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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 작성일
- 2019.8.22
내일은 발명왕 28
- 글쓴이
- 곰돌이 co. 글/홍종현 그림
미래엔아이세움
조지 스티븐슨은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분이죠. 증기기관 자체를 발명한 분은 제임스 와트고요.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봐야 한다" 이런 끈끈한 근성은 발명왕 토머스 앨버 에디슨의 인생과 성공담에서도 발견되는데요. 서양 과학과 기술의 발달사는 얼핏 보아 깔끔하게, 이론과 정제된 실험 속에서 순수 연역적 방법으로만 결론이 도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무수한 "삽질"과 "헛발질"의 연속, 그 실패를 자양으로 삼아 고난 끝에 얻어낸 귀납적 결실입니다. 이 두 분, 아니 세 분 다 앵글로색슨의 혈통이라는 데에도 관심이 쏠리는 대목입니다. 몸소 실패도 겪어 보고, 다양한 시행 착오를 일일이 체크하지 않고선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형체를 띤 성과가 나오기 힘든 법입니다. 그렇지 않고 순수 사유의 힘만으로 세계를 바꿔 놓은 과학자라면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인슈타인 등을 들 수 있겠죠. 후자가 더 힘들고 근본적인 성격의 업적이지만, 이런 건 평범한 사람이 흉내낼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노력이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에선 다르죠.
페니실린의 발견은 "실수가 큰 업적으로 이어진 드라마틱한 사례"로 인구에 널리, 그리고 길이 회자됩니다. 초등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듯(저희 때에는 그랬습니다). 이른바 페니실륨노타튬(끝말잇기 게임에 왓다죠 -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지금까지 안 잊혀지네요)을 발견한 건 사실 항생제의 합성이 본래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실수를 통해 위대한 성취로 이어지는 건 그저 행운의 산물이 아니라, 인류와 과학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라도 헌신하고 말겠다는 치밀하고 성실한 집념이 따라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행운이란 결국 자격 있고 준비된 이에게 찾아 주는 법이니 말입니다. 다만 처칠과의 일화는, 그 역사성이 확실히 검증된 게 아니며, 많은 사가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최초의 휴대폰 창시자라면 꽤 우리 시대와 가깝겠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마틴 쿠퍼는 2차 대전에도 참전했던 노인입니다. 이런 분이 아직 생존해 계신 것도 놀라울 정도죠. 오래오래 사셔서 모바일 기기가 어디까지 진화하는지 웬만한 phase는 다 보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저도 며칠 전에 백화점에서 새 폰을 사서 지금 만지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처럼 휴대폰이란 예컨대 증권 시세를 쫓는 등 생업의 도구, 긴급한 연락을 취하는 생활 필수품 외에도 삶의 잔잔한 기쁨을 소유자에게 안겨 주는 고마운 존재죠. 며칠 전 어떤 영화를 보는데 "난 아직도 무선 통신이 최고라고 생각해. 지구가 멸망해도 전파는 여전히 돌아다니지 않겠어?"라는 대사가 귀에 들어오더군요. 백 번 맞는 말이긴 하나 우리 인간이 유한한 생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자아실현은 문명의 바탕 위에서 꿈꾸거나 손 안에 넣는 것들입니다. 마틴 쿠퍼의 일생은 현대인이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다 말하지 못했다." 마르코 폴로의 시절이라면 서유럽과 중국 사이의 문명 격차가 너무나 클 때라, 어지간히 교육을 받은(자신의 성장 환경에서 가능한 수준의) 그로서도 지금 눈 앞에 무엇이 펼쳐지고 있는지 정확한 인지가 어려웠을 겁니다. 야만인에게 문명을 갑자기 노출시켜도, 그 혜택을 누리기는커녕 그 제한된 두뇌의 프레임에 무엇을 수용하는 작업조차 벅찰 뿐이니 말입니다. 본 것의 절반도 말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존재하던 것의 절반도 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마르코 폴로에게 다만 중국인들, 몽골인 정복자들이 감탄한 건, 그 열악한 장비로 오로지 모험심, 이윤 추구욕 하나에 기대어 먼 동방까지 항해와 육상로로 찾아올 마음을 먹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근 6백년이 지나 청말의 어느 황제도 말했듯, "짐이 다스리는 땅에는 안 나는 물산이 없도다"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표현이었죠. 하지만 정말 한 푼어치의 추가 수요도, 그들 서양 상인들이 유발하지 않았겠습니까? 현실이 비록 풍족하다 해도(평민들에겐 해당 사항 없죠) 그 자리에 혁신 없이 안주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수치스럽게도 그대로 증명해 보인 셈이었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이런 의미에서, 아득한 예전 모험심이 개인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이익과 자부심이 어느 수준까지 달할 수 있는지 잘 보여 준 위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산강장팔의 <덕천가강>에도 "남만인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먼 곳에서 목숨을 걸고 배로 찾아온 게 어디인가?'란 대사가 나오죠. 아, 하긴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 출신이긴 하나 저 북유럽의 먼 혈통이 좀 섞인 베네치아인이므로 남만인(ㅋ)의 범주에는 넣기 힘들지도 모르겠군요.
루 게릭은 베이브 루스와는 달리 버젓한 중산층 출신이고, 대학까지 나온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엘리트의 배경을 지닌 야구선수였습니다. 루 게릭이 근육 소실증에 걸려 달리지도 못하고, 그 강타자가 배트에 힘도 못 싣고 툭 떨어지는 플라이볼을 치는 걸 보며 팬들은 수근대었지만, 그가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으며 그라운드를 돌 때 사람들은 비로소 진정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죠. 이처럼 평소의 인격이 성실하고 모범적이어야 순도 높은 명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운동에서의 성취와 실제의 인격이 조화로운 곡선으로 그라운드에 공명을 일으킨 위대한 플레이어, 이런 사람을 보고서 꼬마 팬들도 스포츠의 치열한 승부 그 이상의 영감과 감흥을 어린 정신에 새기고 성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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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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