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리뷰

쿠니토리
- 작성일
- 2017.4.4
장미의 이름 세트
- 글쓴이
- 움베르토 에코 저
열린책들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출판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는 저명한 기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 뿐 아니라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포르투칼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능통하며 리처드 도킨스나 노엄 촘스키 등과 함께 이 시대 최고 지성으로 칭송받는 자이다. 이번에 리뷰하게 된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등의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중부 이탈리아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추리소설이자 스릴러이다.
주인공 아드소가 과거를 회상하는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수련사인 아드소와 그의 스승인 현명하고 박학다식한 수도사 월리엄이 수도원에서 발생한 의문의 죽음을 접하고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14세기 초엽, 황제와 교황의 권력 다툼과 대립이 무성했던 시기로, 왕권과 신권의 분란을 해소하기 위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수도원이 황제와 교황의 사절단들의 중재자 역활로 등장한다. 즉, 양 측의 사절단이 모여 협의하기 위한 장소가 수도원이였으며 주인공인 아드소와 윌리엄은 왕권을 대표하는 사절단의 일부로서 수도원에 도착하고 연이어 발생하는 수도사의 죽음을 목격하고 수도원장의 부탁으로 수도사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
첫번째 수도사 아델모의 의문의 죽음은 살인인지, 자살인지조차 명확하지 않고 그 원인을 밝히고자 두 사제는 동분서주하지만 수도원에는 60여명의 수도사와 수도사를 돕고 있는 수련사와 많은 불목하니(시종 또는 인부)가 있어 용의자의 폭이 넓었으며 인과성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시체가 남긴 증거나 단서가 결정적인 부분이 없고 첫 번째 시신인 아델모의 죽음과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인물이었던 베난티오가 두번째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수도원장을 비롯한 식료계, 본초학자, 채색사, 주서사, 필서사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수도사들은 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고 같은 수도원에서 수행하는 입장임에도 과거나 사상, 그리고 신학에 대한 견해에서도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월리엄은 논리적 추리와 유도질문 등을 통해 수도사들로부터 증거와 증언을 수집하며 사건해결에 힘쓰지만 수도사들의 적극적 협조를 얻지 못하는 상황과 의문의 죽음과 관련이 깊어보이는 '수도원의 장서관' 출입을 금하는 수도원장의 방침으로 인해 수사는 더디게 진행된다.
아드소와 윌리엄은 수도사들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장서관에 들어가는 비밀통로를 알게 되고 '장서관 출입금지'라는 수도원의 방침을 위반하여 잠입하기도 했으나 장서관의 독특한 구조와 복잡성으로 인해 결정적 단서는 획득하지 못했으나 의문의 죽음과 장서관이 관련이 있다는 심증은 굳히게 된다.
아델모와 베난티오의 죽음으로부터 연결된 끈을 찾아가던 중 두 수도사의 죽음과 직간접적인 연결을 갖는다고 생각되던 베렝가리오가 실종되는 사고가 더해져 고요했던 수도원의 불안은 가중된다.
연속되는 사건은 쉽게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연륜 높은 알리나르도 수도사가 읊조리는 '요한의 묵시록'을 들으며 월리엄은 '요한의 묵시록'에서 암시하는 순서와 형태로 수도사들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묵시록이 말하는 3번째 장소에서 '실종된 베렝가리오'의 시체를 발견한다.
베렝가리아의 시신이 발견되며 수도원의 불안은 고조되고 왕권과 교권을 대표하는 자들 간의 협의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쓰일 수도원에서 발생한 의문의 죽음들은 수도원장을 비롯한 수도사들의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했다.
황제의 사절단과 교황청의 사절단의 회동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범인의 윤곽은 잡히지 않았다.
왕권과 교권을 상징하는 두 사절단의 첨예한 대립이 있는 가운데 '수도사 사망 사건'의 중요한 단서(비밀스러운 책)가 등장했으나 그 단서를 제공하기로 한 자인 세베리노가 자신의 집무실(시약소)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4번째 죽음 또한 '요한의 묵시록'이 시사하는 형태의 죽음을 보이고 아모델로부터 세베리노에 이르는 죽음이 '요한의 묵시록'의 마지막 날을 모사한 살인을 저지르고 있음이 드러난다.
