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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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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세계사
글쓴이
크리스토퍼 라셀레스 저
라이팅하우스
평균
별점8.9 (26)
김진철

35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으로 세계사를 개관한다는 건 매혹적인 체험입니다. 역사에 대해 밝지 않은 독자들은 대략으로나마 아웃라인을 잡을 수 있을 테고,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면 포인트의 취사 선택 과정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관점을 자신의 것과 비교, 대조하는 재미가 있어서입니다. 더군다나 이 책은 소위 빅히스토리의 퍼스펙티브로부터 기획의 큰 틀을 마련하고 있어서, 이런 시각을 역사 시대 이후의 각론들에 일일이 어떻게 투영시키고 결론을 낼 지도 주목거리였습니다. 물론 분량이 워낙 "압축적"이어서 너무 큰 기대를 갖는 건 곤란합니다. 비행기로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이 한 권을 잡고 긴 시간을 채우면 알찬 읽을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고대 파트에선 익히 독자들이 알던 대로, 여러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요령 있게 핵심만 추려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기록에는 (지금 기준으로) 1200BC 경에 "해양 민족"이라는 정체 불명의 세력이 오리엔트 일대를 대거 침입해 왔다고 나와 있죠. "민족"이란 개념은 엄밀히 말해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만(원어 people은 워낙 막연해서 무리가 없는 반면), 우리 한국 공통 교과 과정에서 이 부분을 잘 안 다루는 통에 여전히 낯설어할 독자가 많겠습니다(물론 페니키아의 설형 문자나 해양 활동은 교과서에서도 언급됩니다). p29의 지도를 보면 지명 "우루크"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어 신선한 느낌이었는데요. 저도 히스토리 아틀라스를 여러 권 가지고 있습니다만, 사실 이런 판형이 작고 짧은 요약서에 실린 지도에서는 무엇을 부각하느냐보다 무엇을 생략하느냐가 더 중요한 선택입니다. 레퍼런스북의 자료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담는 게 중요하지만(물론 이 중에서도, 개념도로 편집된 지도는 간결할수록 좋죠), 이런 책에서는 지도에 무엇무엇을 과감히 생략하고 무엇을 확 부각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우루크"는 주류 입장에서 오늘날 "이라크" 국명의 기원이 되었다고 보는 도시 이름이죠. 예전에 <아시모프의 구약>에서 그 박식한 분이 "아리아 인"을 어원으로 잡은 것을 보고 꽤 실망한 기억이 있어서 이런 태도가 더 반갑습니다.

고대 파트에서 비중이 조금이라도 더 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인도 마우리아 제국의 흥망과 불교 초기사가 적절한 표현과 균형감각으로 소개되고도 있습니다. 저자분이 정통 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에 가까운 분인데, 이 책에서 특별히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길 기대하긴 그래서 어렵구요. 본인 자신이 취재차, 그리고 NGO 활동차 세계를 누빌 때 특별히 거쳐 온 지역에 아무래도 더 방점이 찍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빅히스토리" 관점도, 이 저자분이 기후 협약 관련 활동할 때 특히 인문적 바탕으로 관심을 두던 터라 이처럼 도입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이처럼 저자 개인의 고유한 활동선과 역사 서술의 관점이 조화를 이룰 때, 그게 독단에 치우치는 않는 한에서 독자에게 "틀에 박힌 고정 관념"에서 유쾌한 일탈을 이뤄 보는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책은 다소 표준적, 모범적인 스텝을 밟고 있어서, 기대했던 만큼보다는 재미가 덜합니다.

