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경영/자기계발

김진철
- 작성일
- 2015.4.30
유대인의 진짜 공부법
- 글쓴이
- 이학승,박경란 공저
형설라이프
유대인의 생존 역사란 그 자체로 경이의 대상입니다. 그렇게나 많은 핍박을 받고 단일한 정체성을 이어 온 민족사의 유례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최근에 제가 읽은 세 권의 책에서도 "왜 유태인 OO에게 찾아가세요?", "그들이 똑똑하니까."란 대사가 공통으로 나왔을 정도입니다.
일반 독자로서 유대인의 정치적 지향, 가치관 등에 대해 찬(贊), 반(反)을 분명히 정할 필요는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중동에 태어났거나, 혹은 미국 뉴욕 등 다수 유대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산다면, 나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회피하는 건 때로 주위의 이웃들에게 비겁한 태도로 비칠 우려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유대인의 경제적 파워가 미미하게만 미치는 곳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존과 이해가 관련된 선 안에서만 정치적 입장을 확인하면 되고, 그 선을 넘는 건 본인 직업이 정치인이 아닌 이상 차라리 참여를 가장한 역 현실 도피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일단 자기 생존을 꾀하고 생계에 집중하는 게 본연의 길입니다.
유대인은 똑똑하고, 자기 직업에서 평균인이 달성하는 성취 이상의 것을 달성합니다. 이것이 분명한 현실이고, 그게 어떤 DNA 변수에 의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설사 그들 중 일부가 무슨 주장을 하건 무관하게). 대다수 교양 있고 자아 실현에 성공한 유대인들은, 다양한 비결을 꺼내 놓습니다. 그런데 놀랄 만큼 뚜렷한 공통분모를 이루는 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훌륭한 지도"입니다. 유대인들은 살아 온 환경이나 개성, 심지어 정치적 이념까지 너무도 천차만별이기에(심지어 반 시온주의자, 아랍인들에 동조하는 이들, 극좌파까지 있습니다), 어떤 공통점이 있으면 그게 신기해 보입니다. 어떤 교육이 어려서부터 이뤄졌기에 그들을 강하고 똑똑하게 만들었는가? 사실 자기계발 본연의 이슈로 이보다 더 관심 있는 주제도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지혜와 인성의 교육입니다. 같은 민족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되, 개개인의 자율과 개성을 침범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라도 권위, 혹은 다수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그것이 논리와 근거를 갖춘 것일 때,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말해야만 하는 방식. 이것이 그들을 타 집단과 다르게 만든 비결입니다. "말할 수 있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말해야만 하는" 단계까지 가는 이유는, 다수의 의견이라는 제약 때문에 분위기가 정체되고, 진보와 새로운 대안의 발견이 방해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외적의 침략을 겪지 않고 역사를 유지한 민족은 없습니다. 민족 절멸의 위기라면 유대인이 더합니다. 우리는 20세기 초, 민족 말살의 위기를 한 번 겪었고, 그로부터 사백여 년 전에도 대규모 전란을 겪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외부로부터의 침탈이 900여 회에 달한다고도 하나, 이는 작고 큰 교전이나 변란을 모두 합친 것입니다. 유대인처럼 "민족사가 곧 피침사, 방랑사, 유배사"인 경우와 비교할 수는 없죠.
