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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 작성일
- 2018.7.28
이것이 중국의 역사다 2
- 글쓴이
- 홍이 저
애플북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알려면 역시 중국이란 나라의 지난 역사를 훑어 보는 방법이 (설령 돌아기는 길이라 쳐도) 가장 빠른 경로일 수 있습니다. 이 2권은 북송 시대부터 그 머나먼 자취의 첫걸음을 삼는군요.
5대 10국의 분열기 동안 중국은 그 핵심 영토의 일부를 거란족에게 상납하는 등 적잖은 치욕을 겪었습니다. 1권의 후반부에서 잘 보았듯 통일 후 그들은 반드시 옛 숙적에게 복수를 하려 드는 습성이 있는데, 수, 당 제국기에는 고구려가 그 대상이었습니다. 고구려가 망한 지 삼백 년이 지났으므로 이번에는 거란이 타깃이었죠. 거란 역시 요서 일대에서 대대적인 흥기를 탄지 불과 몇십년 되지도 않았으므로 둘의 일합이 참으로 볼만했겠는데, 천하에 이름 높던 조광윤(아마, 무모하게 병력을 일으킨 수 양제보다 개인적 역량이 훨씬 뛰어났을)이라도 이 거란족의 승세가 워낙 욱일승천이라 별 방법이 없었나 봅니다.
송 태종 조광의는 창업주의 동생이었는데, 거란의 새 주인이 나이가 어리다는 소문을 듣고 함부로 이를 쳤다가 큰 망신을 당하고 제 자리로 주저앉습니다. 이보다 700년 가까이 뒤, 강희제가 새로 황좌에 올랐을 때 이 어린 임금(대략 이 시기의 요 성종과 나이가 비슷합니다)의 속을 떠보는 의도에서 "번왕의 자리를 물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는 주청을 올리죠. 놀랍게도 어린 왕은 "전혀 사양치 않을 테니 그리 하라"라는 말로 비답을 내립니다. 유목 민족의 어린 군주는 나이보다 훨씬 영특하고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성향이 어린 시절부터 일찍 계발되어 있는 수가 많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불과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나잇값도 못하고 노망에 가까운 SF질을 하고 있는, 결혼과 육아, 인생에 모두 실패한 열등감과 망상의 결집체인 닭대가리의 한심한 막장짓을 보면 이건 뭐...
저자는 송나라의 초기 역사에 대해 다소 낭만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송 태종이 자신의 형에 대해 도끼를 휘두른 그림자가 비쳤다는 루머, 황태후와 조보가 조광의와 뜻을 함께 모아 사실상 황위의 찬탈을 완수했다는 불편한 시각 등이 모두 분명한 기록이 없어 신비한 수수께끼에 싸였다는 건데, 어디 이것이 송나라의 초기 역사에만 한정된 사정이겠습니까.
문단 중에는 다소 황당한 서술도 보입니다. 즉 왜국(倭國)에서 아름다운 용모를 한 처자를 선발하여 송나라 사람들의 씨를 받아갔다는 건데, 이를 두고 이차대전 후 일부 여성들의 반(半) 매춘 행위와 비견하며 "인종 개량"의 의도가 다분했다는 해석입니다. 이런 건 근거가 뚜렷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뚤어진 나치 식의 자국중심 사고가 내비춰져 우려감마저 자아냅니다. 과연 같은 쌀밥을 먹고자란 동아시아인들 사이에서 무슨 인종상의 우월요소(그런 건 애시당초 누구에게도 없습니다)를 배양받겠다고 그런 일을 벌였겠습니까. 단지 일본 특유의 미개한 족외혼 풍습이 일부 잔존한 해프닝이었겠죠. 이런 사고가 확장되면 과거 한반도 왕조의 공녀 상신이라든가 하는 쪽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일본놈들이 니네 반도에서는 이러지 않지 않았느냐(당시는 고려 시대)"는 식으로 나오면 참 답이 없어집니다.
저자는 교묘하게 "송나라 시절이 중국에서 (오히려) 가장 매력적인 시대였다"는 외국 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이민족에게 처참히 농락당한 이 시기마저도 중국의 긍지를 잃지 않았다는 식으로 논지를 전개합니다(또, 그래서 일본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인종 개량 작업"에 나섰다는 식으로 맥락을 연결합니다). 우선 GDP가 사상 최고의 성장세를 보였으며, 농산물의 생산성, 화약의 발명 등 경제의 활력이 미증유의 수준이었다는 점을 거론합니다. 확실히, 민생 안정에 성공한 시절이 그 어떤 군사상의 성과보다도 더 전면에 내세울 만한 긍지요 자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단 이것이 중국이라는 체제, 중앙 정부의 미덕으로 돌려야 할 일인지, 아니면 약체 정부 하에서 오히려 민간이 덜 간섭 받고 덜 착취 당한 덕에 여태 없던 창의와 의욕을 불러일으킨 산물인지는 더 생각이 필요합니다. 싱가포르라든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화교 등이 어째서 남방 이민 후에야 거대한 상업,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고 전에 없던 부를 향유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은 자명합니다.
다만 저자가, 원대에 이어 명나라 시절의 대 호황을 거론하며 더글라스 노스의 말을 인용한 의도는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창의성, 자본 축적, 교육 등은 경제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 문제는 효율적인 경제 조직이다..(p181)" 14세기 랭커스터 왕조에서 잉글랜드는 거의 3000명에 달하는 법대생을 보유했는데, 저자는 이 사실과 리우종징(유종경)의 말 "법적 권한을 지니고 부를 못 지닌 자는 둘 다를 결국 손에 쥘 수 있지만, 반대인 자는 결국 가졌던 부마저 잃을 수 있다"를 나란히 놓고, 역사의 발전이 결국 어떤 제도적 기반에서 출발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 나름 심오한 결론을 내립니다.
18세기의 기업가 에이브러햄 다비의 경우 초창기에는 온갖 갈취와 부담에 시달렸지만 영국 역사가 결국 산업 자본가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자 그로 대표되는 신흥 부유층이 크게 활기를 얻어 결국 대영제국의 전성기에 돌입합니다. 반면 명 제국 소주(쉬저우)의 거부 심만삼은 아무 제도적 보장이 없는 사회에서 위태한 경로를 밟다 비참하게 몰락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개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시스템 위주의 문명 간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저자가 거론한 대로, 송나라 역시 개인의 창의와 불꽃 같은 혁신 의지 덕분에 유례 없는 번영을 누리던 체제였습니다. 왜 이런 멋진 번영의 상서로운 흐름이 이후 연속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뻔합니다.
현대의 중국 역시 의욕과 능력 있는 산업 자본가를 마구 육성해 댈 때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경제성장의 풍성한 과실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지금은 벌써 "뉴 노멀"을 걱정하며, 아직도 여전히 취약한 산업 기반이 그예 미국의 관세 공세 약간에 벌써 핵심 분야가 붕괴되기 직전입니다. 정치가 경제를 앞서나가면 결국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만 낳습니다. 개개인의 자발적 의욕과 창의가 모여 이루는 결실은 그 어떤 엘리트의 계획 경제 시스템으로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중국의 지난 오천년 역사가 이 진리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유익한 독서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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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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