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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비치에서
  1.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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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방금 떠나온 세계
글쓴이
김초엽 저
한겨레출판
평균
별점9.4 (112)
체실비치에서

김초엽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만났던 것은...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였다.



여기에 실렸던 작품이 '인지공간'이었으며, 이후 '우리가 빛의 속도록 갈 수 없다면'이란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단편들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공계 출신이어서일까, SF단편소설의 배경이 우선 눈에 들어왔고, SF적 상상력의 치밀함과 그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여운을 남겨주는 김초엽 작가님의 글들이 마음에 들었다.



SF소설을 표방하면서도 그 속에는 결국 인물들의 이야기와 세상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서 읽고 난 후에는 고민을 해보게 만드는 부분도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작가님의 장편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읽어왔던 단편소설들이 내 취향과 너무 맞았었기에 오히려 장편소설에 손을 뻗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소설집도 내게는 너무도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다.





 



 



'방금 떠나온 세계'는 총 7편의 단편소설을 묶어서 출간한 소설집이다.



이 중에서 '인지공간'은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이미 한 번 읽었던 작품이었다.





 



모든 작품들 역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즐겁게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이 책 또한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란 책을 통해서 김초엽 작가님의 글들에 빠져들었고, 이 책을 여러 사람에게 선물로 사주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두 책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또한 즐겁게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뿐이다.







책의 첫 번째 단편은 '최후의 라이오니'이다.



3420ED라는 문명이 파괴되고 기계들만이 남아 있는 행성.



이 행성을 조사하기 위한 로몬인 '나'와 '라이오니'를 기다리는 '셀'이라는 오퍼레이터 기계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서 불멸의 역사를 가졌던 행성과 그 행성의 붕괴 과정, 그리고 소멸되가는 행성을 통해 생존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고민해보게 한다. 결국 존재와 소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기계들이 간과했던 것은, 라이오니에게는 다른 생물이, 그리고 다른 생물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유기체의 존재 조건이었다. 기계들과 달리 인간은 유기체의 죽음 위에 삶을 구축한다. 거주구 내부의 공기, 물, 식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라이오니의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마리의 춤'이다'



시지각 이상증을 겪는 '모그'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중의 하나인 '마리'라는 인물은 '플루이드'라는 장치를 통해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일반인을 향한 테러를 감행한다. 하지만 나는 모그들의 테러보다는 마리가 만들어낸 플루이드라는 공간에서의 모그들의 새로운 소통방식에 더욱 눈에 들어왔으며,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보다는 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이런 세상은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플루이드에 관한 꿈을 꾼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목소리로 존재한다. 나는 제한된 감각을 가졌다. 나는 모그들이 하는 것만큼 풍부하게 그 세계를 감각할 수 없다. 하지만 제한된 감각으로, 애써 세계의 표면을 더듬으려 노력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로라'이다.



뇌 내의 신체지도와 실제 신체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불쾌감을 겪는 이에 관한 이야기. 로라는 세 번째 팔을 원했고 달았다. 그런 로라를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끝내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런 이들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지금의 세상에서도 우리와 다른 '차이'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 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네 번째 이야기는 '숨그림자'이다.



어떤 이유로 지하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원형인류의 후손들. 그들은 독자적으로 진화를 하여 후각신경이 발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소통을 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원형인류인 '조안'과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단희'의 이야기이다. 소통이라는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주는 소설이었다. 기억과 감정은 어떻게 전달될고 기억될까. 그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남는다.





 



'그러나 이제 단희에게도 입자들은 의미라기보다는 냄새에 가까워졌다. 둔감해진 후각기관은 한때 조안이 했던 것처럼, 공기 중에서 어떤 기억과 감정을 읽었다. 입자들이 단희를 그 시절로 데려갔다. 의미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들에게로. 추상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너무 구체적이어서,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장면으로. 조안이 말했던 그 공간들로.'





 



다섯 번째 소설은 '오래된 협약'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지구인이 정착한 행성이지만, 지구인에 비해 수명이 매우 짧아 대부분 25세 전후까지 밖에 살지 못하는 행성 벨라타. 이곳에서 나름의 문명을 만들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지구인들이 방문한다. 모든 것이 멈춘듯 느리게 흘러가는 이 행성에서 노아가 이정이라는 지구인이 잠시 머물렀던 시기를 회상한다. 지구인들은 벨라타 행성 주민이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제인 노아도 알고 있다. 신은 없으며,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하지만 벨라타인들은 그럴 수 없다. 이 행성은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잠시 내어준 것을 알기에.





 



'우리의 긴 삶에 비하면 너희의 삶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행성의 시간을 나누어 줄게.'





 



여섯 번째 소설은 '인지공간'이다'.



이미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으로 한 번 읽었던 단편. 책의 제목도 '인지공간'의 문장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초엽 작가님의 선택은 '인지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인지공간이라는 공동지식구역. 이를 통해 사람들은 기억을 저장하고 기억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우리에게도 소중한 개별기억들과 남겨야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기억과 정보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인가. 개별적인 존재와 집단과의 고민 등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밤하늘에는 별이 너무 많아서 우리의 인지 공간은 저 별들을 모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저 별들을 나누어 담는다면 총체적인 우주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침내 이 행성 바깥의 우주를 온전히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그곳을 향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소설은 '캐빈 방정식'이다.



시공간 차원의 거품. 물리학자 유현화는 이것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그리고 사고로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달라져버리게 된다. 그녀의 동생은 언니의 부탁으로 대관람차의 캐빈에 올라탄다. 그리고 시공간의 차원의 거품을 느껴보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언니와 함께 올라탄 캐빈에서 드디어 시공간 차원의 거품을 느끼게 된다. 시공간 차원이 다르게 흐르는 두 사람. 결국은 서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그대로 인정하고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여러 단편들 중 가장 어렵게 다가온 소설은 이 마지막 단편이었던 것 같다. 시공간을 다르게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어떻게 해야할까...





 



'언니가 옳았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 세계는 거품 방정식의 해로 가득 차 있다.'













 



김초엽 작가님의 SF단편소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와 다른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어쩌면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을수도...) 그리고 이 소재들은 현실 세계의 배경에서도 그대로 통하는 이야기라고 본다. 소설을 읽다보면 지금의 세상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이와 같은 소재들을 다루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들은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지만, 읽고 난 후에는 생각의 고민들을 던져주는 그런 작품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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