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ES24 파블미션(舊)

김진철
- 작성일
- 2016.1.29
하버드 천재들의 감성수업
- 글쓴이
- 탄춘홍 저/전왕록 역
리오북스
"도대체 감성이 뭐기에?" 저자는 중국의 교육자이며 능력계발 분야에서 두드러진 명성을 얻고 있는 개척가이기도 합니다. "탄춘홍"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譚春虹(담춘홍)으로 쓰는데, 마지막 글자는 무지개 홍, 혹은 고을이름 공으로도 읽습니다. 심리학 분야 중 실천적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이 줄곧 관심을 돌리는 테마가, "왜 어떤 사람은 지능이 충분히 뛰어난데도 성공하지 못하고, 학창 시절에 두각을 못 나타낸 사람이 사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가?"입니다. 저자는 이 과제를 놓고 특히 큰 관심을 두어 연구에 오랜 기간 매진했는데, 그 배경에는 이분이 실제로 교육 시설을 책임지고 운영하며 어린 인재들을 양성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학문적 연구와 실제 성과의 방향성을 일치시키는 게 가능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하겠습니다.
사실 지능이 아닌 감성의 인자(factor)가 한 개인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이미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연구진(역시 행동과학, 심리학 분야 종사자들이었습니다. 소속은 하버드 대학이었지요)들이 규명하여, 학계뿐 아니라 저널리즘, 나아가 일반 대중(특히 학부모)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이때 정립된 개념이 EQ, 즉 이른바 "감성 지능"이란 것이며, 성공은 IQ가 아닌 이 미지의(당시로서는) 요인에 더 크게 선형적(linear) 의존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들 했습니다. 이 토픽이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당시만 해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사주간 <TIME>에서 그 주 이슈 분량 대부분을 할애하여 연구 성과를 다뤘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연구가 아니라도, 이미 한국에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급격한 고도 성장을 겪은 내력이 있었기에, "학교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으로 떨어질 수 있다."라는 "체험적 진리"가 이미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 정주영 회장 같은 이도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들에게 창피함을 무릅쓰고 서울 명동 번화가 한복판에 나가 큰 소리로 홍보를 시키거나(회사 차원에서 큰 실익이 없는 활동인데도), 한강 백사장에서 씨름을 시키곤 했던 것입니다. 공부에만 찌든 책벌레들에게서 몰감성(沒感性) 의 외피를 벗기고, 알몸으로 사회라는 보다 거대한 유기적 실체와 공감을 시도하게 만들자는 게 그 의도였겠습니다. 여기서도 핵심의 화두는 바로, 지능이 아닌 "감성"입니다.
"공감"이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두 단어(형태소) 중, 하나는 "함께할 공"이요 다른 하나는 "느낄 감"이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共이라는 글자가 感이라는 후치어를 수식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중요한 요소는, "공"의 수식을 받는 "감"입니다. 그런데 이 "감"이 중추를 이루는 "감성"이란, 혼자만의 영역에서 고도로 발달시킨 그런 감성이라면, 그게 설사 인류사에 길이 남을 가치를 지닌 레벨이라고 해도 목전의 성공과 직결되는 요소는 아닙니다. 빈센트 반 고흐를 보십시오. 그가 남긴 작품들은 현재 지구에서 유통되고 있는 그 어느 예술가의 흔적보다도 고가에 유통됩니다만, 생전의 천재 화가는 걸인으로 죽었습니다. 예술가 중에는 이런 그의 장엄하고 불꽃 같은 삶을 추수(追隨)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보다 많은 수는 화려한 세속적 성공과 물질적 풍요를 동시에 꿈꾼다는 게 보다 솔직한 이야기일 터입니다. 따라서 "감성"은 바로 "공감성"이 되어야만 하며, 그게 최소한 성공을 염두에 두고 오늘 하루를 노력으로 채우는 이들이 가져야 할 대전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저자, 담춘홍(탄춘홍) 선생이 정의하는 "감성"은 무엇인가. 저는 이 대목이 특히 읽으면서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하나는 "정서를 표현하는", 또 하나는 "그 정서를 콘트를하는", "예술"이라는 겁니다. 담(탄) 선생의 감성 정의는 그래서 세 부분의 개념 연결로 이뤄집니다. 첫째는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입니다. 정서를 외부에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정서 그 내부적 특징을 잘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런 정서, 잘 다듬어진 정서가 오해 없이 전달되게 하기 위해 표현을 세련되게 다듬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 정서는 그저 발견되고 표현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타인이 자신의 감성 표현(그것이 아무리 정확히 표현되는 것이라도)을 덮어놓고 수용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정확하고 세련된 표현이 혹시 남들(물론 자신만큼의 양식과 수준을 갖춘 정상적인 공동체 안에서의)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이것은 차라리 표현되지 않은 만도 못합니다. 그래서 탄 선생은 "통제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어쩌면 EQ에서 이 대목이 핵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감성은, 그저 순간순간 표현되고 통제되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예술"로서 다듬어져야 합니다. 예술이란 임기응변의 잔재주가 아니라, 인생과 세상을 보다 깊이 있는 차원에서 조망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식을 말합니다. 공부를 통해 지식을 쌓거나 악기를 다루거나 회화로써 조형을 포착하는 게 수련이 필요하듯, 타인과 소통하는 기술도 예술의 수준으로 다듬어져야만 합니다. 이 정도가 되어야 "성공하는 감성인"으로 불릴 자격이 있고, 그저 순간의 잔재주에 머물지 않고 남과 자유로이 소통하는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저 학창 시절에 공부만 못했다고 자동으로 소통 공감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님은 자명합니다. 널널한 회사에서 그 알량한 자리 하나를 못 지키는 퇴직자가 너무도 많은 현실을 보면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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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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