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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 작성일
- 2019.7.15
칼뱅은 정말 제네바의 학살자인가?
- 글쓴이
- 정요한 저
세움북스
어찌보면 후스 등의 선구자가 고난 끝에 미리 닦이 놓은 개혁의 행로를 (상대적으로) 편안히 걸은 듯도 하지만, 칼뱅 역시 그리 녹록한 경로를 밟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매 순간이 갈등이요 투쟁이었던 그런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 칼뱅을 묘파한 서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한국어로 된 저작 중에는 장수민 著 <존 칼빈 - 개혁교회 창시자>가 내용의 망라성 면에서 저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9년 전에 나온 책인데 페이지 수가 1200이 넘습니다. 그 외에도 브루스 고든의 깔끔한 역작 <칼뱅>이 작년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는데 이 역시 700쪽이 넘습니다. 다음 주쯤 완독하고 리뷰를 올릴 계획입니다.
제네바에서 칼뱅과 세르베투스가 격렬히 대립한 사실은 아주 유명합니다. 대략 이십 년 전 어느 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어느 단편에서도 (특이하게) 이 사건을 소재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한국 작가가 지구 반대편의 역사 한 자락을 골라 극화하는 사례는 예상 외로 그리 드물지 않아서, 예컨대 김성한의 <바비도>라든가 동리의 <사반의 십자가>, 그 외 조성기씨나 이문열씨의 이런저런 화제작 등이 있죠. 여튼 저 소설에서는 장 칼뱅을 마치 이란의 신정 정치 지도자(아야툴라)처럼 묘사하는데, 이런 이미지는 그리 낯선 것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것도 사실 없긴 합니다. 물론 이 책처럼 그런 살벌한 "이미지"에 대한 대찬 반론도 설득력 있게 제안되어들 왔습니다.
일단 스위스라는 나라가 연방 체제로 구성되어 있고, 오스트리아나 프랑스 등 주변의 강국으로부터 독립과 자존을 위협 받던 중 필사적으로 저항한 끝에 세워진, 대단히 독특한 역사를 지닌 곳이라는 점을 좀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의 권위를 배척하고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 고장의 풍토와, 물신주의 배금주의에 찌든 기성 교회의 폐단을 혁파하려는 "종교 개혁"의 기치만큼 서로 잘 어울리는 게 또 없었을 듯합니다. 제네바는 신흥 중산층, 학자, 상인 등에게 일종의 해방구와도 같았으며, 다만 성장기 내내 비교적 유복한 환경의 혜택을 받았던 장 칼뱅 같은 이가 구태여 이런 가시밭길을 걷게 된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합니다. 물론 이 역시 개혁교회 고유의 교의인 "선택"과 "예정"으로 설명 가능하겠죠.
절대적으로 타락한 인간 존재가 구원 받을 길은, 그저 필멸의 피조물이 벌이는 미미한 버둥거림으로는 그 출구 자체가 열릴 가망이 전무하고, 오로지 은총, 신의 은사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칼뱅의 가르침은 사실 약간의 삭막함마저 풍깁니다. 그러나 이처럼 선명하게 제시된 교의가, 정말로 유일신, 절대자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 있어 논리적 정합성을 드러낸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파가 칼뱅의 이런 도그마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여튼 이 책은, "이단자" 세르베투스를 화형대에 올린 책임자라는 (적잖이 부당한) 오명을 칼뱅으로부터 벗기기 위해, 1차 사료 중심으로 치밀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상은 어느 한편의 말만 들어서는 올바른 구도로 보이기 힘든 법이므로, 독자는 가능한 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냉철한 이성으로 양측의 주장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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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