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보면 “생물에서 새끼를 배지 않거나 열매를 맺지 않는 쪽의 성(性)”을 일컫는 ‘수’와 ‘숫’을 제대로 구분해 쓰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는 표준어규정 자체에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표준어규정 제7항은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한다”고 규정하며, ‘숫꿩(×) → 수꿩(○)’ ‘숫놈 → 수놈’ ‘숫소 → 수소’ 등으로 쓰도록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언중의 언어 현실을 너무 무시한 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소가스의 수소와 암소의 반대말(?) 수소가 같은 글꼴을 한다는 게 영 마뜩하지 않습니다. 숫놈을 수놈으로 쓰는 것도 아주 어색합니다.

게다가 이 조항 ‘다만2’에서는 “다음 단어의 접두사는 ‘숫’으로 한다”며 ‘숫쥐’ ‘숫양’ ‘숫염소’를 표준어로 삼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까닭으로 쥐와 양, 염소에게만 특혜(?)를 준 것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는 있습니다. ‘숫쥐’는 [수찌]로, ‘숫양’은 [순냥]으로, ‘숫염소’는 [순념소]로 소리가 난다는 거지요. 이것은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 이유가 됩니다. 뒷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ㄴ’음이 덧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수놈’을 [순놈]으로 소리 내는 사람도 있고, ‘수소’를 [수쏘]로 소리 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 이 말들도 당연히 ‘숫놈’이나 ‘숫소’로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숫잉어’나 ‘숫용’은 이렇게 써야 할지, 아니면 ‘수잉어’나 ‘수용’으로 써야 하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사전에도 표제어가 올라 있지 않고요.

아무튼 현재로서는 ▲양, 염소, 쥐 앞에서는 ‘숫’을 쓰고 ▲그 밖의 모든 것 앞에는 ‘수’로 쓰면 됩니다.

이 표준어규정의 ‘다만1’에서는 또 “다음 단어에서는 접두사 ‘수’ 다음에서 나는 거센소리를 인정한다. 접두사 ‘암’이 결합하는 경우에도 이에 준한다”라고 하면서 9가지의 거센소리를 인정했습니다.

‘숫강아지(×) → 수캉아지(○)’ ‘숫개 → 수캐’ ‘숫것 → 수컷’ ‘숫기와 → 수키와’ ‘숫닭 → 수탉’ ‘숫당나귀 → 수탕나귀’ ‘숫돼지 → 수퇘지’ ‘숫돌쩌귀 → 수톨쩌귀’ ‘숫병아리 → 수평아리’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왜 이들만 거센소리를 인정하는 거냐고요.

그럴 리가 없다고 믿지만, 들리는 말로는 1988년 표준어규정을 개정할 때 의견이 엇갈리는 말은 위원들의 거수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언중이 어떻게 쓰든 말든, 위원들이 자기 귀에 익은 말에만 손을 번쩍 들어 표준어 도장을 쾅쾅 찍어 줬다는 얘기죠.

아무튼 사람들은 대부분 ‘수펄’ ‘수코양이’ ‘수캐미’ ‘수커미’로 쓰는 말을 ‘수벌’ ‘수고양이’ ‘수개미’ ‘수거미’로 적어야 하는 현실이 짜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