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달이
  1. 저자의 우리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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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국어사전을 보면 답답한 구석이 참 많습니다.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규정이 제 틀을 온전히 갖추지 못한 탓도 있지만, 사전을 만드는 이들의 게으름도 ‘부실한 국어사전’의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언중이 수십 년 간 널리 쓰는 말이 국어사전에 빠져 있거나 한번 잘못 오른 말이 수십 년 간 바뀌지 않는 일이 생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표제어를 다루는 기준이 너무 들쭉날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로 기대나 생각대로 잘되지 않은 지나간 사실에 대해 뉘우침이나 원망의 뜻을 나타내는 문장’에 쓰는 말로, “좀 더 일찍이”의 뜻을 가진 ‘진작’이 널리 쓰입니다.


“진작 올걸” “진작 그렇게 하지” “이제는 너무 늦었어. 진작 말할 것이지” “진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따위가 ‘진작’의 쓰임입니다.


이 ‘진작’과 똑같은 의미를 가진 한자말로 ‘진즉(趁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전들은 ‘진작’과 ‘진즉’을 같은 말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진즉’의 예문 또한 “이렇게 심하게 아픈 줄 알았더라면 진즉 병원에 가 볼 것을 그랬다” “진즉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을 그랬다고 후회스럽게 말을 하더라” “나는 진즉부터 학교에 나가고 있었다” 등 ‘진작’의 예문과 비슷한 표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즉’ 뒤에는 조사 ‘-에’를 붙여 “진즉에 온다는 것이 늦었다” 따위처럼 쓸 수 있다고 해 놓고서는 ‘진작에’는 절대 쓸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모릅니다. 정말 며느리도 모르고, 하늘도 땅도 모릅니다.


‘진작’이나 ‘진즉’은 모두 부사입니다. ‘부사는 활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억지로 갖다 붙이려 해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언중은 ‘진즉에’보다 ‘진작에’를 훨씬 많이 씁니다. 중학교 3학년생인 제 아들 녀석은 아예 ‘진즉’이라는 말은 듣지도, 써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표준국어대사전>은 ‘진즉’의 경우 ‘진즉에’를 쓸 수 있다고 예문을 달아 놓고, ‘진작에’에 대해서는 “진작의 잘못”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언중이 열에 아홉은 그렇게 쓰는 말에 대해서는 족쇄를 채워 놓고, 열에 한 명(국어사전을 만드는 데 관여한 사람?)만 쓰는 말만 인정하고 있는 국어사전들, 정말 ‘명박스럽습니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라 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저리도 큰소리 떵떵거리며 ‘진작에’는 쓰지 말라고 했으니, 우리로서는 ‘진작(진즉)’이나 ‘진즉에’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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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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