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야기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못’에 대해 질문을 남기신 이웃이 ‘잘 하다’와 ‘잘하다’의 띄어쓰기 구분에 대해서도 물어왔습니다.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잘 하다’와 ‘잘하다’를 구분해 쓰기란 사실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니,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부사 ‘잘’은

옳고 바르게.(마음을 잘 써야 복을 받는다)

좋고 훌륭하게.(아들을 잘 두다 / 그는 자식을 모두 잘 키웠다)

익숙하고 능란하게.(환자를 잘 치료하다 / 그는 민요를 아주 잘 부른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또는 분명하고 또렷이.(잘 알다 / 잘 모르다 /잘 듣고 따라 하시오)

아주 적절하게. 또는 아주 알맞게.(잘 익은 수박 / 옷이 잘 맞다 / 빵이 잘 구워졌다)

아무 탈 없이 편하고 순조롭게.(잘 가거라 /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버릇으로 자주.(잘 놀라다 / 잘 웃다 / 그는 극장에 잘 간다)

유감없이 충분하게.(이번 일은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 한다)

아주 만족스럽게.(잘 먹었습니다 / 잘 놀고 갑니다 / 한숨 잘 잤다)

예사롭거나 쉽게.(아무 데서나 잘 잔다 / 남에게 잘 속는다 / 생각이 잘 안 난다)

기능 면에서 아주 만족스럽게.(칼이 잘 든다 / 소화 불량에 이것만큼 잘 듣는 약이 없다)

친절하게 성의껏.(잘 대해 주다 / 잘 봐주다)

아주 멋지게. 또는 아름답고 예쁘게.(잘 차려입다 / 사진이 잘 나왔다)

충분하고 넉넉하게.(못 되어도 백 냥은 잘 될 것이다)

따위처럼 그 쓰임이 아주 폭넓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사 ‘잘’에 ‘-하다’가 붙어 이뤄진 용언 ‘잘하다’ 역시

옳고 바르게 하다.(그러기에 평소 처신을 잘해야지 /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 시시비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좋고 훌륭하게 하다.(공부를 잘하다 / 살림을 잘하다 / 일을 잘하다 / 가정에서부터 교육을 잘해야 나라가 산다)

익숙하고 능란하게 하다.(잘하는 솜씨 / 영어를 잘하다 / 축구를 잘하다 / 말을 잘하다 / 그는 노래를 아주 잘한다)

버릇으로 자주 하다.(오해를 잘하다 / 그녀는 웃기를 잘한다 / 우리 집 식구들은 외식을 잘한다 / 그는 거짓말을 잘한다)

음식 따위를 즐겨 먹다.(그는 술을 잘한다)

(반어적으로) 하는 짓이 못마땅하다는 뜻을 나타낸다.(잘한다! 일을 이렇게 망쳐 놓았으니 이제 어떻게 수습할래? / 흥, 잘하는 짓이다)

(주로 ‘잘하면’ 꼴로 추측을 나타내는 문장 앞에 쓰여) ‘운이나 여건 따위가 좋으면’ ‘여차하면’의 뜻을 나타낸다.(잘하면 올해도 풍년이 들겠다 / 잘하면 네가 나를 치겠구나)

(주로 ‘잘해서’ ‘잘해야’ 꼴로 쓰여) ‘넉넉잡아서’ ‘넉넉잡아야’ ‘고작’의 뜻을 나타낸다.(이  도 물건이라면 잘해서 3500원이면 살 수 있다. / 잘해야 열 사람 중에서 한두 사람쯤 살아날 수 있다는데)

친절히 성의껏 대하다.(부모에게 잘하다 / 남에게 잘해야 자기도 대접을 받는다)

따위로 쓰입니다.

자, 위의 예문들을 봤을 때 ‘잘 하다’와 ‘잘하다’를 구분해 쓸 수 있겠습니까? 아니, 꼭 구분해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굳이 ‘잘 하다’와 ‘잘하다’를 구분해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잘하다’로 붙여 쓰면 99% 맞습니다.

그보다는 ‘잘 생기다’와 ‘잘생기다’, ‘잘 입다’와 잘입다‘를 가려 써야 하는 것에 신경 써야 할 듯합니다.

“사람의 얼굴이나 풍채가 훤하여 훌륭하다” “물건의 모양이 미끈하여 보기에 좋다”는 뜻의 말은 ‘잘생기다’로 붙여 써야 합니다. 하지만 “팔에 상처가 잘 생긴다” 따위 문장에서는 ‘잘 생기다’로 띄어 써야 합니다.

즉 ‘못생기다’의 반대 개념의 ‘잘생기다’는 붙여 쓰지만, “자주 발생한다”나 “좋게 발생한다” 등의 ‘잘 생기다’는 띄어 써야 합니다.

또 “의생활에 부족함 없이 좋은 옷을 입다”나 “옷을 안목 있게 입다”의 뜻을 나타내는 ‘잘입다’는 붙여 쓰지만, “철에 맞게 옷 좀 잘 입고 다녀라”라는 문장에서는 ‘잘 입다’를 띄어 써야 합니다.(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잘입다’가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지만, 금성출판사의 <국어사전>에는 ‘잘입다’가 표제어로 올라 있음)

좀 감이 잡히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