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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L
- 작성일
- 2023.4.30
오늘의 SF #1
- 글쓴이
- 김원영 외 20명
arte(아르테)
내가 다니는 회사는 부천에 있다. 회사에서 십 분쯤 걸어가면 11시 30분에 열어 3시에 문을 닫는 돈까스 가게가 있다. 회사 단지와 애매하게 떨어져 있는 탓인지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오픈시간에 맞춰 들어가 몇 개 없는 메뉴를 골라 주문을 하면 12시가 다 되어서야 음식이 나온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2~30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 번 항의를 받은 것인지 가게 벽에는 '문 즉시 조리를 시작해 나가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 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다른 때라면 밥을 언제 먹고 회사로 복귀하냐고 짜증이 났을 텐데, 책을 읽기 시작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책 한 권을 들고 가게로 향한다. 가는 길은 한적하니 좋다. 좌석이 널찍해 앉아 있기 좋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책을 읽다가 식사를 하고 추가로 음료를 시켜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책을 읽으면 이제 반 밖에 지나지 않은 하루가 벌써 보람차다.
이번 북클러버 도서는 <오늘의 SF>이지만, 정확히는 이 책에 실린 '인지공간'이라는 단편이 그 주인공이다.
'인지공간', '김초엽 작가'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의 SF> 라는 책에 수록된 단편이라는 말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SF라니. 전에 <숨> 을 읽었을 때 아, 역시 SF는 나랑 맞지 않는 장르구나. 싶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큰 기대 없이, 아니 오히려 걱정을 안고 책을 구매했다. 그나마 같은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인지공간' 단편 하나는 마음에 들겠지, 싶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아, 이거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까.
책을 들고 앞서 말한 돈까스 가게를 향했다. 늘 먹던 세트메뉴를 시키고 시간을 본 뒤 책을 펼쳤다. 서문을 읽는데 첫 페이지부터 익숙한 지명을 마주하고 반가웠다. <오늘의 SF>의 인트로는 3페이지 하고 한 페이지를 반도 채우지 못하는 짧은 글이다. 보통 서문에는 두루뭉실한 포부나 이 책에 담긴 의의가 얼마나 대단하고 가치있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웬걸. 시작부터 지친다는 말로 시작하더니 목차도 아닌데 갑자기 이 책에는 이런 것들이 실려있다는 말을 시작한다. 순서에 맞춰 여기엔 무엇이, 그 다음엔 무엇이, 그리고 그 다음엔… 이건 책을 위한 서문인가 글을 위한 서문인가. 그렇게 하나하나 늘어놓으며 이 글은 이렇게 저 글은 저렇게 보시라 안내해주더니 서문이 끝나버렸다.
이 담백한 퇴장에 감동하는 한 편 익숙한 오타쿠의 기운에 한 번 더 감격했다. 이 책이, 내가 얼마나 환상적인 기획을 했는지 보시라! 가 아니라 이걸 이렇게 먹어야 가장 재밌는데 왜 못 드시는 거예요, 이건 이거 먼저 먹고 그 다음으로 먹어야 해요. 하고 직접 쌈까지 싸서 입에 넣어주는 간절함을 보니 반드시 순서대로 글을 읽어야겠다는 오타쿠 동지로서의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건 내가 만들었던 <헌사>였다. 아니, 순서대로 봤을 때 가장 감동적이게끔 만들었는데, 왜 중간부터 빼 드시는거죠?!
결국 밥을 다 먹고 고민하다가 커피를 시켰다. 이건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줘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점심시간이 모자라 두 번에 나눠 읽어야 했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책을 산다면 한번 펼친 자리에서 다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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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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