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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 작성일
- 2020.11.30
상법강의 (하)
- 글쓴이
- 정찬형 저
박영사
스승 정희철 교수님과 수제자(?) 정찬형 교수님 두 분 공저로 되어 있는 이 책은, 거의 출간과 동시에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앞 리뷰에도 적었지만, 저는 책을 고를 때 디자인 등 외관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인데요. 이 책 역시 법서치곤, 예를 들어 바탕색을 (천편일률적인 흰색이 아닌) 연황록색으로 처리했다든가, 본문에서 저자(들) 의도상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든가 하는 점이, 당시 시중에 나온 다른 법서들(상법 분야 뿐 아니라 전 분야 통틀어)과는 차이가 나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공저자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는 부분은,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 서적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볼드체로 학자의 이름을 밝히고 꺾은괄호로 묶어 준 후, 두 분의 견해를 각각 다른 문단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돋보였습니다. 아무래도 나중에 참여한 제자 교수님의 견해가, 원저자인 스승의 것과 큰 차이가 날 경우 이 본문을 유지할 수 없어서의 궁여지책일 수도 있었겠지만, 여튼 시장에선 독자들 사이에 오히려 이런 점이 큰 호응을 불러, 이 책이 이 분야 최고의 강자로 군림하는 데에 한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법서는 (여느 다른 학술서적과 마찬가지로) 물론 저술자 개인의 견해를 적는 책이지 편집물이 결코 아닙니다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이론의 대립과 논박이 가장 치열한 학문이 바로 법학인지라, 간단한 인용의 형식이건 제법 긴 논술이건 간에 타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면의 한정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력설, 다수설, 통설이 무엇인지 그 본의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소개, 인용해야 하며, 동시에 책이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이상 자신만의 학술적 기여가 될 독자(獨自) 견해 역시 명료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후자에 치우친 책은 독자(讀者)들에게 외면 받고, 전자에 치우친 책은 학자들에게 경멸 받는다는 게 이 분야 저술의 가장 큰 애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이 두 가지 과제 사이에서 아주 균형을 잘 맞춘, 깔끔한 책으로 정평이 나 있었죠.
제 생각에 법서는 기술 서적, 공학 서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구조상 기승전결의 우아함이 끼어들 여지가 부족하고, 표현상 문학적 수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작은 포인트 활자로, 각 제도의 연혁과 배경 같은 것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민법이라면, 어느 정도 성숙하고 표준화한 제도를 구비하고 있는 사회의 시민인 이상, 예컨대 임대차라든지 부동산 등기, 혹은 상속 같은 제반 제도들이,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낯설지를 않습니다. 반면 상사(商事) 사항은, 설사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회사원이라고 해도, 자신의 제한된 업무 영역에서 국지적 지식에 일부 소양이 생길 뿐일까 제도 전반에 대한 개관이라고 하면 누구도 자신 있게 나서질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하물며 어린 학생들에게 상법학은 대단히 난해한 분야일 수밖에 없는데, 저자(들)의 이런 친절한 (내용상, 편집상의) 처리는 그런 의미에서 독자에 대한 큰 배려일 수밖에 없죠.
상법학은 법학 중 기술적 성격이 매우 두드러지면서도, 다루는 영역이 광대하고 내용 또한 생소합니다. 보통 총칙, 상행위, 회사법, 어음수표(상법전에는 없고 별개 단행법 형식이지만 대체로 교과서들에는 이렇듯 네번째 순서로 다룹니다), 보험, 해상의 여섯 분야로 나뉩니다. 이 하권은(다른 저자의 교과서들도 마찬가지지만) 뒤의 세 분야를 서술하고 있고요.
학생들 중에는 어음/수표를 무지하게 어려워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사실 내용의 난이도로는 회사법, 보험법 등도 어렵다는 면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전자는 법학도가 그걸 모른다면 어디 가서 이야기를 못하니 불평 없이 공부를 해야 하겠고, 후자는 어느 시험에서건 출제 비중이 낮으니 딱히 불만을 토로할 대상이 아닌 이유가 크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심지어 저보고 "어음법 언제 폐지되는지"를 물어본 애도 있었습니다. 마치, 내일 지긋지긋한 공장에 출근하기 싫어서 공장에 불을 질렀다는 어느 철없는 직공이 연상되었다고 할까요. 유가증권이란 인류가 거래의 편의를 위해 창안하고 오랜 세월 다듬어 온 제도인데, 공부하기 싫다고 그 제도가 어느 순간 폐지되길 바라는 그 마음이라는 게 참...
이 책은 어음/수표 파트에서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 역사적 배경이라든가, 혹은 제도 자체에 대한 설명을 친절히 베풀어 놓았습니다(이 선을 넘으면 그것은 법서 본연의 기능을 잃을 수도 있죠). 또, 보통 한국의 법제가 대륙법, 그 중에서도 독법계를 계수한 사정 때문에, 정작 거래의 실질에서 근래 더 자주 피부로 접하게 될 영미 제도나 용어를 소홀히하는 수가 있는데, 이 책은 타 저서에 비해 그런 설명에도 충분한 배려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습니다.
정희철, 정찬형 두 저자가 어느 부분에서 대립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책의 또다른 재미였습니다. 정희철 선생님이 대체로 학설의 허점이 노출되는 결과를 싫어하여 정교한 논리를 중시하고 주장의 핵심이 더 잘 부각되는 학설을 선호하는 경향이었다면, 정찬형 교수님은 좀 더 실용적인 입장을 중시하는 편이었다고 할까요. 어음 수표 분야도 학설 대립이 첨예한 곳이기 때문에, 이런 상충점과 대립하는 개성을 찾는 재미가 적지 않았습니다.
정희철 교수님은 이미 당시에도 숱한 제자를 길러내고 은퇴하신 대원로였기 때문에, 그의 제자라 할 분은 정찬형 교수님 외에도 많이 계셨습니다. 그분들 사이에서도 학설이 어떻게 분기하는지를 살펴 보는 건 또하나의 재미인데, 이 이야기는 다른 리뷰에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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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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