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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 작성일
- 2023.2.22
감염병의 역사
- 글쓴이
- 리처드 건더맨 저
참돌
19세기 들어 세균학, 바이러스학 등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류를 괴롭히는 질병은 언젠가는 모두 극복되리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에서도 알 수 있듯 바이러스는 그 고유의 이점을 잘 이용하여 전혀 새로운 패턴으로 진화했고, 앞으로도 인류 곁에 영원히(...) 머물 것으로 추측됩니다. 혁명이나 전쟁, 사회 불안, 범죄 같은 것보다 더 근원적인 레벨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건 질병이며 역사의 고찰은 이 감염병이 끼치는 영향을 제외한다면 의미 있는 진전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다소 당혹스럽지만 누가 뭐래도 인간에게 가장 큰 쾌감을 안겨 주는 건 바로 성 관련 행위입니다. 공자나 석가, 소크라테스, 아인슈타인 같은 위인은 혹 다른 고차원 행위 중 더 큰 쾌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이는 극히 예외적일 뿐입니다. 인간은 설령 타고난 머리가 나쁘더라도 이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마음 놓고 행위할 자유를 박탈하는 밤의 질병(p118)의 존재는 실로 위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매독, 후반에는 AIDS(p130)가 유행하여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소설을 보면 문란하게 살던 중노년 부자가 죽을 꾀를 내어 수은을 흡입하다가 아예 저세상 사람이 된 클리셰가 정말 자주 나옵니다. 에이즈는 산모에게서 태아로 수직 감염, 혹은 수혈 사고로, 무분별 성행위와 전혀 무관한 희생자가 생기는 게 가슴 아픈 일입니다. 클라미디아, 헤르페스, 임질은 남성 중 상당수가 보유했으며 피임도구의 사용으로도 못 막는 경우가 많으니 그저 절제된 행위 습관으로 자신을 지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이라는 게 그저 의도적으로, 혹은 체계적으로 설계된 프로젝트 하에서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그저 우연에 의해서도 엄청난 성과가 가능한 영역임을 예증하는 게 바로 페니실린의 발명입니다. 그러나 그 우연한 발견조차 영국처럼 기초과학 인프라가 탄탄하고 연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고한 나라에서 이뤄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p125를 보면 이 항생제의 발견이 약 2억 명의 목숨을 구했겠다고 하지만 요즘은 항생제 내성으로 더 큰 위협이 초래됩니다. 한때는 마냥 축복이자 쾌거로 여겨졌던 게 이처럼 평가가 바뀌는 것도 이례적입니다.
얼마전에는 암이 유전이라고 하면 모두가 황당해했습니다. 지금은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죠. 위궤양은 그저 개인의 기질과 성격, 식습관 등에 기인한다고 여겼고 이게 감염성을 지닌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하겠으나 호주의 배리 마셜 같은 이는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용액을 마시는 결단으로 자신의 이론을 입증했습니다. 압도적 다수 과학자(엄연히 최고 전문가)들이 반대하는 와중에도 이런 신념을 지키고 올바름을 증명한 그 강단이 정말 대단합니다.
현대는 이미 미생물학, 또 관련 의학이 충분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한 상태지만 p64에 나오듯 18세기처럼 아직도 폐습과 미신이 지배하던 시절이라면 에드워드 제너 같은 선구자의 노력이 얼마나 고독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p65의 지도는 당시 브리튼 섬의 천연두 사망률을 한눈에 보여 주는데 이때만 해도 병에 걸려 죽고 아니고는 그저 팔자 소관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방법은, 불운이나 재앙 등을 놓고 이성과 계획으로 대응하여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하는 범위를 점차 넓혀 가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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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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