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경영/자기계발

김진철
- 작성일
- 2018.12.27
마화텅과 텐센트 제국
- 글쓴이
- 린쥔,장위저우 공저/김신디 역
린
백 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기회다. 시간은 결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는
마화텅이 학생 시절,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마화텅은 물론 우리도 잘 알듯
"텐센트"의 창업자이며 현재도 중국 안 최고의 기업으로 이를 이끄는 CEO죠. 아이들에게, "기회"로 잡으라며 그 교사가 주시했던
것은 당시 막 경제적 도약을 일구던 중국에서, 누구나 기업을 일구고 부자가 될 수 있는 문이 열리던 순간이었습니다. "강물에
지천으로 널린 게 미꾸라지지만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과는
달리 당시의 중국은 관료나 당원으로 출세하는 길을 젊은이의 유일한 비전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책에도 잘 나와 있듯, 능력 있고
뱃심 좋은 청년들은, 벤처나 스타트업을 통해 자신의 포텐셜을 십분 발휘하여, 향후 몇 십 년을 향유할 수 있는 부의 장악 그
기회가 눈 앞에 다가왔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챘습니다.
저자
우샤오보의 말에 따르면, 중국은 이 당시 마화텅 같은 일류 인재, 사업가들에 의해 웅비할 조건이 잘 갖추어진 편이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마화텅 같은 이들이 청소년기였을 때 교육열도 극성스럽게 불었고, 위의 예화에서도 나오듯 교육자들이 적절한
비전과 미래관을 아이들에게 잘 불어넣기도 했고, 무엇보다 잘 교육 받고 넉넉한 중산층(이런 계층이 이미 전 세대에 형성되어 있어야
하죠)에서 교육이나 지식, 자본 면에서 유리한 출발점을 가진 세대가 출현하여, 맨땅에 헤딩 식의 무모한 도전이 아닌, 체계적이고
세련된 창업에 도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특히나 이런 지식기반 산업이라면 더욱요.
마화텅은
불리한 여건을 딛고 일어난 입지전적 성공 유형이라기보다, 신생 개발도상국에 가까웠던 당시 중국이 차세대 촉망 받는 주자들로
눈여겨 본 후보군 중 가장 눈부신 성공을 거둔 "총아"라고 봐야겠습니다. 한국 역시, 예컨대 정주영씨 같은 맨손에서 일어선
거인보다, 영리하고 기민한 사업 전술로 한순간에 일어서려는 창업형 젊은 기업가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이런 유형이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하죠. 물론 무주공산이었던 거대한 시장은 현재 선발 주자들이 장악한 확고한 이점 때문에 진입이 어렵지만, 대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장이 다시 개척되는 요즘이기도 하기에, 전략과 기술, 첨단 지식으로 무장하여 거대 기업을
일군 그의 인생과 성취는 여러 모로 벤치마킹의 대상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텅쉰(騰迅)" 같은 상표명 등록도 그의 부친이 직접 나서 마친 것이라고 하죠. 원래는 네 개의 후보를 염두에 뒀다고
합니다. 헌데 앞의 세 개는 이미 선점자가 있거나 자격요건 미달이고(동일 영역에서 범용성 칭호는 특정인에게 독점 불가하죠),
마화텅 본인은 자기 이름 글자가 너무 빤히 드러나 싫었다고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네요. 일본이나 서양에선 대개 상호를 기업가
본인의 이름에서 따옵니다. 반면 우리나 중국은 다른 추상적 가치를 담거나, 어감이 좋은 단어를 따는 일이 더 일반적이죠.
