 위험하다거나 그 친구가 고위층일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언제는 어디서든 우리는 북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사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적으로 둔 한 인간이며, 그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한 걸음씩 서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통일을 해야 한다면, 통일을 준비하는 첫번 째 자세가 아닐까.
그 동안 우리가 만난 통일에 관한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경직되었고 때문에 비현실적이었다. '봉주르, 뚜르'를 계기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확장을 도와주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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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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