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우리말 칼럼

우달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8.4.24
‘휑하니’ 갔다 오지 말고, ‘힁허케’ 갔다 오세요
“박의원은 휑하니 나가버렸다”거나 “횅하니 다녀오너라” 따위 문장 중의 ‘휑하니’나 ‘횅하니’는 아주 흔히 쓰이는 말입니다. 더러는 ‘힁하니’를 쓰기도 합니다.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또는 어디를 들르지 않고 곧장”의 뜻으로 말할 때는 열이면 아홉은 그렇게들 씁니다.
하지만 이는 바르게 쓴 말이 아닙니다. 물론 ‘휑하다’ ‘횅하다’ ‘힁하다’는 모두 번듯한 표준어입니다. 그러나 “지체하지 않고 아주 빠르게 가는 모양”을 뜻하는 의미는 없습니다.
형용사 ‘휑하다’(작은말은 ‘횅하다’)는 “무엇이나 막힐 것 없이 다 잘 알아 매우 환하다” “구멍 따위가 아주 시원하게 잘 뚫려 있다” “눈이 쑥 들어가 보이고 정기가 없다”는 뜻의 말입니다.
즉 ‘휑하다(횅하다)’는 “그는 농사일에 휑하다”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다” “눈이 휑한 것이 분명 병이 든 듯했다” 등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휑하다(횅하다)’는 ‘휑뎅그렁하다’(작은말은 ‘횅댕그렁하다’)의 준말로 쓰이기도 하는데, ‘휑뎅그렁하다’는 “넓은 곳에 작은 것이 있어 잘 어울리지 않는다” “무서울 정도로 텅 비고 넓기만 하다”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또 ‘힁하다’는 “놀라거나 피곤하거나 또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머리가 띵하다”의 뜻을 지닌 말로, “종일토록 내내 복잡한 수학 공식을 외우다 보니 머리가 힁할 지경이다”처럼 쓰입니다.
그렇다면 “지체하지 않고 아주 빠르게 가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은 무엇일까요? 바로 ‘힁허케’입니다. 모든 사전에 다 그렇게 올라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고민이 됩니다. “일반 언중은 백이면 구십구, 천이면 천 모두 ‘휭하니(휑하니)’ ‘횡하니(횅하니)’ ‘힁하니’로 쓰는데, 가물에 콩 나듯이 사용하는 ‘힁허케’를 끝까지 고집해야 할까?” 하고요.
그러면서 또다시 의심이 생깁니다. 우리 언중이 흔히 쓰는 ‘연신’을 북한의 문화어(우리 표준어는 ‘연방’)라며 사용하지 못하게 하듯이, ‘휭하니’를 북한이 바른말로 삼고 있기 때문에, 괜한 똥고집으로 ‘힁허케’를 쓰도록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말입니다.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지체하지 않고 아주 빠르게 가는 모양”을 뜻할 때는 ‘휭하니’ ‘휑하니’ ‘횡하니’ ‘횅하니’ ‘힁하니’ 대신 ‘힁허케’를 써야 합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