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의 일입니다.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하늘은 찌뿌드드하지만, 행복이 알알이 영그는 한 주를 만들라”고요.

그랬더니 대뜸 후배가 “아니, 우리말 달인이라는 분이 ‘영그는’이 뭡니까. ‘여문’이지요. ㅋㅋ ^^”라는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다시 문자를 보냈지요. ‘영글다’와 ‘여물다’는 복수표준어라고요.

이번에도 후배는 “국어사전에도 ‘영글다’라는 말이 없고, 네이버의 지식in이나 블로그에도 ‘영글다는 여물다의 잘못’이라는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며 자기 말이 맞는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고는 “언제 적 사전이냐”고 물었습니다. 1995년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쏘아붙였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우리말은 안 변하겠느냐”고요.

사실 1990년대 후반까지 ‘영글다는 여물다의 잘못’이라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저도 신문사에서 교열을 보다가 ‘영글고’ 따위를 ‘여물고’ 등으로 고치지 않아 선배들에게 자주 지청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영글다’로 쓰는데, 왜 교열기자만 ‘여물다’로 고집해야 하느냔 말입니까.

그래서 1995년쯤인가, 당시 한국교열기자협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말과 글>에 “옛말 ‘염글다’가 ‘영글다’나 ‘여물다’로 변하는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니, 두 말을 모두 바른말로 봐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습니다. 신문의 ‘우리말 바르게 쓰기’난에 기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이 세상에 나오면서 마침내 ‘영글다’도 표준어의 옷을 입게 됐습니다. 이후에 나온 다른 출판사의 작은 사전에도 ‘영글다’가 바른말로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중에 나와 있는 몇몇 우리말 관련 책과 네이버 지식in 등에는 여전히 ‘영글다는 여물다의 잘못’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곱고 바른 우리말을 쓰게 하는 노력은, ‘어떤 말이 비표준어이니 쓰지 말자’고 하기보다는 ‘어떤 말은 표준어로 대접받을 만하니 어서 바른말의 자격을 주자’는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말이 ‘꼬라지’입니다. ‘꼬라지’는 현재 사전들이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 말입니다. ‘꼬락서니’의 사투리라는 것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정말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요?

‘목’에 접미사 ‘아지’가 붙어 ‘모가지’가 되고, ‘박’에 ‘아지’가 붙어 ‘바가지’가 됐듯이, ‘꼴’에 ‘아지’가 붙어 ‘꼬라지’가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무릇 잔뿌리가 많은 나무가 건강하듯이 말도 그 가짓수가 많아야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툭하면 사투리라 써서는 안 된다, 북한에서나 쓰는 말이다 하며 쓰지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언중이 많이 쓰고 우리말법에도 벗어나지 않는 말이라면 표준어로 대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또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저 개인의 생각입니다. 아직까지 ‘꼬라지’는 ‘꼬락서니’로 써야 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