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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 작성일
- 2023.2.19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글쓴이
- 필립 짐바르도 저
앤페이지
교과서, 혹은 여러 전문서적, 심지어 대중 자계서에도 그가 설계한 실험이나 이론이 소개된다는 건 학자로서 분명 크게 성공한 삶이라고 평가 받아 마땅합니다. 필립 짐바르도는 책 중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되듯, 명문 스탠포드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들은 교수에 꼽히며, 상아탑 안의 학자를 넘어 이미 대중에게도 널리 인지도를 갖는 엔터테이너의 위상이라고 합니다. 책표지에서 뭔가 코믹하고 드라마틱한(적어도 점잖지는 않아 보이는) 표정을 짓는 얼굴만 봐도 그런 느낌이 듭니다.
책 p14나 p222를 보면 그는 거듭해서 뉴욕 (사우스)브롱크스 빈민가에서 나고 자랐다고 술회합니다. 이런 성장 배경이, 그가 그토록 탁월한 업적을 남기는 데에, 적어도 학계의 기존 통념을 뒤집는 혁신 연구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요? 이 책은 인터뷰어의 짤막짤막한 질문에, (모르긴 해도) 수다스러울 듯한 그의 길고 긴 내러티브가 지면을 꽉꽉 채우는 형식입니다. 그의 <루시퍼 이펙트>라든가 공저 <타임 패러독스(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 이 책 중 p127)>는 이미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를 만난 베스트셀러입니다. 바로 그 저자가 허심탄회하게 한 인간의 목소리로 털어 놓는 이야기를 통해, 저 레전드 실험들과 연구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캐치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또래 학생들의 말이 아니라 교수님 말씀을 듣기 위해 학교에 와서 수업에 참여하는 거에요.(p73)" 짐바르도 교수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수업 방식이 저렇게 처음에는 반대에 부딪혔나 봅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저 학생들(짐바르도 교수 반대파)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대학 교수님은 중고교 교사들과도 또 달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성계의 진로를 잡고 첨단 지식을 발굴해 내는 선봉장입니다. 그 가르침이 학교 밖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귀한 것이기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배우러 가는 것 아닐까요? 물론 어떤 방식이든 장단점이 있고, 짐바르도 교수는 자신의 방법론을 발전시켜 오늘에 이른 것이지만 말입니다.
짐바르도 교수의 그 전설적인 교도소 실험(p254를 보면, 정작 자신은 그렇게만 기억되고 싶지 않아합니다)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p198)"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환경 결정론의 불길한 연장 해석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미국에서 엘리트로 손꼽히는 스탠퍼드대 학생들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전적으로 의사결정 자유가 박탈되는 상황도 아닌, 실험인 걸 나도너도 뻔히 아는 분위기에서도 결국은 그런 악영향을 받았으니... 이 책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짐바르도 교수가 자신의 학생들에게 뭘 강압적으로 지시한다거나 할 퍼스낼리티도 아니었겠고요.
아무리 실험 속의 상황이라고는 하나,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세부 상황까지 예측 가정하여 철저히 윤리 규범이 지켜져야 합니다. p45 같은 걸 보면 약정서 같은 게 작성되었고(p39, p129도 참조하세요) 아마도 대학이나 연구기관 주도 실험 중 이런 계약이 꼼꼼히 체결되는 관행도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을 겁니다. 짐바르도 교수는 참 여러 면에서 업적을 남긴 셈입니다. 한국 일각에서 횡행하는 음습한 변태적 SM 상황극에서도 암묵의 약속은 지켜진다고 하지만 뭐 당사자들 외에 누가 정확히 알겠습니까.
심리학을 경제학에 전면 응용하여 새 분야를 개척한 게 행동경제학인데 짐바르도 교수도 인간 심리의 미묘한 부분을 정교히 측정하는 방법론으로 업적을 남겼으니 어찌 보면 저 분야의 선구자입니다. 트버스키, 카너먼 등에 대한 언급도 p96에 나옵니다. 사실 이 인터뷰에 드러나는 짐바르도 교수의 특징적 비유나 어법을 통해 그의 심리를 추단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데, 현대에 들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고 일각에서는 부당하게 악마화하기도 하나 p142, p264에서처럼 존 웨인이 바로 빌런과 동일시되는 건 드문 편입니다(물론 다른 이의 의견을 근거로 들지만). p239를 보면 더 극단적 성향을 지닌 흑인 학생에게 결국 크레딧을 못 받은 걸 두고 불만을 털어놓는 등 뒤끝도 장난아님이 드러납니다.ㅋ
위키피디아에 보면 그를 두고 유대인, 푸에르토리코인, 마피아, 흑인 등으로 오해한다는 기술이 있는데 이 평판의 근원은 짐바르도 자신의 회고(이 책 p61 같은 것)이지 어떤 객관적 근거가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리버럴 성향답게 중국도 극단적 전체주의라며 싫어하고(p209) 포퓰리즘적 독재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는데 트럼프, 에르도안, 두테르테 등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지만 김정은이 이 범주에 드는지는 의문입니다. 책에 나오는 대로 인민사원 짐 존스와는 닮았지만 말입니다.
p270의 아티클은 <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를 불과 몇 페이지로 잘 요약한, 유익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레전드가 탄생하게 된 뒷이야기를 그랜드마스터 본인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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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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