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경영/자기계발

김진철
- 작성일
- 2014.4.26
샤워실의 바보들
- 글쓴이
- 안근모 저
어바웃어북
과거, 프리드먼 교수의 통렬한 우화적 진단은 결국 단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조삼모사". 어리석은 자는 당장 뜨거우면 레버를 오른쪽으로 돌리되, 적절히 조절함이 없이, "오른쪽이 절대 선이다!"를 다짐하듯 큰 폭의 핸들링을 합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온 몸의 동작 기제가 멈출 만큼의 냉수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번에는 "어마차거라"를 외치며 반대 방향으로 또 한 번의 급격한 전회를 시도합니다. 그 결과는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2006년, 빈 구석 없이 그 긴 생애를 남다른 밀도로 매 피리어드를 가득 채웠던 프리드먼 교수는, 백 살을 불과 몇 년 남기고 타계했습니다. 자연인으로 오래 살았을 뿐 아니라, 학계에 데뷔한 이래 거의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이 거인은, 그 가열찬 행보 때문에 거의 언제나, 우리의 할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들의 시대에, 바로 곁에 서서 쓴소리 한 마디를 상시로 던졌던 듯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케인즈다, 힉스(물리학자가 아닙니다)다, 새무얼슨이다, 이런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시대라 불릴 만한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래 살기도 살았을 뿐 아니라, 그 긴 시간 동안 내내 끊임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 많은 반대자들에 맞서 일일이 논박과 대거리를 펼치고, 그 시간 동안 경제활동인구와 경제정책결정당국의 골머리를 썩게 하고 때로는 안위의 위협까지 가한 그 많은 경제위기에 대해, 일일이 처방을 내놓고 그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려 했던 분이었기에, 우리는 대체 그의 "동시대" 가 과연 어디쯤이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올타임 리퀘스트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그 긴 생애 동안 일관된 주장을 해서인 덕도 있지만, 경제이론처럼 유행의 부침이 심한 영역에서, 도대체 올타임 플레이어가 있다는 자체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칭송의 대상이었나 하면 그렇지도 전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정부의 존재 이유는, 유연성 있게 통화정책을 폄으로써,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 유효적저절히 대처하기 위함인데, 법으로 통화 증발률을 정해 두고 이를 절대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시류를 따라 주류를 이루는 이론의 유행이 많이도 변화해 왔지만, 그의 이런 준칙주의는 누구나로부터 "까임"의 대상이 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를 편들어 줄 만한 학파가 큰 목소리를 낼 무렵에도 심지어 그러했습니다.
책의 저자인 안근모 기자님이, 본격 학문의 길도 아닌 저널리스트로서 경력의 대부분을 채운 그가, 하필 이 인기 없는 통화주의를 기조로 해서 이 책을 저술한 것도 저는 달리 보입니다. 사실 경제 현실이건 정치 현안이건, 명제화, 공식화된 답은 없습니다. 아이들 말로 "케바케"로 해결하고, 중용의 도를 취하되, 내게운 명분을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는 게 출세와 인기의 비결입니다. 고지식하게, 단순한 원칙론을 고집하는 자는 어디에서나 외톨이로 몰리게 마련입니다. 누구보다, 현장의 여러 목소리르 듣고, 복잡다단한 세상에 정답이 결코 하나만 있을 수 없음을 잘 아는 기자로서, "답은 통화주의!"를 내세운다는 건 어찌 보면 배짱이 필요합니다. 통화주의란, 일단 한 번 "까 주고 들어가야" 배운 티가 나는, 만만한 샌드백에 가깝다고 극언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분위기가 그렇게나 좋지 못합니다.
책은 참으로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런 우려와 기존의 회의를 몰라서가 아니다. 다만 지금 당장 편하자고 대증 요법을 쓴다 해도, 그 빚은 미래 세대도 아닌, 잠시 후의 우리 자신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몫이 아닌가?" 책이 은근히 암시하고 있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도 감안해야겠습니다. 비록 시카고가 까이고 있지만, 합리적 기대이론은 지난 반 세기에 이 학문이 확인하고 성취한 가장 강력한 명제와 도구 중 하나입니다. "한 번 한 실수를 두 번 되풀이하지는 않으며, 경험은 다음 예측에서 어떤 식으로건 쓰이게 되어 있다." 예리한 감각으로 움직여야 살아남는 시장에서, 이제는 민간 경제 주체들도 더 이상 연준의 마술, 중앙은행의 전지전능에 위축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수(手)는 가위-바위-보 처럼 단순합니다. 이 단계에서 이 정도 카드가 나올 줄은, 대응하는 쪽에서 머리를 짜 내고 노력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판에, 정해진 룰에 의해 발권을 행하든, 소위 재량에 의해 하든, 큰 차이가 과연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왜 이 시점에서 다시 통화주의인가? 아마도 우리가 처음에 예상했던 이상으로, 이 단순한 조언이 엄청난 타당성을 내포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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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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