이
책뿐 아니라 다른 마화텅, 텐센트 관련 서적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이 창업자는 무슨 록펠러라 밴더빌트, 한국의 1세대 재벌
총수들처럼 거칠고 무자비하며 과단성 있는 전략으로 자신의 제국을 일군 타입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그저 평범한 학생 같은
타입이었는데,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자신의 유일한 자산이라 할 전공 지식을 적실하게 활용할 줄 알았던 게 성공 비결이니,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그의 궤적을 유심히 살필 필요가 더 커집니다. 저런 일화에서도 어떤 비범한 기상이나 비장한(때로는 슬프기까지
한 - 출발점이 다른 인생이, 이런 걸 배워 따라하기란 좀 어렵죠) 성취 동기보다는,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그렇다고
마냥 그들의 성장 과정이 탄탄대로였던 건 아닙니다. 1990년대말~ 2000년대 초에는 이른바 닷컴 버블이 전세계를 휩쓸
때였습니다. 버블이 그 당시에 이미 버블인 줄 알면 우려할 필요가 없는데, 당시에는 회사 하나만 만들면 마냥 잘나갈 줄 알고,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 안 된 채 위험한 투자가 횡행하던 시절이기도 하죠. 난감한 건 당시 기준으로, 대체 어떤 회사가 우량기업인지
알 방도가 없었던 겁니다. 저자 우샤오보 역시, 재무제표만 보고서는 텐센트의 가치를 측정할 방법이 없었고, 심지어 지금도
그렇다고 합니다. 지금의 텐센트에서 여전히 구조적 부실 요소가 발견된다는 게 아니라, 종래의 보수적 자산 측정 기준으로는 이
기업의 창창한 미래가치를 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20년 전이었으면 사상누각 같은(같지도 못했을 듯) 깡통 기업 이상이 아인 듯
보였겠죠. 지식기반 기업은 고유의 특성을 감안해야 합니다만, 회계기준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그 나름의 소명이 따로 있으니 어렵긴
합니다.
투자 확보도 어렵고, 경쟁은
경쟁대로 살인적 치열함을 보였습니다. 한국도 그 무렵에 PC방(당시에는 게임방이라고 했죠) 열풍이 불었는데, 메신저라는 상품의
특성상 유저들에게 점유율을 높이는 게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용자들이 찾는 가게에는, 업체마다 자사 메신저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크게 붙여 두고, 경쟁자 측에서는 그걸 찢고 자신의 것을 다시 게시하는 등 추잡한 행태가 속출했죠. 중국은
당시만 해도 경제 특구라 알려진 여러 도시에서조차, 비루하고 초라한 주거지가 밀집해 있었을 뿐입니다. 이런 밑바닥 같은 곳에서
게임 따위에 몰두하는 어린, 젊은 고객에게 자사 브랜드를 인식시키려는 업체들의 경쟁은 가히 살인적이었습니다. 오늘의 텐센트는 이런
지저분한 과정도 밟아 가며 탄생했으며, 지식기반 산업이라 하여 결코 우아한 길만 밟은 것이 아닙니다. 텐센트가 결국 이
바닥시장을 평정한 방법에 대해서도 책에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감탄스럽다기보단, 약간 씁쓸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텐센트가
개발한 메신저의 이름을 따 "QQ인"으로 명명된 신세대는, 그 전과는 다른 유대감과 공통점을 지닙니다. 중국인들은 만날 때마다
"같은 중국인"이라는 정체감으로 바로 뭉치지는 않습니다. "어느 지역(혹은 省) 출신인지?"를 반드시 묻고, 동향이라야 비로소
일체감을 드러내죠. 이 역시 장기적으로는 중국이란 국가의 통일성을 저해하는 요인이었습니다. QQ에서는 지역을 안 따집니다. 고유의
표현 양식으로 금세 하나가 되고(물론 인터넷 커뮤니티 어디서건 벌어지듯 다툼도 한번 벌어졌다 하면 장난 아니죠), 깊이는 없으나
톡톡 튀는 감성으로 각자의 영혼 빛깔을 표현합니다. 방송 등이 표준 관화를 각 지역에 보급하여 상당수가 북경어를 구사하게 돕듯,
이 메신저는 어느새 전 중국인을 QQ인이라는 울타리에 다시 묶어 놓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도(마 회장이야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으나) 의미심장한 발걸음입니다.
사명은
"루슨트 테크놀로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스스로 털어놓습니다. 여기는 모뎀 만드는 회사로 당시 유저들 사이에 인지도가 꽤
높았죠(또 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라든가). 초고속망이 아직은 도입 안 되었던 때라 당시만 해도 친숙한 상표였습니다. 텐센트는 좌우
대칭이 구조의 특징인데, 한국도 아이들 이름을 한자로 지을 때 좌우대칭이 되는 형태의 글자를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아시아인
공통의 습성이랄까 기호인데, 단 마화텅 본인은 "당시의 유행"으로 정리하는군요.
