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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글쓴이
테드 창 저
엘리
평균
별점8.6 (356)
tweenty
나는 SF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SF 영화 중 히트작들도 챙겨보는 편도 아니다. 그건 내가 완성도 높은 SF 작품을 좋아할 정도의 호기심이나 지식이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 만큼, 북클러버 활동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읽게 된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어, 나 SF 좋아하네?'를 느끼게 한 책이었다. 어쩌면 이 책이 장르를 초월한 수작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이야기가 소위 쫀쫀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총 8편의 단편을 엮은 책이다. 나는 이 중 표제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지옥은 신의 부재],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를 읽었다. 처음에는 [바빌론의 탑]부터 순서대로 읽어 나갔지만, 내용의 3분의 2 지점을 읽기까지 자꾸 구글과 위키피디아에서 물리학과 지구과학 관련 지식을 찾아보며 독서의 맥이 끊기는 통에 이렇게 가다가는 완독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서둘러 마음에 드는 제목의 단편들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세 단편 모두 기발하고 재밌었지만,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는 끝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만족감이 덜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뇌에서 외모의 심미적 기준을 판단하는 능력을 제거했을 때 나타나는 장단점을 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글들로 구성된다. 쟁점 자체가 대학생 토론대회 주제로 삼아도 좋을 만큼 흥미로운데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견도 개별적으로 보면 전부 논리적이고, 수긍이 가서 초반에는 글의 흡인력이 강했다. 하지만 글 전체가 인터뷰 내용들로만 나열되다 보니 문제만 던져두고 끝나는 꼴이었고, 다른 소설 대비 만족도가 떨어졌다.

내게는 [지옥은 신의 부재]가 셋 중 제일 재밌었다. 일면 넷플릭스의 [지옥]을 떠오르게 했던 이 작품은 신과 종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인식은 완전히 비틀며 시작된다. 주인공 닐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신의 존재가 현실화된다. 정확히 말해, 이따금 천사가 현실 세계에 강림해 인간에게 은총을 내리고 그 결과 희생자도 생긴다. 여기서 핵심은 은총의 방식이 꼭 축복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며(은총의 결과로 다리를 잃거나 눈이 머는 경우도 있다), 천사의 강림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모두 지옥으로 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또 한 번 비틀어지는 지점은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다. (책을 2-3주 전에 읽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핵심은 신의 존재이다. 즉 지옥은 우리가 사는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영원히 고통받는 불지옥 따위는 없다) 신과 영원이 단절된 채 사는 것이 그 형벌이다. 주인공 닐의 딜레마는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천사의 은총(표면상으로는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지만)으로 천국에 간 이후로 발화된다. 약간의 장애를 갖고 태어나 사실상 신앙심이 없었던 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사라를 만나면서 비로소 삶의 축복을 느낀다. 사라는 신앙심이 깊지만 이를 남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만약 사라가 닐과 백년해로했다면, 어쩌면 그도 사라에게 스며들듯 독실한 신앙인이 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라를 신은 은총이란 이름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의 방식으로 천국으로 데려가 버린 것이다. 애초에 신앙심이 부족했던 닐인지라, 이 사건 이후로 신에 대한 그의 반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라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내어줄 만큼 간절하지만, 신앙심이 없는(이 자체로도 높은 확률로 지옥 당첨인데) 닐이 자살까지 한다면 천국에 갈 가능성은 제로이다. 이것이 닐의 딜레마다. 결국 닐은 천국에 가기 위한, 아니 사라를 천국에서 만나기 위한 방법으로 천사의 빛(천사가 강림할 때 발생하는 빛을 맞으면 은총을 입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하고, 천사가 자주 출연하는 성지들로 달려간다. 과연 닐은 어떻게 됐을까?

이 단편은 말 그대로 '신이 부재한 곳이 바로 지옥이다'라는 명제를 아이러니하고 비극적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통해 풀어낸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종교와 신에 대한 인간의 믿음, 신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모태 신상에 가까운 천주교 신자지만 평생 완벽한 신앙에 도달하지 못한 나였기에, 이 작품을 더 흥미롭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떤 수단이나 목적으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믿음이 가능할까?

마지막으로 [내 인생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내용이 좀 헷갈렸고, 두 번을 읽은 다음에야 작가의 메시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영화화한 [컨택트]를 보면 책 내용을 한결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어찌어찌해서 영화는 보지 못했다. 이 단편은 '언어의 한계가 세상의 한계를 정한다'는 (누군의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말을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보는 내내, 정말 인간이 현재 사용하는 인과론적이고 순차적인 언어 대신에 외계인 햅타포드가 사용하는 동시적이고 비인과론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시간이라는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100% 납득되지는 않았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그 하나는, 어느날 외계인이 지구에 불시착하면서 이들의 방문 목적을 파악하기 위해 기용된 언어학자가 외계인의 언어를 배워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언어학자가 딸을 키우며 겪는 이야기로 그 에피소드들이 첫 번째 이야기가 서술되는 중간중간 삽입된다. 전자는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딸에 관한 에피소드들은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소개된다. 처음에는 이 두 줄기의 사건이 주인공에게 어떤 순서로 일어나는 것인지 헷갈리는데, 이는 작가가 이 글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한 형식으로 보인다. 또 소설은 글 초반에 일찌감치 독자들에게 이 딸이 20대의 젊은 나이에 등반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까지 드러낸다.

소설을 두 번째 읽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이야기 또한 지난 번 읽었던 김연수의 소설처럼 미래를 아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외계인의 언어를 체화한 언어학자 루이스는 딸을 갖기 전에 이미 딸의 죽음을 알고 있다. 이런 루이스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완벽한 SF 소설이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내게 알려주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보면 외계인의 신체구조나, 언어, 물리학의 법칙 등이 서로 퍼즐처럼 맞아 떨어지며 우리가 사는 현실, 즉 시간이 지배하는 인과론적 세계 또한 우리의 관념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제시한다. 외계인의 출현과 그들과 소통을 꾀하는 과정 또한 내가 봤던 여느 외계인 영화보다 현실적이고 타당했다.

SF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 테드 창의 소설은 읽어야 할 그의 단편이 아직 네 편(물론 [숨]이라는 다른 단편집도 있다)이나 있다는 게 축복으로 느껴질 만큼 취향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런 철학적인 주제들을 이렇게 흥미롭게 서술해 나간 테드 창의 천재성에도 번번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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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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