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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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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질문들
글쓴이
김경민 저
을유문화사
평균
별점9.1 (35)
김진철

"올바른 질문은 벌써 절반 이상의 정답을 품고 있다." 사실 답을 대는 것보다는 적절한 의문을 떠올린 후, 유효한 과제를 특정, 구체화하는 작업이 훨씬 어렵습니다. 지난 인류사의 위대한 이들은 그 아름다운 이름을 청사에 남긴 비결이, 멋진 해답을 척척 내놓은 데 있다기보다,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바른 문제의식을 제기했던 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을 바꾼 건 대답이라기보다는 "질문 그 자체"입니다.



이 책은 그런 창의적이고 논쟁적이며 비범한 질문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과, 그를 제기한 위인들이 이후 어떻게 세상을 바꿔 놓았는지 재미있게 풀어 주는 책입니다. 다루는 주제와 토픽도 참 다양하고, 종횡무진 여러 시대와 공간을 넘나들고 있어, 독자가 지식의 낯선 바다를 항해하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많은 역사책 대중서에서 다뤄 와 눈에 익은 이야기 외에, 처음 들어본다 싶은 기발한 사연이 많아 독자가 읽어가는 재미가 가득했습니다.



모두들 자유와 방종을 찬미하던 르네상스기, 마키아벨리는 대놓고 독재와 통제를 옹호했습니다. 신의 속박과 멍에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충동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당대의 분위기를 고려 않고, 현대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그의 정치사상은 음습하고 불쾌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조와 아이디어는 반(半) 밀레니엄을 살아 남아,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 깊은 영향,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예를 말할 때 홀로 아니요를 외친 그가 이토록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을 얻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자는 이를 두고 "그가 세상의 본질적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으로 정리합니다. 다른 이들이 해방과 자유, 육욕을 논할 때, 그는 "질서와 힘"이 존재의 본질임을 간파했습니다. 과연 그가 죽은 후 반 세기도 지나지 않아, 르네상스는 sack of Rome을 통해 처참한 능욕 후 종말을 맞습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꿰뚫었던 이만이 내릴 수 있는 진단이었던 거죠.



로베스피에르 역시 현상의 이면에 도사린 진정한 추동력을 응시할 수 있었던 현인입니다. 신흥 부르주아지들이 혁명의 과실을 독식하려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을 때, 오직 그만이 넘실대는 폭풍과 같은 "민중"의 저력에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공포 통치기, 국민 공회 시기는 실패와 원성으로 점철된 기간이었고, 이를 주도한 로베스피에르 역시 후세나 당대나 결코 좋은 말을 못 듣는 자입니다. 그런 그가 어찌해서 혁명의 아이콘으로 이처럼 오래 자리매김하는가. 해답은, 그처럼 1789년 혁명의 본질을 훤히 내다본 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가 그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겪던 시기 치러야 했던 모든 과오는, 로베스피에르의 업보라기보다 혁명 자체에 내재한 모순, 한계의 탓이었습니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신의 명령, 혹은 존엄한 인간 이성과 의지의 순일한 지시에 평생을 복종한(그 결과 타인들에게는 제멋대로의 광폭한 개성으로 비친) 베토벤은, 소명(calling)에 헌신하느라 청력을 잃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귀로 하는 직분을, 이제 귀 없이 어떻게 수행하란 말인가? 그가 신으로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는지야 알 수 없지만, 이후 그가 산 삶은 그 무엇보다 모범답안에 가까웠습니다. 이 역시 질문을 잘 잡은 인생만이 누릴 수 있는 불멸의 성취라고 하겠습니다.



찰스 다윈은 또 이와 정반대의 경우입니다. 베토벤이야 워낙 가진 것 없이 태어나 소명이라는 허상(보는 관점에 따라)에 매달려야만 했다 쳐도, 다윈은 당대 누구도 부럽지 않은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별반 시련 없이 경력을 구축할 수 있었던 처지였습니다. 그가 장년 이후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어가며 가시밭길을 걸은 건, 당대나 오늘날이나 상식의 눈으로는 의아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그처럼 무모한 행보를 고르지 않아도, 안온한 생이 보장되어 있는 행운아였으니 말이죠. "왜 고상한 핏줄을 지닌 그가, 구태여 제 조상을 원숭이로 들어  강변해야만 했나?"(사실 곡해지만) 다윈은 확고한 기존의 권위이든, 세상의 편견이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정당한 의문이 떠오르는 대로 정직한 해답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이런 그도, 바른 의문이 아니었다면 바른 출발점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사실 이념 논쟁 때문에 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지만, 에드워드 사이드야말로 우리 시대의 코페르니쿠스로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문제 제기 단계부터 그는 창의적이었고, 이제 웬만한 담론을 꺼내어도 그의 이론 자장에서 채 벗어나기가 어려울 만큼(찬성이든 반대든), 그가 확립한 업적은 위력적입니다. 남들이 생각지 않은 바에 과감히 주목할 수 있었던 게 그의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지구의 중력에 발목이 잡힌 유한한 존재라도 눈은 저 멀리 달을 향하고 있었던 일론 머스크를 주제로 이 책은 막을 내립니다. 일견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위인들을 화제 삼아, 창의적 질문의 위력(세상을 통째 바꿔 놓는)을 절감하게 해 주었던 저자의 시도야말로 이 늦여름을 유쾌하게 지나게 도와 준 청량음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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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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