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9월 리뷰

앤의 정원
- 작성일
- 2012.9.19
그로테스크
- 글쓴이
- 기리노 나쓰오 저
문학사상
이 책은 1997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동경전력 여사원 매춘부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실화이기 때문에 더 호기심이 생겼고 전작인 '얼굴에 흩날리는 비'로 기리노 나쓰오 라는 작가에 대한 호감도 있었다.
역시나 각종 유명한 상을 휩쓴 작가답게 글 쓰는 솜씨가 매우 노련하다.
실화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이 느껴지고 내용을 이끌어나가는 화자가 달라짐에 따라 그들의 생각이 그대로 내 머리속에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주된 화자는 괴물같은 미모를 지닌 유리코의 언니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유리코의 언니가 글을 이끌어나가는 주된 인물인데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자는 시종일관 자신이 동생인 유리코의 그늘에 가려 살아왔다는 불평을 하고 있는데 꽤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유리코의 언니라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이미지 메이킹이 성공한 것 같다.
스위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지만 평범한 자신과는 달리 화려한 외모를 지닌 동생 유리코를 질투하고 미워하며 산 언니, 이 세상 사람같지 않은 뛰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타고난 음탕한 기질로 중학생 시절부터 매춘을 시작한 히라타 유리코, 유리코의 언니와 동급생인 우등생 미쓰루, 역시 유리코의 언니와 동급생이나 모든 면에서 우수한 미쓰루와는 달리 노력하는 만큼 주위로부터 경멸당하는 사토 가즈에가 이 책의 주요 등장 인물들이다.
사토 가즈에는 이 책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동경전력 여사원 살인사건의 당사자로 나온다.
고교시절부터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돋보이고 싶고, 칭찬받기를 원했던 가즈에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지 못했는지, 깨달았으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안타까울 정도로 노력을 한다.
거식증에 걸리면서까지 몸무게를 줄이고, 괴물같이 변한 자신의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남들의 시선따윈 신경쓰지도 않고 점점 밤의 세계에 빠져드는 가즈에..
어릴때부터 매춘을 해왔던 유리코와는 달리 가즈에의 모습은 이 책 제목 그대로 '그로테스크' 하고 충격적이었다.
등장인물들 모두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난 그중에서도 가즈에의 삶이 가장 안타깝다.
동생의 그늘에 가려 평생을 이인자로 살아온 유리코의 언니도 측은하다.
유리코가 죽은 다음 그 아들인 유리오에게 사로잡혀 버린 그녀는 아마 평생 자기 자신만으로는 우뚝 서지 못할 것이다.
매우 재미있는 책은 식사를 할 때에도 손에서 놓지 않는 버릇을 갖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책에서 느껴지는 웬지 모를 괴기함과 비릿함이 음식을 먹으며 읽기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과 외모 지상주의의 현대 사회에서 뛰어나지 못한 여성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주류로 들어가려 하는지를 너무나 리얼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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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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