중요한
건 2003년(마화텅이라기보다는 저자 우샤오보의 견해입니다)을 놓고, 글로벌 추세(저자는 아직도 "세계"와 중국을 구별하는데, 그
공산당 지도자들이 이미 G2를 운위하며 과장된 자신감을 피력하는 것과는 구별되는 신중함, 혹은 "겸손"이겠습니다)와 중국의
경향성이 가지를 치며 갈라선 시점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이때만 해도 세계(라곤 하나 사실상 미국이죠. 제리 양의 야후도
당연 미국 기업이고)의 앞선 추세를 모방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중국의 시장과 대중 취향에 맞는 모델,
상품을 개발하여 널리 어필했고, 아울러 내부 경영 시스템도 독자적인 기법에 눈을 떠, 오히려 트렌드를 선도하는 면모까지 갖추기
시작했다는 소립니다. 이게 IT 기업에 한정된 진단은 꼭 아닐 것입니다.
저자는
존 갤브레이스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과 서유럽을 보는 눈으로 중국이나 일본을 바라본다면, 절반은 오류이고 절반은
오해이다."라며, 오로지 중국 시장에서만 통할 수 있었고, 중국 기업가만이 꿰뚫을 수 있었던 독특한 전략, 그리고 그를 통한
폭발적인 성장 과정을 지적합니다.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잘 소개된, MS나 페이스북 등과의 혈전 스토리를 다루며
결론적으로 요악한 문장인데, 이게 이제 세계 시장을 선도할 표준으로 자리할지, 그렇지 않고 "중국에만 갇힌 폐쇄 트렌드"가 될지는
지켜 봐야 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구 피처폰 시장에서 삼성, 현대, 한화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기업이
이후 세계 시장에서도 선전했습니다. 중국에서 확실히 이긴 텐센트(혹은 그 후의 어떤 기업이라도), 나머지 60억이 사는 다른
시장들에서도 이 자산을 바탕으로 승자로 도약할까요?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해도, 워낙 중국이라는 단일 시장(과거에는 이런 개념을
인정 안 했으나, 저 QQ의 성공 사례를 보면 적어도 "초유의 케이스"를 새로 정립해야겠네요)에서 큰 기업이다 보니 미래 전도에 별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14억만 다 먹어도(현재 그러고 있고요) 그게 어디겠습니까.
저자
우샤오보는 이런 경영서를 쓰면서도 꼭 철학, 인문 담론을 끼워 넣는 습관이 우리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죠. 1장에서는 자끄
데리다의 해체주의 담론이 살짝 등장하더니, 12장에서는 바흐진의 "불가종결성"을 거론합니다. 현재는 텐센트가 메신저, 통신판매,
심지어 포털의 장벽까지 넘보는 강자로 자리매김했으나, 이 추세가 언제까지 갈 것이며, 치열한 인터넷 대전(이 세계는 현실과
분리된, 독자적인 생존 법칙과 질서가 존재한다는 감상적인 저자의 평가가 인상적이었습니다)이 누구를 최종 승자로 결정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제국의 쟁패는
덕망과 과단성과 지혜를 갖춘 패권자가, 중원 통일을 위한 마지막 한 수를 둔 후 자신의 혈육에게 통치 시스템을 물려주는 게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 업계에서는(제 생각엔, 오프라인이라 한들 이제는 다를 바 없는듯요), "싸움의 끝, 영업의 종결"이란
단계는 이 새로운 양상의 "영원한 전투"에서 애초에 부재하다는 뜻입니다. 멈추고 안주하는 그 순간이 바로 시장에서 도태되는
지점이라는 걸, 우샤오보의 개성적이고 날카로운 필치, 그리고 평범하게만 보이는 마화텅 회장의 날카로운 안광은 이미 꿰뚫고, 이를
독자들에게 차분히 깨우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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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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