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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
글쓴이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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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8.9 (11)
서천

  이 시집을 다 읽고나서, 제목 '기탄잘리'의 뜻을 찾아보았더니(읽기 전에 찾아봤어야 했나?) '신에게 바치는 송가'라고 한다. 신에게 바치는 송가라? 내가 느낀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줄 소감에서 밝힌 것처럼, <기탄잘리>는 님을 향한, 님을 위한 찬송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는 모두 103편인데, 1번부터 103번까지 번호만 매겨져 있을 뿐, 별도의 제목은 없다. 일련번호로 매겨져 있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오로지 님을 그리워하고 기다린다는, 님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친다는 고백의 기도(그렇지 않은 노래도 있다. 60번에서 62번은 님이 아닌 아이들(혹은 아가)에 대한 애정을, 90번부터 103번까지는 님에 대한 찬송이 아닌 (자신의) 죽음에 임하는 노래이다.).



  다음 작품은 이 시가 님에게 바치는 '기도'임을 직접적으로 언명한다.



 



  나의 주인이여, 이것이 내가 님께 올리는 기도입니다. 내 마음속 빈곤의 뿌리를 내리치고 또 내리치소서.



  기쁨과 슬픔을 가벼운 마음으로 견딜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소서.



  님께 바치는 내 사랑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소서.



  가난한 자들을 거부하지 않도록, 무례한 권력 앞에 코 무릎을 꿇지 않도록 나에게 힘을 주소서.



  일상의 사소한 일을 초월하여 내 정신을 높이 세울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소서.



  그리고 님의 뜻을 이루는 데 내 모든 힘을 사랑의 마음으로 바칠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소서.  - 36번 작품 전문



 



  이 시집을 읽는 내내 나는 하나의 의문을 가졌야 했다, 이 작품들이 과연 시가 맞는가, 하는. 시라기보다는 짧은 기도문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다.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기도문 형식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기탄잘리>를 읽으면서는 이걸 시라고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세계적으로 인정됐으니(19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시는 압축미나 운율 등과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 시에서는 압축이며 운율을 느끼기 힘들었다(운율의 경우,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은 원작이 아니라 번역물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시를 읽는다기보다는 (산문 같은) 짧은 기도문(혹은 신앙고백서)을 읽는다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시에 대한 나의 사고가 편협해서 이 시들을 시로 받아들이는 데 다소 거부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운율을 제외하면, 아름다운 시라고 느낀 작품도 없지 않다. 다음은 그 중 한편이다.



 



  그렇습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다만 님의 사랑일뿐임을. 오, 내 마음 깊이 사랑하는 이여, 잎새들 위에서 춤추는 금빛 물결의 햇살이, 하늘을 가로질러 떠가는 이 나른한 구름들이, 내 이마 위에 서늘함의 자취를 남기고 지나가는 이 미풍이 님의 사랑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아침 햇살이 내 눈을 흠뻑 적셔 주었습니다. 이는 내 마음에게 전하는 님의 사연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님의 얼굴이 높은 곳에서 굽어보고 있음을, 님의 두 눈이 내 두 눈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내 마음이 님의 발에 가닿아 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 59번 전문



 



  님에 대한 사랑을 잘 느끼게 해주는 시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떠올린 시인이 있다. 바로 한용운 시인인데, 위 시를 읽으면서는 <알 수 없어요>라는 시가 잠깐 떠올랐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최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골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슬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돍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적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갓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 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전문



 



  <알 수 없어요>에서 '누구'를 '님'으로 바꾸면 기탄잘리 59번 시와 한용운의 시는 거의 같아 보였다. <알 수 없어요>가 형식 면에서 의문의 형식을 취했지만 수사의문문으로 본다면, 형식도 문제가 안 되고, 내용은 외물에서 님의 존재를 느낀다는 것으로 같지 않은가.



  한용운이 <기탄잘리>를 읽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읽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기에는 <기탄잘리>와 시집 <님의 침묵>에 실린 시들은 공히 님을 노래하며, 의미가 통할 수 있는 작품들도 꽤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용운이 <기탄잘리>를 읽었든 그렇지 않든, 나는 한용운의 시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기탄잘리>가 님에 대한 찬송(혹은 신앙고백)이라면, '님'은 어떤 존재인가? 한편의 노래를 통해 알아 보자.



 



  그는 가장 내밀한 곳에 머물면서, 깊고 은밀한 어루만짐으로 내 존재를 일깨워 주는 분입니다.



  그는 이 두 눈을 황홀케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 안의 심금을 울려 다채로운 가락의 즐거움과 고통의 음악을 엮어 내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 세상의 온갖 마야를 엮어,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미묘한 색조의 금빛과 은빛, 물빛과 풀빛의 천을 짜는 분, 그렇게 짠 천의 주름 사이로 자신의 발을 언뜻 내보이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의 발에 닿으면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지요.



  나날은 다가오고 세월은 흐르지만, 수많은 이름으로, 수많은 모습으로, 수많은 기쁨과 슬픔의 황홀경으로 언제나 변함없이 내 마음을 감동케 하는 분은 바로 그입니다.  - 72번 전문



 



  님을 표현한 말은 여러 작품에서 드러나는데 다양하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 '나의 주인', '왕', '왕중의 왕', '천국의 주인', '삶의 유일한 반려자', '이 세상 어디에나 있는 유일자', '하늘', '보금자리'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님을 지칭한다. 딱 꼬집어 말하기에는 어려운 점도 없지 않지만, '님'은 대체로 '절대자'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한용운 시의 '님'의 의미처럼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 같지는 않다.).



   



  <기탄잘리>를 읽으며 한용운의 시가 연상된다고 했는데, 한용운 외에도 우리 설화가 연상되는 작품(54번), 천상병의 시가 연상되는 작품(96번)도 있었다.



 



  나무 그림자 비스듬히 드리워진 우물가에 나는 홀로 남아 있었지요. (중략)



  님이 오실 때 나는 님의 발걸음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님의 눈길이 나를 향했을 때, 님의 눈은 슬픔에 잠겨 있었지요. 님이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을 때, 님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배어 있었고요. "아, 나는 목마른 나그네요." 나는 백일몽에서 놀란 듯 깨어나, 하나로 모은 님의 손바닥 위로 물동이의 물을 부어 드렸지요. 머리 위에서는 나뭇잎들이 살랑대고 있었고, (중략)



  님이 내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정말이지, 님께서 나를 기억하실 수 있도록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략)  - 54번 작품 일부



 



  물 위에 버들잎을 띄워주는 내용은 없지만, 목마른 나그네에게 물을 떠주는 이야기, 우리 설화에도 있지 않은가.



 



  내가 본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내가 하는 작별의 말이 되게 하소서.  - 96번 작품 첫행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3연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인용한 부분만 놓고 보면 흡사하지 않은가.



    *



  <기탄잘리>는 님을 위한, 님을 향한 찬송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대부분의 시편들에서 화자는 오로지 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몇몇 시편들에서 인간적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들조차 끝내는 님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어떻게 하면 이렇듯 절대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진실한 고백을 할 수 있을까? <기탄잘리>는 한없이 순정하고 솔직한 고백 앞에서 경건해지게 만드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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