중세를 커버하며 이슬람 제국(우마이야 왕조까지)의 역사를 언급하다(이 역시 기대보다는 비중이 크더군요), 아주 잠시 샤를마뉴 朝와 비잔티움 일대를 건드리고, 이어서 몽골 제국으로 넘어갑니다. 이런 태도가 개성이라면 개성이겠습니다(관점에 따라, 당대에 실제로 행사했던 국세를 감안하여 가중치가 바르게 반영된 공정한 서술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 평가가 무색하게도 동아시아 중화 제국 관련해선 서술 비중이 또 떨어지는 게 아쉽지만, 그거야 이 책의 분량이 350여쪽이라는 점도 감안은 해야겠습니다. 샤를마뉴 조, 한참 뒤 신성 로마 제국 초기 판도, 비잔티움 서술의 빈약한 "출현"은 대신 지도 세 장으로 어느 정도는 벌충이 됩니다. 이런 류의 책에서 신성로마 제국을 비추는 지도는 딸랑 초점이 중부 유럽에만 맟춰져 있는데, 사실 "황제"들이 어지간히 골머리를 앓은 이슈는 이탈리아 경영이었고, 이런 관점에서 프레임을 아래로 연장하여 양 시칠리아 왕국(요즘 국내서들은 "兩" 자를 잘 안 쓰더군요. 영어 텍스트[이 책의 원서가 아닌, 일반적 사서]를 보면 Two Sicilies라고 일관되게 표기합니다만)까지 다 보여 주는 게 좋았습니다.

바로 앞 페이지 지도에서 프랑크 왕국의 범위를 이탈리아 반도 중부 아래까지 죽 내려잡는 태도도 흥미로웠습니다. 현대의 국경선 개념처럼 정밀한 계측이 가능했다거나 근대 조약 프로토콜이 확립된 때도 아니라 이런 건 저자의 관점이 그런가 보다 넘기면 그만이죠. 브린디시움과 히포니움 일대(각각 구두 뒤축과 앞머리)만 살짝 남긴 그 과감한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스만으로 넘어가면, 저자는 "자유로운 사상을 열망하는 풍조가 일반화됨에 따라 제국은 점차 쇠망하게 되었다"고 평합니다. 이 문장은 본문뿐 아니라 지도 아래에도 거듭 첨부되는데, 이 책의 태도는 내내 이런 식입니다. 오스만은 대개 세속 제국의 성격이 강했고, 피정복민의 종교, 고유 습속 유지 문제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죠. 구태여 트집을 잡자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이후 파트에서도 잘 밝히고 있듯 군주가 대폭 민중에 양보한 지역은 지금 민족 국가로 잘 살아남아 번영을 누리고, 그러지 않았던 정치 단위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큰 봉욕을 치르거나 사멸해 버린 교훈을 강조하려는 취지 정도로 해석하겠습니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을 두고 저자는 "혁명"이라고까지 평가합니다. 리버럴 입장(이 저자분부터가 리버럴 성향입니다)에서는 퍽 환영할 만한 명명이고, 다만 미완의 혁명, 실패한 혁명이라는 건 우리 모두가 다 알죠. "누가 인도를 다스리는지"를 명확히하기 위해(저자의 표현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정식으로 제국을 창설했고, 이때부터 섬나라의 군주들이 정식으로 "황제"를 칭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소위 대영제국은 불과 70년 정도만 존속했다는..

p263의 지도에 보면 플로리다 병합 과정이 둘로 나뉘어 도시되는데, 1810~12년에 이뤄진 西플로리다 지역 일대의 병합에서, 4대 매디슨 대통령은 이 과정이 나폴레옹 1세와 거래한 "루이지애나 구입"의 일환(즉 미이행된 계약의 완전 청산)이라 주장하여 에스파냐 제국과 대립했고, 1819년이라 지도에 나온 플로리다 반도의 완전 병합은 제국의 양도(겉으로는)가 그 원인입니다. 보통 개즈던 구입, 텍사스 병합까지만 다루는데 이 지도는 그 부분에서 다른 교과서 지도들과 달리 상세했고, 다만 쿠바 쪽으로 문장 부호가 이어져 잘못 보면 쿠바가 2년 동안 병합된 걸로 오해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화살표는 서 플로리다를 향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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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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