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ES24 파블미션(舊)

김진철
- 작성일
- 2017.3.12
반품하고 싶은 직원 리모델링하고 싶은 상사
- 글쓴이
- 함선희 저
혜지원
이 책은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난 책입니다만 며칠 전 동료의 선물로 함께 받고서 읽게 되었습니다. 자계서도 트렌드라는 게 있어 저 무렵이면 좀 다른 기조와 화제를 다루는 게 보통이었는데(제 기억으로는요) 이 문제에 정면 접근을 시도한 책이 있었다는 게 조금 의외로 다가왔습니다. 내용은 아주 (제목만큼)과격하다거나 뭐 그런 기조는 아니고요(진짜 그런 책은 지금도 안 나오죠). 현실적으로 상사와 부하직원의 매끄러운 관계를 어떻게 재조정하며 최악의 파탄을 피할 것인가, 대체로 그런 논의를 책 속에 담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상사-부하 관계뿐 아니라 일 때문에 만나는 2차적 접촉 일체,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떤 특성과 동력, 메커니즘으로 움직여나가는지를 저자들이 신봉하는 이론으로 설명해 나가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독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두루두루 찾아나가며 소화할 수 있는 편집이겠습니다.
보통 어떤 두 상하관계에 극심한 갈등이 일어났을 때, 못 견뎌하는 쪽은 아랫사람이지 윗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사는 우월한 위치에서 갈궈댈 뿐인데 무슨 스트레스를 받겠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장이라고 해도 상무, 전무한테 깨지는 "부하직원"인 건 마찬가지고,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한국 사회의 기본 구조라는 게 위에서 아래로 스트레스를 내려보내는 꼴이라서, 자신도 누구한테 열나게 깨졌기에 "위에서 이렇게나 니가 해 온 일을 싫어한다"며 어찌 보면 구조의 SOS 신호를 아랫사람에게 보내는 셈입니다. 기안의 주도를 그 사람이 했다면,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취지에서라도 한 번쯤은 그 상사의 위치에 서 보는 게 무슨 굴욕이나 굴종은 아닙니다. 상무한테 일이 시원찮아 깨진 부장은, 그 순간이야 무력한 환자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직급의 상하를 불문하고 좀 연민의 정을 보내 주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부하직원은 너무도 융통성이 없습니다. 자신이 조직으로부터 월급을 받고 일을 하면, 아무리 일한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고는 하나 대체로는 혜택을 입는 셈입니다. 일용직 근로자와는 달라서 여튼 한국에선 조직에 정규직으로 속하는 순간 4대보험, 사회에서 "나는 조직인 아무개"로 행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위신 등이 덩달아 따라옵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회사라고 해도 말입니다.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인 "퇴직자, 실업자"로 신분이 바뀌는 순간, 경제적 곤궁 외 무수히 많은 객관적 시련과 주관적 침체가 일신을 엄습하기 마련이죠. 그저 이 비참한 신세를 주말 로또나 제대로 긁어 역전해 보겠다는, 한심하고도 처량한 손놀림과 각오(...)란 자신이 거울에 비춰 봐도 더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로또를 찍어도 여유 있는 사람(점장과 농담 따먹기 해 가면서)이 장난 비슷하게 시도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죠.
상사의 질책을 매 순간 자신의 고유 가치, 인격에 대한 모독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부하직원이 가장 답답하고, 지금 한국 사회가 어떤 기제에 의해 돌아가는지 전혀 납득을 못 하는, 그야말로 꽉 막힌 불통 타입이죠. 대개 정말 가학 성향이라도 있어서 필요 이상의 분풀이를 하는 타입은 조직에서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꽤 있긴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식처럼 많지는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 회식 자리에서 "이게 개인 감정은 아니다. 나도 죽겠다"며 미안풀이가 시도도 되는 거고 말이죠. 근데 이게 정말 전혀, 전혀, 안 통하는 사람이 조직마다 꼭 있어요. 여성이면 또 소통의 구조가 다르며, 여성(상사건 부하건 간에)은 여성만이 조직에서 해 주는 기능이 또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다른 방식, 논의가 필요하다고 해도, 남자 직원이면 그런 식으로 처신해선 안 됩니다.
어떤 분은, 특히 스카이 출신이다 뭐 이런 사람들의 경우 집에서 과잉보호를 받아서 그렇다(조직에 부적응)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엔 그런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뭐랄까, 그래도 여태 소속된 1, 2차 집단으로부터 혜택 비슷하게 받고 자란 사람은, 이제는 받은 걸 내줄때도 되었구나 하는 균형감각, 혹은 빠른 현실 판단 때문에 유연하게 처신할 줄도 압니다. 정말 답답한 사람은 여태 살면서 뭘 누구한테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와서도(눈은 분수에 안 맞게 높습니다) 또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 뭐 이런 억울함으로 조직과 주변을 대한다는 겁니다. 내가 있는 집 출신이었으면, 스카이를 나왔으면 니들이 나를 이렇게 대했겠느냐, 그래도 나는 니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대개 이런 분위기가 이런 이들에게서 느껴지죠.
받은 게 없으니 줄 것도 없다는 항변(티는 안 냅니다만)이 일단 이해가 안 가지는 않지만, 이게 어디 조직에서 통하는 말이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자기가 상대하는 타인도 다 제각각의 사정과 고충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르며(혹은 애써 모른 척하며), 어설픈 피해의식과 반감, 트집잡기 따위를 뭉뚱그려서 "통합된 타인"으로 파악할 뿐입니다. 헛된 희망으로 한 방에 역전을 노리는 심리가 이들의 척박한 현실을 순간이나마 잊게 해 주는 유일한 친구일 뿐이죠. 이런 사람들이 곧잘 하는 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가 있는데, 맞긴 참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일이 그 사람 인생에서 한둘이 아니었고, 그래서 지금 그 자리까지 내몰린 거에요. 정확합니다. 본인이 모르는 게 본인보다 그 사람을 지켜보는 타인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죠.
이 책은 특히 인간관계 실용이론에서 언급들 하는 "스트로크"를 주된 설명도구로 삼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말 안 해도 통하는 어떤 교감이라기보다, 충돌이면 충돌, 애무면 애무, 이런 밀도 높은 마주침, 대개는 근접거리에서의 육체적, 물리적 조우가 동반한 만남이 결정적으로 그 관계의 성격을 바꿔 놓습니다. 왜 저기 한번 거하게 주먹다짐을 주고 받은 후(직장 말고요) 더 친해졌다는 이들이 있듯, "스트로크"는 논리적으로 꼭 명쾌하게 설명은 안 되는 어떤 마력이 있습니다. 주먹다짐 아니라... 그 반대의, 이성끼리의 어떤 접촉 양태도 전과 후를 확 바꿔 놓습니다. 한번 즐기고 말자는 식의 만남인데 처음 생각대로 안 되고 이상하게 발전하는 경우가 그것이죠. 이 역시 사람 사이의 "스트로크"가 뭔가 국면을 확 바꾸는 좋은 예입니다. 이렇게까지 극적인 예는 아니라도 생각만으로 이렇겠거니 교착된 관계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실물로 만나 보고 출구를 급격히 마련하는 경우가 생각 외로 많습니다.
에고그램은 이 책 말고도 여러 자료나 책자에서 보던 내용입니다만, 역시 저자들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해석의 기준이 달라서, 다양한 퍼스펙티브나 맥락에서 이리 받아들이는 묘미가 또 있더군요. 누차 말하지만 이론이 중요하다가기보다,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태 찌든 루틴에서 못 벗어나 현실이 불만족스러운지 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본인이 그 자리에 있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포털 재게시 주소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