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우리말 칼럼

우달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8.6.5
하지만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과, 내일을 위해 쉬어야 할 직장인과, 가족을 위해 집을 지켜야 하는 어머니들이 밤을 하얗게 새워 가며 ‘먹을거리의 주권’을 지키겠다고 이렇게 목 놓아 외치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귀신 씻나락 까 먹는 소리’만 합니다.
당선 직후 70%대에 육박하던 지지도가 10%대로 곤두박질쳤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 텐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국가 신뢰도’ 운운하며, 국민의 요구사항인 ‘전면 재협상’에는 손사래를 칩니다.
국가 신뢰도를 위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잡는다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고, 그래야 국가 신뢰도도 있는 것 아닙니까?
미국의 정치가들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자기네 축산농가의 이익을 위해 저렇게 죽어라 하고 ‘광우병 위험인자 부위’를 팔아먹으려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한반도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널브러지면 그때 가서 국제사회를 향해 미안해하는 척하며 고개를 숙이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당장은 자국 내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축산농가를 구제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죠.
미국인들은 현재 주로 20개월령 안팎의 쇠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소를 그때에 잡으면 미국의 소는 급격히 줄게 됩니다. 암소 한 마리가 두 마리의 새끼를 나야 지금의 마릿수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30개월령이 아니라 50개월령도 훌쩍 지나갑니다. 그런 소를, 미국인은 절대 먹지 않는 그런 소를 ‘한국인에게 특별히 값싸게 팔겠다’는 것이 미국의 속내입니다.
이처럼 미국민을 위하는 미국 행정부는 자국 국민들로부터는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양심이 있을 것이기에 무척 괴로울 것은 분명합니다. 밤마다 신께 용서를 구할지도 모릅니다.
‘신이여, 내 가족을 위해 남을 해하였나이다. 그들이 훗날 받을지 모를 고통이 염려스럽지만, 당장 죽어가는 내 가족을 위해 죄를 지었나이다. 용서하소서’라고요.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우리 정부의 관료와 집권당 정치인의 눈에는 국민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의 뇌리에는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국민’이란 단어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리도 천연덕스럽게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미국의 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손님이 물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가게주인이 물건을 골라주는 것이 올바른 상거래라고요? 그래야만 국가 신뢰도가 쌓인다고요?
정말 광우병 걸린 소가 웃을 일입니다.
사설이 좀 길었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어이가 없어, 어수선한 마음 추스르느라 그랬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오늘은 닭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닭과 관련해 잘못 쓰는 말도 꽤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가장 흔히 틀리는 말은 ‘닭 벼슬’일 듯합니다.
“베컴, 그가 하면 유행이 된다. ‘닭 벼슬에서 빡빡까지’”(일간스포츠, 2008.2.26.) “닭 벼슬이 파랗게 된다든지 하는 AI의 증상이 있다”(중앙일보, 2008.5.6.) 등의 예문에서 보듯이 ‘닭 벼슬’은 일반 언중은 물론 신문과 방송에도 흔히 쓰는 말입니다.
그러나 ‘벼슬’이라는 말에는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 또는 그런 일”이나 “어떤 기관이나 직장 따위에서 일정한 직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이외의 뜻은 없습니다. 닭하고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는 의미입니다.
앞의 예문들이 말하려고 한 “닭이나 새 따위의 이마 위에 세로로 붙은 살 조각”을 이르는 말은 ‘벼슬’ 아니라 ‘볏’입니다. ‘벼슬’은 ‘볏’을 이르는 충청, 경상 지역 방언입니다.
닭이나 새 따위가 먹는 것을 두고 ‘먹이’라고 일컫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먹이’라는 것이 모든 동물이 먹는 것인 만큼 쓰지 못할 까닭이 없을 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닭이나 새의 먹이”를 일컫는 말로는 ‘모이’가 따로 있습니다.
사자의 ‘입’이 닭에게는 ‘부리’이고, 사자의 ‘꼬리’가 닭에게는 ‘꽁지’이듯이 사자의 ‘먹이’가 닭에게는 ‘모이’입니다. 물론 다른 새들도 마찬가지죠.
닭으로 만드는 음식 중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 아들과 딸도 무척 좋아합니다. 이 음식을 시키면 백이면 백 집 모두 ‘후라이드 치킨’을 가져다줍니다. 포장지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후라이드’는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나는 말입니다. “닭고기에 밀가루, 양겨자 가루, 소금, 후추 따위를 묻혀 튀긴 요리”를 뜻하는 말은 ‘fried chicken’입니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배운 분은 아실 것입니다. ‘fried’가 절대로 [후라이드]로 소리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적을 수 없다는 것을요.
‘fried’를 [후라이드]라고 소리 내거나 적는 민족은 세계에서 딱 하나, 제 나라 글로는 남의 나라 말을 제대로 적지 못하는, 반쪽짜리 언어를 가진 일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말의 찌꺼기 탓인지 우리말에서 영어의 ‘f’를 ‘ㅎ’으로 소리 내고, 그렇게 적는 일이 흔합니다. ‘파이버’를 ‘화이바’로, ‘파일’을 ‘화일’로, ‘파이팅’을 ‘화이팅’으로, ‘(달걀) 프라이’를 ‘(달걀) 후라이’로 쓰는 것이 다 그런 예입니다. 하지만 ‘f’를 ‘ㅎ’로 적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왜냐고요? 그것이 지금의 외래어 표기 준칙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즐겨 드시는 ‘후르츠 칵테일(잘게 썬 과일에 양주나 주스를 부어서 만든 음료)’도 ‘프루트칵테일(fruit cocktail)’이 바른 표기입니다. 이 말은 아예 국어사전에까지 올라 있습니다.
아참, 앞의 ‘후라이드 치킨’도 ‘프라이드 치킨’으로 써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올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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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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