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경영/자기계발

김진철
- 작성일
- 2016.5.23
신념의 위력
- 글쓴이
- 클라우드 M. 브리스톨 저/최봉식 역
지성문화사
백 년 전에 활동한 클로드 마이런 브리스틀은 우리가 잘 아는 데일 카네기와 비슷한 또래였으며 당대에 이름난 저술가, 강연자였습니다. 욱일승천하는 신흥 공업국인 미국에서, 개선된 미래를 꿈꾸며 능력을 계발하고 자신의 직장에서 보다 향상된 지위를 도모하며 계좌 잔액의 상승하는 그래프를 보고 뿌듯한 성취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기에, 이처럼 타인의 동기부여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인사들이 그처럼 큰 호응을 얻기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 역시 그의 저서 중에서, 그리고 자계서의 체계 속에선 고전으로 꼽힙니다. 고전은 고전이나 종래 한국에선 독서인들이 주로 문예의 고전, 철학의 고전을 즐겨 찾고 또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다 주며 권했을 뿐 자계서의 고전이라면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을 뿐 아니라 잘 읽히지도 않았습니다. 듣기 좋은 말만 잔뜩 써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이들 교육용으로 더 끌릴 법도 했을 텐데 말입니다. 한국에 이 분야 고전들이 본격 번역, 소개된 건 제 기억으로 2X세X 출판사가 새뮤얼 스마일즈 전집을 (이를테면 이곳 예스24 같은 온라인 서점에서) 멋진 장정을 입혀 본격 마케팅에 나서던 십 년 전 정도부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데일 카네기의 책이라면 워낙 정평이 나 있던 터라, 1970년대 대기업 다니던 분들이 한국 수출 기조의 대약진이란 운수 대통의 기를 받아 많이들 접한 아이템이긴 하죠. 이 외에도 당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던 일본 독서계의 풍토가, 자계서를 그닥 높이 평가하지 않던 요인도 있지 싶습니다.
"신념"이라고까지 격상시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튼 직장인들은 좀비처럼 분위기에 환경에 묻어가는 식으로 처세해서는 안 됩니다. 일단 과제를 받아들면 "할 만하니까 나한테 이게 할당(assign)되었고, 기왕 하는 거 중간이나 간신히 맞추자는 안이한 생각보다 '끝내주게 처리하겠다'"라는 악착 같은 각오가 서 있어야 합니다. 애착, 집요한 각오, 쉽게 물러서지 않는 진지함, 이 모든 마음의 자세가 "긍정주의"라는 기치 아래서 유기적이고 통일적으로 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2008년 즈음에 자계서 장르가 서점에서 완전히 위상을 굳히기 시작할 무렵, 김성환이란 세일즈맨이 쓴 수기 <절대긍정>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죠. 저는 사서 보지는 않고 이곳 예스에서 이벤트에 당첨되어 사은품으로 받아 보았는데,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인구라면 여튼 매 페이지마다 절절하고 다 타당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더군요. 어디 가서 보란 듯이 펼쳐 놓고 읽는 폼은 영 안 나겠지만 말입니다.
미국인들이 실용을 중시하고 과장 없는 표현을 쓴다고는 하지만 "미라클"이란 말은 의외로 자주 들립니다. 꼭 종교적 맥락에서 쓰는 것도 아닙니다(미국을 무슨 종교 국가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념 체계가 머리에서 엉터리로 자리한 탓입니다. 당치도 않은 소리죠). 브리스틀은 바로 이 신념이, "기적"을 낳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합니다. 있을 법하지 않은(improbable) 일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 이 과정과 결과를 두고 그는 "기적"이라 명명합니다. 영적 각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정신이 도덕적 목표에 따라 정화되는 게 기적일 지 모르지만, 브리스틀은 철저히 현세적이고 눈에 보이는 실용적 지표를 중시합니다. "내가 이전에 내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 했던, 접근하려고 마음 먹지도 못했던 일을 해 내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이 성취감으로 가득 차서 다음 과제에 임하는 자신감이 충천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브리스틀의 말은 과연 언표한 바 주제에 걸맞게 자신감과 "신념"으로 활짝 만개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강렬한 충동, 정신의 고양에 이끌려 쓴 문장은, 그를 읽는 독자도 그 느낌이 지면을 통해 전해져 옵니다.
그 당시엔 "잠재의식" 같은 개념이라면, 이게 대중화는커녕 진지한 지성인들 사이에서도 완전한 동의를 얻기 힘들었을 텐데요. 어쨌든 브리스틀은 자신의 이해 범위 안에서 자신의 사고 체계에 자연스럽게 편입시켜 독자(그리고 아마도 청중)들을 설득하는 유력한 도구로 활용합니다. 자계서에서 강조하는 취지, 교조라는 게 크게 봐서는(물론 세부적으로 파고들어가면 계통과 족보가 다 갈립니다. 이섬님께서 예전에 쓰신 포스팅이나 리뷰 참조) 뭐 크게 다르지 않기에, 브리스틀이 이 무렵에 자계서식으로 확립한 개념이 현재에도 널리 애용된다 해도 별반 틀리지 않습니다.
책의 마무리는 "당신의 감정을 지켜라"라는 의미심장한 충언이 채웁니다. 전 이런 시각도 시대를 상당히 앞서갔다고 봅니다. 백 년 전이면 그저 불편하고 기분 상하는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노오력하고.. 뭐 이런 주문 위주로 갔을 것 같은데도요. 그런데 감정은 첫째 결국은 내 자신이 지켜야 할 나라는 실체, 영혼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자, 모든 감정을 다 희생하고 털리고 난 뒤 CEO의 자리에 올랐다, 머슴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그레이드까지 다 채웠다, 이런 경우라도, 이미 입사 초기 청년이었던 "나"는 어딜 갔는지 없고 웬 늙은 좀비가 거울 앞에 서 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세상을 다 얻어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라는 격언처럼, "내 영혼의 일관성"을 잃으면 그게 결국 건강의 치명상을 입은 거죠. 두번째로, 요즘은 이렇게 주견 없는 유령 같은 직원을 윗선에서나 동료들, 심지어 신참들까지 다 안 좋아하고 심각하게 경멸합니다. 즉 처세 면에서 빵점의 옵션이라는 겁니다. 얼핏 봐서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직원도, 결국 전체 조직의 건강성을 위해 일정 부분 용인해야 할 장점이 있다면, (정말 의외로 보이지만) 결국 끝까지 가고 자리들도 다 타내더라는 거죠. 생각해 보면 다 살아남기 위한 게임이기 때문에 오너나 중역들도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암군마냥 눈을 감지는 않는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감정"은 그래서 여하의 전투, 전쟁에서건 끝까지 사수해야 할 본진이라고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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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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