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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 작성일
- 2021.1.24
클로드의 개
- 글쓴이
- 로알드 달 저
교유서가
책 처음에 실린 "클로드의 개"는 다섯 단편의 연작입니다. 처음에는 연작인 줄 모르고 읽었는데 같은 두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여 늦게 눈치챘습니다. 하긴 "세계 챔피언"이 그냥 꿩 사냥 이야기로 끝나면 왜 그런 제목이 따로 붙었는지, "개"는 뜬금없이 뭔지 설명이 안 되죠.
"클로드의 개"에는 교외 혹은 시골에서 실제 체험을 안 해 보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기괴한 노하우들이 잔뜩 등장합니다. 이 연작뿐 아니라 로알드 달 작품에 간혹 양념으로 나오긴 하는데, 원 실제 해 보기 전까지는 진짜인지 구라인지 알 수가 없죠. 꿩 잡는 사연도 마찬가지인데, 한번 유모차에서 수십 마리의 꿩들이 비틀거리며 날아오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피지 씨"에서 드디어 개 이야기가 나옵니다 1권에 등장한 빅스비 부인도 전당포 주인을 너무 믿고(혹은 남편을 속이려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후) 곤경에 처하는데, 이 작품의 고든 호즈(1인칭 화자) 씨는 그냥 양아치 같은 견권업자(bookmaker)한테 날로 사기당합니다. 그래도 할 말이 없는 게, 사기는 지가 먼저 치려 들었기 때문이죠(정확하게는 친구 클로드 커비지 씨의 사주). 이 작품 중에서 설명되는 개 경주에서의 사기 트릭은 상당히 잔인한 게 많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쥐잡이 사내"도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묘사가 있지만, 이게 결말에서 그 나름 비책, 회심의 한 수인 양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나오기도 합니다. 소설, 영화의 캐릭터 닥터 한니발 렉터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러민스"에도 또 쥐 얘기가 나옵니다. 이 연작에는 개보다 쥐가 더 자주 나오고 쥐가 주제에 더 가깝기도 하기 때문에 (심지어, 본격 개 경주 이야기인 "피지 씨"에도 또 쥐가 나오죠) 연작 제목이 아예 "클로드의 쥐"였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나마 잔꾀를 잘 부리는 클로드 씨에게 내내 끌려다니는1인칭 주인공 고든 호즈를 일종의 "클로드의 개"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인물들의 개성 묘사가 상당히 생생해서 영상물을 보는 듯 착각이 듭니다.
"호디 씨"는 정말로 웃기는 이야기인데, 예비 신부가 그토록 신신당부를 했건만 클로드는 예비 장인(=호디 씨) 앞에서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제발 아빠 앞에서 개 경주로 앞으로 한몫 잡겠다는 소린 하지마!"내가 바보냐? 장인어른 앞에서 그런 소릴 하게?" ㅋㅋㅋ 그러고선 고작 한다는 소리가 "구더기 공장을 열어서 큰 돈을 벌어볼까 합니다."였으니, 그런 작자에게 누가 딸을 주려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계획은 디테일이 중요하며, 실제로 광적인 낚시꾼들이 많기 때문에 전혀 헛소리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디테일일 뿐. 여기서도 알 수 있듯, 클로드는 마지막에 꼭 뭐 하나를 간과해서 실패를 할 뿐 잔머리는 제법 굴리는 타입입니다.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클로드 커비지 씨가 주변머리도 없고 줏대도 없어서 문제일 뿐.
<조지 포지>는 전래 설화에다가, 어느 억눌린 강박적 성격의 젊은 목사가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섞은 슬픈 희극입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는 충격적 경험을 한 후 성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된 목사가 기어이 사고를 치는 사연인데, 주인공이 서서히 미쳐 가는 고골의 <광인일기>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 작품도 "엄마, 여기가 어디죠? 절 좀 꺼내 주세요!"라 외치는 슬픈 장면으로 끝나죠. 허나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합니다. 성인이라면. 이 작품 중에도 동물 관련 충격적인 묘사가 있으며, 여기서는 토끼지만 실제로 햄스터가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런 행태를 보인다고 하죠.
<로열 젤리> 역시 코믹합니다. 단 아빠 혼자서 환각을 본다거나 한 건 아니고, 아기가 몸무게가 좀 는 건 팩트이지 싶습니다. 진상은, 애들이니까 일시적으로 몸무게가 줄었다가 잘 안 먹다 하다가 나중에 생리작용이 안정되면서 정상으로 가는 거죠. 로알드 달의 작품 답게 자연계의 일부 지식에 대한 풍부한 볼륨이 과시되며, 벌과 일체가 되어 뛰노는 소년의 이미지는 1권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합니다. 마지막에 애 아버지 앨버트의 목에 노란 털이 촘촘 나 있었다는 묘사가 웃음을 터뜨리게 합니다. 그렇게 보려고 작정하면 그렇게 보이는 법이죠.
<윌리엄과 메리>는 예전 SF작가 레이먼즈 존스의 장편 <The Cybernetic Brains>하고도 비슷합니다(달의 이 단편이 좀 더 뒤에 나왔습니다). 육신은 죽은 채 눈과 뇌만 남아 세상을 지켜본다는 설정이 섬뜩하지만 로알드 달만의 유머는 독창적입니다. 뇌에 연결된 눈에서 이런저런 감정을 읽어내는 아내 메리가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죠. ㅎㅎ 한국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한 에피소드에서 "당신 늙기만 해봐, 밥도 안 주고, 구박하고, 딱 내가 당한 것만큼만 갚아 줄테니까"라고 말하는 아내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달리는 폭슬리>에서는 학폭 피해자가 1인칭 화자 주인공인데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혹시 이 캐릭터가 작가 로알드 달의 페르소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출신 학교도 같고, 상급생의 변기를 미리 데웠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로알드 달 본인의 입으로 여러 차례 털어 놓은 회고이기도 하니까요. 한국의 학폭은 이런 명문고의 prank와는 달리 피해자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무서운 성격이라서 단순 비교할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학폭도 당사자에게 영원히 트라우마를 남긴 수준인 건 뭐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작품이 나왔죠.
<소리 잡는 기계> 역시 자연에 깊이 공감하다 이야기가 삼x포로 빠지는 로알드 달 특유의 유머가 나옵니다. 저 위 <로열 젤리>에서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이야기를 우스운 맥락에서 환기했죠.
2권 마지막에 실린 두 이야기는 우습다기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범죄를 다루는 성격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도살장...>은 이후 다른추리소설에서 여러 번 오마주한 유명한 트릭을 다루고 있어 미스테리 애호가들이 반드시 읽어 볼 만한 명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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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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