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Reviews & etc

김진철
- 작성일
- 2022.10.9
필묵장수
- 글쓴이
- 황순원 저
지성사
25기 36주차에 이문열의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를, 24기 35주차에 김용익의 <꽃신>을 읽고 각각 독후감을 남겼었습니다. 지금 이 작품도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진행입니다.
구태여 다른 점을 꼽자면 앞의 두 작품들에서 주인공들은 현재는 비록 인기가 없을망정 자기 분야에서 빼어난 기술을 연마하여 일가를 이룬 장인들이었지만 황순원의 이 주인공은 1) 종사 업종 자체가 사회에서 내리막길인데다 2) 심지어 자신의 기술도 시원찮다는 게 특징입니다. ㅋ 아니 적어도 내 솜씨만큼은 어디다 갖다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뭐 이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자타공인으로 재주 자체도 삼류입니다.
주인공 같은 이가 구식 양반들이 사는 집에 들러 이런저런 문방구를 팔아먹으려면 본인이 난(蘭)도 치고 멋진 글씨 솜씨도 보여 주곤 해야 하는데 이 양반은 그런 것도 서투릅니다. 물론 겉으로 봐선 최소한의 외관은 갖췄는데, 그게 젊어서부터 올바른 경로로 배운 게 아니라서 날카로운 눈에는 이런저런 허점과 떨어지는 기품, 튼실하지 못한 기본기에서 유래한 천격 같은 게 그대로 캐치되기 마련이죠.
그렇다고 이 사람이 사기꾼 기질이 있다거나 한 건 또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서, 자신의 재능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자신을 낮추는 편입니다. 사람이 착하니까 구매자들도 대놓고 앞에서 말은 못하는데 돌아서서는 "에휴, 실력은 지지리도 없는..." 이라며 탄식을 내뱉습니다.
글씨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개인적으로 어떤 나이 드신 분 필적을 보고 선배와 의견을 나눈 적 있습니다. "이분 글씨는 참 잘 쓰지 않냐?" "이게 겉으로는 잘 쓴 듯 보여도, 획과 획이 연결도 안 될 뿐 아니라 엉뚱한 데서 이어지기까지 하니 명필 흉내만 낸 순엉터리네요." 억지로 누군가를 폄훼하려는 게 아니라 딱 봐서 아닌 건 아닌 거죠. 그 얕은 동기와 수련, 내면이 한눈에 빤히 보이는 걸 달리 뭐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그런데, 기술이 일천한 건 누가 뭐라 안 하지만, 인간 됨됨이가 천한 건 구제 방법이 없죠. 알고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는 자신의 깨끗한 영혼을 소중하게 지켜내는 일 아니겠나 싶습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