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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 작성일
- 2016.5.30
예술가의 여관
- 글쓴이
- 임수진 저
이야기나무
한반도 삼천리 강산 중 어느 한 곳 사연과 정기가 깃들지 않은 데가 있겠습니까만, 충남 예산 역시 반만 년 역사 동안 숱한 인재를 배출하여 조국의 역사를 떠받들어 온 고장입니다. 직접 찾은 적은 없으나 수덕사란 이름 높은 사찰이 소재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수덕여관이라고 해서 전 처음에는 여러 명사들이 거처하거나 혹은 잠시 몸을 머물다 간 지난 연혁을 빗대어 그리 별명으로 부르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고요, 아래 사진을 보십시오. 정식으로 그 이름을 단아히 쓴 현판이 그리 붙은 현황입니다. 하긴, "여관"이란 명칭이 우리 일상인들에게 그리 건전하거나 정감 어리다거나, 그저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한 의미로 다가오지도 않는 판에(칙칙한 불륜의 현장), 고찰(古刹)에 그런 별칭을 내력 없이 붙였다면 불경스럽고 무엄한 태도가 아닐지요. 다행히도 이 안온한 사적은, 그런 불측한 세인의 시선이 고정되기 훨씬 전 그 이름을 보다 자연스런 내력을 통해 얻은 걸로 보입니다.
"수덕여관"에 몸을 담은 유명인들 중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인물은 세 사람입니다. 책은 첫 부분이, 이 무정물 "수덕여관"을 1인칭 화자 삼아(따라서 유정물이겠을) 자신의 몸에 안겼거나 스쳐 갔던 다양한 인물들을 회고하는 형식입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서부터는 그 인물들의 사실적인 행적, 시대를 앞서갔기에 부당한 편견과 억압 기제로부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그 발걸음들을 조명하는 글이 이어집니다. 그 판단 기준과 비평적 분석은 일단 저자 임수진 님의 세계관에 기초한 듯 보입니다만, 남녀를 불문하고 대개의 결론에는 우리 독자들이 다들 동의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이름을 떨친 신여성 나혜석이 처음에 등장합니다. 화려한 남성 편력을 자랑한 우리 시대, 혹은 가까운 시대의 여성이라면 누굴 예로 들을 수 있을까요? 딱히 몇 사람을 거명하기 힘들 만큼 일반화되었다고 봐야 할까요? 지난 시대의 명배우 김지미 씨 같은 경우, 본인처럼 잘난 이성 여러 분을 남편으로, 동거인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당대에조차 극심한 비난 대상이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이는 아홉 번이나 "결혼"했고, 그런 잘난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살기도 하나 보다 같은 인식이 이미 지난 시절 어르신들의 뇌리에도 자리해서가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허나 나혜석은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분. 민족 차별이란 시련 뿐 아니라 성별의 우열 기제가 시퍼런 기세를 드러내던 시절의 인물입니다. 얼마나 그 삶이 고단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녀의 그 가시밭길 같은 행보는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 익히 아는 바지만, 이 책에서 흥미롭게 소개하는 대목은, 바로 이 수덕여관에서 그녀가 어떤 자취를 남겼는가 하는 점들입니다.
빼어난 재능을 지녔던 그녀가 마지막 소품전을 실패한 이유는, 아마도 그간 각종 소문과 분쟁에 엮여 들며 평판이 나빠진 탓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작품 외적인 이유). 붓 놀리는 솜씨라든가 무르익은 감성, 독자적인 관점 등은 그때가 전성기였지 않겠나 하는 추측이 가능해서입니다. 아래 사진은 나혜석의 자화상인데, 화가가 남긴 많은 마스터피스 중에서도 자화상이 특히 중요한 이유를 새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이미 완숙경지에 접어든 그녀의 화필 놀림도 놀랍지만, 그림 하나가 이처럼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랍니다.
임장화, 백성욱 등 역시 당대의 잘난 남성들과 숱한 사연을 빚은 풍운의 신여성 김일엽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년의 그녀를 담은 화폭 등을 보면, 불가에 입신하여 완전한 영의 안식을 얻은 달관의 표정이 보입니다. 이 점에서 선배(나이는 동갑이죠) 나혜석보다 그녀가 더 행복한 인생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뭇 풍파를 헤치고 자유로운 영혼이 도달한 지점은, 육신보다 정신의 영원한 해방을 지향할 부처님의 품 속이었다는 사실.
보통 우리들이 재외 예술가로서 탄압을 받은 양대 인물로 알고 있는(윤이상 작곡가와 더불어) 화가 이응노 선생이 나옵니다. 선생의 존함이 노나라 노(魯) 자를 쓴다는 건 이 책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나혜석으로부터 바로 이곳, 수덕"여관"에서 높은 가르침(화법 관련)을 받고 수제자가 된 그는, 스승으로부터 기예 뿐 아니라 그 자유로운 정신 세계까지 이어받아, 시대의 굴곡과 고착화한 기제에 구애 받지 않고 역시 꺼릴 것 없는 경지를 개척해 나갑니다.
세 분의 공통점은, 이성과의 연애(물론 그 이성들도 간혹 이기적이었을망정 하나같이 자신처럼 잘난 사람들이었습니다)에 있어서도 그저 정직한 마음이 시키는 바 그대로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이응노 선생이 젊은 시절 그 꿈과 재능을 키웠던 이곳 수덕사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찾고 유명을 달리했다면 얼마나 그분 자신에게 행복한 순간이었겠습니까만, 그는 고향이나 이곳 수련터는커녕 고국 자체에 끝내 다시 발을 못 들여 놓고 말았죠.
인간의 자유혼과 창작의 집념, 천재의 몸부림 등이 모두 이곳, 한적하기 그지없는 고찰에서 이상적인 조화와 안식을 얻었다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휴가 때 시간을 내어 그들의 숨결을, 먼 시간을 사이에 두고서나마 직접 느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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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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