윌리엄은 세베리노의 죽음에 대한 용의자였던 장서관 사서 말라키아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고 사건의 인과 관계를 숙고한다. 그러나 사서 수도사인 말라키아 또한 시체로 발견되면서, 두 사제가 용의자이거나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인물들이 연달아 시체로 발견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사건의 중요한 단서이거나 발단이라고 여겨지는 비밀의 서책과 접근이 엄격히 차단되어 유지되어 온 장서관, 이 두가지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하는 끊임없는 추리와 약간의 우연을 통해 마침내 윌리엄은 장서관 심부의 비밀스러운 공간과 비밀의 서책의 비밀을 알게된다.
윌리엄과 아드소는 장서관의 가장 깊고 신비스러운 곳까지 접근하고, 그 곳에서 모든 사건의 원흉을 대면한다. 일그러진 신념과 신앙으로 인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돌리는 지독한 오만 앞에서 윌리엄은 '거짓 선지자','거짓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린다.
'장미의 이름'의 후반부는 사건의 급전개가 이뤄지며 모든 의문과 수수께끼가 풀린다.
내가 리뷰를 마치면서도 범인과 범행의 원인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것은 독자가 느낄 반전을 강탈하지 않겠다는 부분도 있지만 후반부의 범인과 윌리엄이 나누는 대화는 "선악이란 무엇이고 인간에게 참된 진리나 진정한 선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데 그 해답이 윌리엄의 말을 통해 부분적으로 제시되고는 있으나 독자들의 생각에 따라 가중치가 달라지고 범인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양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섣불리 적지 못하였다.
'장미의 이름'을 리뷰하면서 '수도원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추리소설적인 부분을 강조하였으나 추리소설로서의 실질적 분량은 870페이지 가량의 분량 가운데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주인공이 겪는 수련자로서의 종교적 신념과 인간으로서의 본성의 대립, 중세 시대의 왕권과 교권의 갈등, 교리 차이와 이권 다툼으로 인한 기독교의 분열 등을 세밀히 다루고 있다.
중세시대의 교황과 종교가 세속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신의 이름을 빌어 만행을 저지르고 자신들의 이권에 반하거나 교회의 정화를 주장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몰아붙여 화형시키는 일이 많았으며 '종교와 신'은 교회가 왕권을 견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당시의 왕정 또한 분열된 기독교의 분파들을 이용하여 교권을 견제하고 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교권과 왕권이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는 시기에는 적절한 타협을 통해 서로의 이권을 도모하기도 했다.
장미의 이름이 보여주는 폐쇄적인 수도원 분위기와 자연과학을 비롯한 과학적 지식을 대하는 오만한 사고, 학문의 중심을 소수의 종교인(교회, 수도원 등)에게만 국한시키고자 하는 편협함, 종교적 수행이라는 기치를 내세웠으나 행실에서의 끝없는 타락, 다양성을 억압하고 자신이 속한 교단만이 진리라 생각하는 아집, 서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교리와 이윤 추구 등 이런 원인들이 쌓여 인본주의와 자연주의로 대표되는 르네상스를 초래했고 나아가 근현대사 발전으로 이어졌다고 보여진다.
수도원 살인 사건의 풀이과정 가운데 장서관의 구조를 찾아내는 과정은 난해한 퍼즐조각이며 작가가 그려준 도해를 보면서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난제풀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글을 읽으며 장서관의 구조를 맞춰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다빈치 코드'와 유사한 진행을 보이고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과 언어의 달인답게 본문에 등장하는 장서관의 구조의 설계나 라틴어로 쓰여진 문구들은 신선함을 준다.
소설로서의 가치보다 역사적인 가치로 더 높게 평가받는 책이니만큼 거북스러운 중세시대의 종교문제와 사회상을 일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불어 철학적 사유로서 "'진리와 선'이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지, 어긋된 신념이 어떤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장미의 이름은 (상)편과 (하)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편에서는 주로 수도원의 구조나 일과를 설명하고 수도사들의 특징을 묘사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도입부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상)편의 중반부를 넘어가며 사건전개가 속도를 내기 때문에 약간의 인내심은 필요하다
독자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독서 방법은 표지에 그려진 수도원 평면도를 유심히 보고 머릿속으로 그려본 다음 본문의 초입에 적혀 있는 '수도원의 일과표'를 숙지하고 본문을 읽어 나간다면 지루함도 덜하고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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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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