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김진철
  1. My Reviews & etc

이미지

도서명 표기
너 어디로 가니
글쓴이
이어령 저
파람북
평균
별점9.8 (48)
김진철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 그 네번째 책이자 완결편입니다. 앞에 나온 세 권을 읽고 난 후라면 더욱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앞 세 권처럼 독특한 편집 체제를 취했는데 모두 12장의 챕터[章], 각 장마다 3~5개의 꼬부랑길들, 또 각 꼬부랑길마다 3~4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파람북만의 개성 있는 모습이고 시리즈의 일관성이 간직되는 피처라서 더욱 마음에 드네요.



p147을 보면 선생은 날카롭게도 "...우리 나라는 바다와 면한 지명에도 鎭, 浦보다는 山이 붙은 경우가 더 많다.."라고 지적합니다. 읽고 보니 과연 그런데, 그 이유를 여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의 답은 일본에 의해 가로막힌 바다에 대해 우리 민족이 다소 수동적인 태도를 가져서라고 해석합니다. 지명 중에 진, 포 등이 더 많고 "방방곡곡" 보다는 "진진포포(쓰쓰우라우라)"라 부르길 좋아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바다에 나가도 "돌아오는 것"을 더 신경썼다고 합니다. 항구로 돌아오는 눈에 바로 보이는(보여야 하는) 랜드마크가 바로 "산"이란 것입니다.





이랬던 한국인들이지만 일단 세계로 향해 나아가는 바다를 알게 된 한국인은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고, 이제부터는 무서운 사람들이 된다는 게 선생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선생은, 최남선의 잡지 <소년> 창간호에 유독 바다에 대한 글(번역 혹은 창작)들이 많은 게 이런 이유라고 하네요. "자넨 방구석이 무섭지 않나?"라는 제목의 짧은 글도 인용되는데 재미있습니다. 사실 사람을 좁은 세계에 가두고 눈을 어둡게 만드는, 이러이러한 건 알 필요가 없다며 시대에 뒤떨어진 도그마로 사람을 세뇌하는 어리석은 방구석 마인드만큼 무서운 건 없습니다.



천자문의 첫 구절은 天地玄黃인데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란 뜻이라고 우리 모두 어려서부터 배웠습니다. 이 책에서는 현(玄)의 뜻이 직설적인 색채를 뜻하는 "검다"가 아니라, 그 뜻을 쉽사리 알 수 없는 "심오한"에 가깝다고 합니다. 책에 그런 말은 없으나 사실 아인슈타인도 우주의 90% 가까이를 채우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을 두고 "암흑물질"이라 부른 적이 있습니다. 발표 당시에는 비웃음을 받았으나, 최근 속속 알려지는 관측 결과들에 의해 오히려 근거가 더 강해지고 있죠. 이 역시 천재의 현묘한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알고 보면 발광체를 상정하지 않은 우주 공간은 그 자체로는 검을 수밖에 없으니 이런 이유에서도 하늘이 검다 한 건 틀린 말이 아니겠습니다.



"공부해서 남주냐"란 말이 있는데 공부가 그 정도로 힘든 고역이 되어서야 공부하는 당사자이건 그런 걸 시키는 사람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공부의 어원은 본래가 힘든 노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하고, 이 책에서는 그게 또 중국, 일본, 한국에서의 쓰임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박사님이 알려 주시는 사항, 특히 일본에서 단어 쓰임이 그러하다는 가르침이 솔직히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만 박사님 같은 현명하시고 박학다식한 분이 그렇다 하시니 일단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네요.



여튼 박사님의 결론은 이렇게 획일화한 체제 하에서 국제인이 제대로 길러지겠냐는 우려 쪽입니다. 다만 애초에 교육에 적합하지 않은 인재 유형이 있고(정주영 현대 창업주 같은), 이런 사람은 최소한의 행동 자유만 주면 알아서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니 교육 체제가 구태여 뭘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육 체제는 그런 사람이 부품처럼 밑에 두고 부릴 수 있는 인재를 양성만 하면 되죠. 그게 사회에 배출된 게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같은 소위 명문대 졸업자들이고요. 그래서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이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고 말입니다. 결과가 말을 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식민지 36년 세월도 "국민학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선생은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이른바 국민학교 설립 이후로는 민족 말살 정책이 보다 노골화했는데 이전 세대가 그래도 조선인으로서의 정체감을 갖고 있었다면 국민학교에서 교육 받은 이후 세대는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이게 소학교(혹은 서당) 세대와 국민학교 세대의 차이점이라는 건데 무엇보다 박사님 자신이 1933년생, 국민학교 세대의 첫물이었으니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이겠습니다. 이처럼이나 문제가 많은(일본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적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놀랍게도 1990년대초까지 사용되었으니... 우리도 무슨 X세대 Z세대 이런 걸로 가를 게 아니라 국교/초교 세대로 나눠야 맞을 듯도 합니다. 박사님 주장대로라면 말입니다.



일제강점기 말 "국민학교"에서는 오로지 "천황폐하"를 향한 충성만 강조했고, 책표지에도 나오듯 가르치는 일본어를 잘 따라하지 못하는 열등생들을 그 무서운 훈도, 교사 들이 혼을 내곤 했겠습니다. 박사님 같이 똑똑한 학생은 일본어든 뭐든 못하는 게 없었겠으나 한편으로 그 공부 못하는 어린 낙오자들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곤 했겠죠. 실제로 박사님의 천재성은 그 빼어난 일어 실력으로 잘 표현된 저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더 극찬을 받았으니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입니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김진철님의 최신글

  1. 작성일
    4시간 전

    좋아요
    댓글
    1
    작성일
    4시간 전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6시간 전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6시간 전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5.6.7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6.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사락공식공식계정
    작성일
    2025.6.4
    좋아요
    댓글
    61
    작성일
    2025.6.4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6.5
    좋아요
    댓글
    110
    작성일
    2025.6.5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6.2
    좋아요
    댓글
    133
    작성일
    2025.6.2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