유대인이 지금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오히려 전력적 우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이유는, 그들의 심성과 전략적 결정이 강인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원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다고 하나, 미국의 의회와 이해집단을 뒤에서 조정하는 게 유대인이고, 미국 내에는 전통적인 반유대주의 세력도 많습니다. 어떻게 해서 세계 최강대국의 배후를 좌우할 역량을 얻게 되었는지부터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도그마를 이식받는 수가 많습니다. 그게 철지난 반공주의이든, 맹목적 투쟁을 남에게 강요하는(자신은 실천하지 않고 립서비스로만 대신합니다) 모험주의이건, 아 이게 내 일생을 두고 지켜야 할 교리구나 생각한 후엔, 사회 나와서도 마음 속에 간직한 신앙으로 간직하고, 이를 내가 지켜 내는 게 인생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꼴통"이 되는 기쁨으로 자위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개인으로 바로 서지 못했기에,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 집단에 속했다는 대체품의 자부심이, 좀 흔들린다 싶을 때마다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 구실을 하는가 봅니다. "나는 내 개인이 아니라. 보다 숭고한 이념을 위해 살고 있어!" 망상이죠. 남은 건 빈 통장과 반 실직 상태의 초라한 경제지위죠.
유대인이 어떤 위기에서도 살아남고, 강인하게 정체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종족에 대한 자긍심을 교육 받되(이 역시 강요나 주입이 아니라, 주체적인 의식의 자각을 이끌어내는 방식입니다), 자아의 나머지 부분은 "너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내용으로 채워집니다. 30% 정도가 확고한 유태인으로서의 정체성, 나머지 70%는 개인으로서 각성한 고유의 자의식입니다. 이러니 개체 다양성이 보존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 브레인스토밍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며, 유효한 대안이 나와 전체를 구할 수밖에 없죠. 북한을 보십시오, 유일사상 획일주의가 결국 자신의 소중한 가치도 망치는 겁니다. 위선적인 인간들은, 위기에 몰렸을 때는 다원주의와 톨레랑스를 외치다, 자신이 일단 유리한 위치에 섰다 싶으면 근거 없는 절대선을 독선적으로 들고 나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압살하려 듭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인성 교육은, 우리처럼 전체의 의견에 눈치나 보고 영합이나 하는 좀비를 키우는 게 아닙니다. 요즘 회사에서도 보신주의, 무소신 영합으로 일관하는 인간은, 윗선에서 바로 찍혀 책상을 뺏기기 일보 직전에 있죠. 인성의 자각 본질은 바로 개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생산성 있는 집단에 소속하여 그 집단을 위해 고유의 경제적 기여를 해 내는 개인, 토론과 토의에 있어 규칙과 논리를 준수하여 궁극의 공동선을 도출해 낼 능력이 있는 개인을 말합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불평분자가 아니라 말입니다.
일반 독자로서 유대인의 정치적 지향, 가치관 등에 대해 찬(贊), 반(反)을 분명히 정할 필요는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중동에 태어났거나, 혹은 미국 뉴욕 등 다수 유대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산다면, 나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회피하는 건 때로 주위의 이웃들에게 비겁한 태도로 비칠 우려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유대인의 경제적 파워가 미미하게만 미치는 곳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존과 이해가 관련된 선 안에서만 정치적 입장을 확인하면 되고, 그 선을 넘는 건 본인 직업이 정치인이 아닌 이상 차라리 참여를 가장한 역 현실 도피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일단 자기 생존을 꾀하고 생계에 집중하는 게 본연의 길입니다.
