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BN 2002575002500

범우사르비아문고 시리즈 중에는 이처럼 원작 소설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갖고 만든 영화의 대본을 바탕으로 픽션을 새로 구성하여 펴낸 작품들이 몇 있습니다. 1976년 큰 히트를 기록했고 실베스터 스탤론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 영화 <록키>는 주연, 각본을 모두 스탤론이 맡았고 감독만 존 아빌드센을 따로 기용하여 만들었습니다. 

다분히 통속적이지만 스탤론의 설득력 있는 연기, 시대 분위기에의 적절한 편승 덕에 큰 인기를 끌었고, 빌 콘티의 그 전설적인 테마 음악도 흥행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됩니다. 록키 발보아는 그 이름을 전설적인 복서 로키 마르시아노에게서 따 왔다고 나오는데, 이 영화가 워낙 큰 성공을 거둔 나머지, 우리 시대에는 (어지간한 복싱 팬이 아니라면) 실존 인물 마르시아노보다 가상의 캐릭터 발보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둘 다 이탈리아계이기도 합니다. 

스탤론의 기획과 각본, 주연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워낙 유명하지만 실존 인물 로키 마르시아노의 생을 주제로 만든 다른 영화도 따로 있습니다. 

사실 극중의 록키는 본받을 점이 그리 많지 않은 인물입니다. 가난하다고 모두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닌데도 그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이 살곤 하는 경로에서 크게 이탈한, 한심한 생을 삽니다. 그런 록키를 마음에 둔 여인이 세상에 있다는 것도 놀라우며, 록키의 위대한(?) 점은 그 여인, 에이드리언에게 최소한의 고마움을 느낄 줄 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천성은 착하고 여인의 사랑까지 얻은 후 록키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뭔지 한 번 정도는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여기에, 그의 자질을 알아 보고 가장 알맞은 트레이닝을 맡아 준 스승 미키 골드밀의 기여가 더해집니다. 여인도 여인이지만 이런 위대한 스승이 없었다면 록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뒷골목의 하잘것없는 인생으로 일관했을 것입니다. 

영화는 1975년작이지만 그보다 늦은 시기에 실제로 이런 가망 없는 인생을 어려서부터 거두어 키워 위대한 세계 챔피언으로 빚어낸 스승이 진짜로 있었는데 커스 다마토라는 트레이너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마이크 타이슨이라는 챔피언은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흔히 "핵주먹"으로 알려져 있지만 F=ma의 법칙이 엄연히 작동하는 물리계에서 그처럼 체구가 작은 이가 헤비급으로 성공하긴 힘듭니다. 타이슨에게 가장 맞는 스타일을 개발해 장착해 주었기에 세계를 제패한,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강자가 출현한 것입니다. 

줄거리는 대단히 통속적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꿈과 욕망, 불완전하기에 더욱 현실적인 성공 스토리를 다뤘기에 영화와 스토리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환영 받습니다. 사실 이 시리즈에 이런 책이 끼어든다는 자체가 좀 특이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겠거니 하며 묘한 향취를 느끼며 읽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