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우리말 칼럼

우달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9.5.16
[재정부 관계자는 “기관장으로 임명된 1년 정도의 기간만으로 기관장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은 만큼 ‘열심히 하라’는 수준에서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모 신문이 보도한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이 기사에서도 보듯이 ‘생사여탈권’은 참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생사여탈권’은 바른말이 될 수 없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생사여탈권’은 ‘생사+여탈+권’으로 이뤄진 말입니다.
이때 ‘생사(生死)’는 “삶과 죽음(사느냐 죽느냐)”을 뜻합니다. 또 ‘여탈(與奪)’은 “주는 일과 빼앗는 일”입니다. ‘권(權)’은 말 그대로 “권리”입니다.
즉 ‘생사여탈권’이라고 하면 “"사느냐 죽느냐, 주느냐 빼앗느냐의 권리"를 뜻하게 됩니다.
말꼴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느냐 빼앗느냐’(여탈)에는 ‘권리’라는 말이 붙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사느냐 죽느냐’(생사)에는 ‘권리’가 붙는 게 어색하지 않습니까? ‘사느냐 죽느냐’는 누구에게 행사하는 권리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리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권리’라는 말과 어울리려면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살리느냐 죽이느냐’가 돼야 합니다. 그런 말은 ‘생사’가 아니라 ‘생살’입니다.
역사 드라마 등에서도 “죽이고 살릴 사람의 이름을 적어 둔 명부”를 ‘살생부’ 또는 ‘생살부’라고 하지, ‘사생부’나 ‘생사부’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재미난 사실 하나는요. <표준국어대사전>에 ‘생사여탈’과 ‘생살여탈’이 같은 뜻으로 함께 올라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생살여탈’을 ‘생사여탈’로 잘못 쓰는 일이 많음을 살펴 ‘생사여탈’에 억지로 ‘생살여탈’의 의미를 갖다 붙인 것이죠.
그렇게 해놓고는 정말 많이 쓰이는 ‘생사여탈권’은 표제어로 올려놓지 않았습니다.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리와 주고 빼앗을 수 있는 권리”(전쟁터의 지휘관은 부하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게 된다)로는 오직 ‘생살여탈권’만 다루고 있습니다.
참 웃기는 풀이입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