유대인은 똑똑하고, 자기 직업에서 평균인이 달성하는 성취 이상의 것을 달성합니다. 이것이 분명한 현실이고, 그게 어떤 DNA 변수에 의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설사 그들 중 일부가 무슨 주장을 하건 무관하게). 대다수 교양 있고 자아 실현에 성공한 유대인들은, 다양한 비결을 꺼내 놓습니다. 그런데 놀랄 만큼 뚜렷한 공통분모를 이루는 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훌륭한 지도"입니다. 유대인들은 살아 온 환경이나 개성, 심지어 정치적 이념까지 너무도 천차만별이기에(심지어 반 시온주의자, 아랍인들에 동조하는 이들, 극좌파까지 있습니다), 어떤 공통점이 있으면 그게 신기해 보입니다. 어떤 교육이 어려서부터 이뤄졌기에 그들을 강하고 똑똑하게 만들었는가? 사실 자기계발 본연의 이슈로 이보다 더 관심 있는 주제도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지혜와 인성의 교육입니다. 같은 민족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되, 개개인의 자율과 개성을 침범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라도 권위, 혹은 다수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그것이 논리와 근거를 갖춘 것일 때,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말해야만 하는 방식. 이것이 그들을 타 집단과 다르게 만든 비결입니다. "말할 수 있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말해야만 하는" 단계까지 가는 이유는, 다수의 의견이라는 제약 때문에 분위기가 정체되고, 진보와 새로운 대안의 발견이 방해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외적의 침략을 겪지 않고 역사를 유지한 민족은 없습니다. 민족 절멸의 위기라면 유대인이 더합니다. 우리는 20세기 초, 민족 말살의 위기를 한 번 겪었고, 그로부터 사백여 년 전에도 대규모 전란을 겪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외부로부터의 침탈이 900여 회에 달한다고도 하나, 이는 작고 큰 교전이나 변란을 모두 합친 것입니다. 유대인처럼 "민족사가 곧 피침사, 방랑사, 유배사"인 경우와 비교할 수는 없죠.
유대인이 지금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오히려 전력적 우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이유는, 그들의 심성과 전략적 결정이 강인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원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다고 하나, 미국의 의회와 이해집단을 뒤에서 조정하는 게 유대인이고, 미국 내에는 전통적인 반유대주의 세력도 많습니다. 어떻게 해서 세계 최강대국의 배후를 좌우할 역량을 얻게 되었는지부터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도그마를 이식받는 수가 많습니다. 그게 철지난 반공주의이든, 맹목적 투쟁을 남에게 강요하는(자신은 실천하지 않고 립서비스로만 대신합니다) 모험주의이건, 아 이게 내 일생을 두고 지켜야 할 교리구나 생각한 후엔, 사회 나와서도 마음 속에 간직한 신앙으로 간직하고, 이를 내가 지켜 내는 게 인생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꼴통"이 되는 기쁨으로 자위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개인으로 바로 서지 못했기에,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 집단에 속했다는 대체품의 자부심이, 좀 흔들린다 싶을 때마다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 구실을 하는가 봅니다. "나는 내 개인이 아니라. 보다 숭고한 이념을 위해 살고 있어!" 망상이죠. 남은 건 빈 통장과 반 실직 상태의 초라한 경제지위죠.
유대인이 어떤 위기에서도 살아남고, 강인하게 정체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종족에 대한 자긍심을 교육 받되(이 역시 강요나 주입이 아니라, 주체적인 의식의 자각을 이끌어내는 방식입니다), 자아의 나머지 부분은 "너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내용으로 채워집니다. 30% 정도가 확고한 유태인으로서의 정체성, 나머지 70%는 개인으로서 각성한 고유의 자의식입니다. 이러니 개체 다양성이 보존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 브레인스토밍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며, 유효한 대안이 나와 전체를 구할 수밖에 없죠. 북한을 보십시오, 유일사상 획일주의가 결국 자신의 소중한 가치도 망치는 겁니다. 위선적인 인간들은, 위기에 몰렸을 때는 다원주의와 톨레랑스를 외치다, 자신이 일단 유리한 위치에 섰다 싶으면 근거 없는 절대선을 독선적으로 들고 나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압살하려 듭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인성 교육은, 우리처럼 전체의 의견에 눈치나 보고 영합이나 하는 좀비를 키우는 게 아닙니다. 요즘 회사에서도 보신주의, 무소신 영합으로 일관하는 인간은, 윗선에서 바로 찍혀 책상을 뺏기기 일보 직전에 있죠. 인성의 자각 본질은 바로 개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생산성 있는 집단에 소속하여 그 집단을 위해 고유의 경제적 기여를 해 내는 개인, 토론과 토의에 있어 규칙과 논리를 준수하여 궁극의 공동선을 도출해 낼 능력이 있는 개인을 말합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불평분자가 아니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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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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